옛글 › 징비록 › 권4 근폭집

적의 형편을 명나라에 아뢰고 제주·남원을 지키며 봄철 방비를 갖추기를 청하는 계請具賊情奏聞。天朝且請防守濟州南原等邑及凡防春預備。啓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1,060자 · 낭독 9.2분

징비록 권4 근폭집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臣久在病中沉綿昏塞殘喘如縷些少精神亦已减半其於軍國之事固難容議但念國勢危如一髮而日月逾邁事機漸遠思之不覺寒心人皆以南北之事爲憂然北虜之憂憂在邊境南賊之憂憂在社稷不早圖之則後無及矣今歲律已盡而賊情狡詐百出尙無渡海之計已到春風脫有再動之變將何以處之伏見金睟狀啓則所載玄蘇之言極悖此不但要我以難從之請其於中國亦必如此以爲敗約起釁之端臣從前慮其如此而今不幸事勢浸浸近是其爲可憂庸有極乎竊料沈惟敬所言形色可疑者非一然以臣愚料則似是自知不能了事而欲歸過於他人以爲已地如所謂。天使早入倭營故倭不捲回此則歸咎於。天使也今使沈𢠘時來請我國之使必知我國不肯而執以爲辭以封事不成歸咎於我其實賊之去不去不關於我使之許否而自有兇謀也𢠘時若到則措辭應對所關甚重請令備邊司預爲磨琢酬應爲當。天使出來後凡百邊報一不馳報於。中朝蓋緣前頭事勢未可預度故未得指一言之而然也今則。天使已入賊營而賊情反覆如此我國似當直以此等情形依常時傳報邊情之例移咨於遼東使轉報按撫衙門亦一事也賊兵時在釜山一隅故我國水陸諸將徒以此處爲急而不念他路以臣所料則濟州甚可憂往日賊使要時羅明言欲犯濟州可知此賊垂涎於此也蓋濟州當我國西南海且與中原地方相近萬一此地爲賊所據則雖欲以天下之力取之不可而西海一帶以及黃海平安之境皆無保守之勢此賊最知形勢計未必不出於此聞濟州甚爲孤單兵食竭乏癘疫飢饉甚於他處云添兵固守之䇿必須十分講究急速施行民間可蠲進上等物亦限年一切觸减以紓民力使得專意於防備爲當溯嶺之間無可控扼之處只有南原一府而邑宰久曠至今未赴其於儲粟鍊兵守城之事全無措置此處若失則他無可恃臣竊憂焉此亦催促新府使星馳往赴必期死守可也慶尙道則因蕩敗創殘之甚鍊兵等事未及料理其次則獨有忠淸道爲京師藩蔽而道內軍兵已經訓鍊者數千餘人此亦有將而分付主之預爲察其形勢所在而用之則緩急猶可倚仗。朝廷當初發遣御史李時發專掌訓鍊然臨戰則時發不能用之而他將代用不無變置部伍更改約束之弊所謂所養非所用所用非所養兵家之深忌也此亦。下諭都體察使使總合道內已鍊砲手幾何射手幾何殺手幾何各統於一將而大將出其節制然後軍心有定而臨時無渙散紊亂之弊也且聞各邑之軍在道內之官皆各分占一邑之軍有巡察使之軍兵水使之軍防禦使之軍御史之軍守令之軍號令多門文移眩亂莫適所從此我國從前積弊軍政之紊其源每出於此而忠淸道等處尙仍舊習云此亦速爲變更然後可也權仁龍趙光翼韓絢金時若所募之軍未知幾何然各隨其所得多少而校閱精否備給弓矢衣甲以聽主將約束則亦可以當一隅之用也此皆今日防春預備之不可已者臣病裏之言必多疎漏然區區憂國微忱不能自已故撥昏書。啓辭無倫次請。下備邊司參酌施行何如

신은 오래 병중에 있어 병이 길게 끌고 정신이 흐리고 막혀 남은 숨이 실낱같으며, 얼마 되지 않던 정신마저 이미 반이나 줄었습니다. 군국의 일이야 참으로 의논에 끼기 어렵습니다. 다만 생각하건대 나라 형세가 한 올 터럭처럼 위태로운데 세월은 흘러가고 일의 기회는 점점 멀어지니,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서늘합니다.

