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5 근폭집

충청도 한 길의 방비를 처치하기를 청하는 계請措置忠淸一路防守。啓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356자 · 낭독 2.7분

징비록 권5 근폭집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賊勢日急而在我䇿應防備之事一不措置萬一衝突北上更如前日之變則漢江以南更無遮蔽之處寒心之事不一而足全羅道則已送巡邊使李鎰爲慶尙道諸軍之後援而忠淸道竹嶺鳥嶺秋風嶺黃澗永同一帶防備之事則尙無可倚前者賊兵分道上來時一運由鳥嶺直犯