사람들이 다 남쪽과 북쪽 일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북쪽 오랑캐의 걱정은 변방에 있고 남쪽 적의 걱정은 종묘사직에 있으니, 일찍 도모하지 않으면 뒤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올해도 이미 다하였는데 적의 속셈은 간교함이 백 가지로 나오고 아직 바다를 건너갈 뜻이 없으니, 봄바람이 이른 뒤에 혹 다시 움직이는 변고가 있으면 장차 어찌 처치하겠습니까.

삼가 김수(金睟)의 장계를 보건대 거기 실린 현소(玄蘇)의 말이 매우 패악합니다. 이는 우리에게 좇기 어려운 청을 요구할 뿐 아니라 중국에 대해서도 반드시 이와 같이 하여, 약속을 깨뜨리고 흔단을 일으키는 실마리로 삼으려는 것입니다. 신이 전부터 이렇게 될까 염려하였는데 이제 불행히 사세가 점점 이에 가까워지니 그 걱정스러움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가만히 헤아리건대 심유경(沈惟敬)이 하는 말과 낯빛에 의심스러운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러나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스스로 일을 마치지 못할 줄 알고 허물을 남에게 돌려 제 발 디딜 곳을 삼으려는 듯합니다. 이른바 「명나라 사신(天使)이 일찍 왜의 진영에 들어갔으므로 왜가 거두어 돌아가지 않는다」 하는 것이 그것이니, 이는 명나라 사신에게 허물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제 심무시(沈懋時)를 시켜 와서 우리나라 사신을 청하게 하는 것도, 반드시 우리나라가 즐겨 하지 않을 줄 알고 그것을 잡아 구실로 삼아 봉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허물을 우리에게 돌리려는 것입니다. 실상 적이 물러가고 안 가고는 우리 사신을 허락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요 저희에게 따로 흉한 꾀가 있는 것입니다. 심무시가 만일 이르면 말을 꾸며 응대하는 일이 관계됨이 매우 무거우니, 비변사로 하여금 미리 다듬어 응수하게 하심이 마땅합니다.

명나라 사신이 나온 뒤로 온갖 변방 보고를 하나도 명나라 조정에 달려가 아뢰지 못하였습니다. 대개 앞일의 형세를 미리 헤아릴 수 없어 하나를 가리켜 말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이제는 명나라 사신이 이미 적의 진영에 들어갔고 적의 실정이 이처럼 뒤집히니, 우리나라는 마땅히 이런 정황을 평시에 변방 사정을 알리던 예대로 요동에 자문(咨文)을 보내어 안무 아문에 옮겨 알리게 하는 것도 한 가지 일입니다.

적병이 지금 부산 한 모퉁이에 있으므로 우리나라 수군과 육군의 여러 장수가 다만 이곳만 급하게 여기고 다른 길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의 헤아림으로는 제주가 매우 걱정스럽습니다. 지난날 적의 사자 요시라(要時羅)가 제주를 침범하려 한다고 드러내어 말하였으니, 이 적이 여기에 침을 흘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개 제주는 우리나라 서남 바다에 자리 잡았고 또 중원 땅과 서로 가깝습니다. 만일 이 땅이 적에게 점거되면 천하의 힘으로 빼앗으려 하여도 될 수 없고, 서해 일대에서 황해·평안 지경에 이르기까지 다 지켜 낼 형세가 없습니다. 이 적이 형세를 가장 잘 아니 그 꾀가 여기서 나오지 않으리라 할 수 없습니다. 듣건대 제주는 매우 외롭고 군사와 양식이 다하였으며 돌림병과 굶주림이 다른 곳보다 심하다 합니다. 군사를 더하여 굳게 지킬 계책을 반드시 십분 강구하여 급히 시행해야 합니다. 민간에서 덜어 줄 만한 진상 물건도 햇수를 정하여 일체 줄여 백성의 힘을 펴게 하고 방비에 마음을 오로지하게 함이 마땅합니다.

호남과 영남 사이에는 막아 지킬 만한 곳이 없고 다만 남원 한 고을이 있을 뿐인데, 고을 원 자리가 오래 비어 이제까지 부임하지 않았습니다. 곡식을 쌓고 군사를 조련하고 성을 지키는 일에 전혀 조치가 없습니다. 이곳을 잃으면 달리 믿을 곳이 없으니 신이 가만히 걱정합니다. 이 또한 새 부사를 재촉하여 별같이 달려가 부임하게 하고 반드시 죽기로 지키기를 기약하게 함이 옳습니다.

경상도는 무너지고 상한 것이 심하여 군사 조련하는 일을 미처 처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다음으로는 오직 충청도가 서울의 울타리가 되는데, 도내 군병으로 이미 훈련을 거친 자가 수천여 명입니다. 이 또한 장수를 두어 맡게 하고 미리 그 형세가 있는 곳을 살펴 쓰면 급할 때 오히려 의지할 만합니다. 조정이 처음에 어사 이시발(李時發)을 보내어 훈련을 오로지 맡게 하였으나, 싸움에 임해서는 이시발이 그들을 쓰지 못하고 다른 장수가 대신 쓰니 대오를 바꾸고 약속을 고치는 폐단이 없지 않습니다. 이른바 기른 바가 쓰는 바가 아니요 쓰는 바가 기른 바가 아니라는 것이니, 병가에서 깊이 꺼리는 바입니다. 이 또한 도체찰사에게 글을 내리시어, 도내에 이미 조련한 포수가 얼마, 사수가 얼마, 살수가 얼마인지 모두 합하여 각각 한 장수에게 거느리게 하고 대장이 그 절제를 내게 한 뒤에야, 군심이 정해지고 일에 임하여 흩어지고 어지러운 폐단이 없을 것입니다.

또 듣건대 각 고을의 군사를 도내에 있는 벼슬아치가 저마다 한 고을씩 나누어 차지하여, 순찰사의 군사, 병사와 수사의 군사, 방어사의 군사, 어사의 군사, 수령의 군사가 따로 있어 호령이 여러 곳에서 나오고 공문이 어지러워 좇을 바를 알지 못한다 합니다. 이는 우리나라에 전부터 쌓인 폐단이라 군정이 어지러운 근원이 늘 여기서 나오는데, 충청도 등지가 아직도 옛 버릇을 그대로 한다 합니다. 이 또한 속히 고친 뒤에야 옳습니다.

권인룡(權仁龍)·조광익(趙光翼)·한현(韓絢)·김시약(金時若)이 모은 군사가 얼마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각각 얻은 바 많고 적음을 따라 정예한지 아닌지를 검열하고 활과 화살, 옷과 갑옷을 갖추어 주어 주장의 약속을 듣게 하면 또한 한 모퉁이의 쓰임은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다 오늘 봄철 방비를 미리 갖추는 데 그만둘 수 없는 것입니다.

신이 병중에 하는 말이라 반드시 성글고 빠진 것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구히 나라를 걱정하는 작은 정성을 스스로 그칠 수 없어 흐린 정신을 떨치고 글을 올리니 말에 차례가 없습니다. 비변사에 내리시어 참작하여 시행하게 하심이 어떠하겠습니까.

협주 1

저본은 沈𢠘時이나 명나라 사신 심무시(沈懋時)의 잘못으로 보아 고쳐 적었다. ― 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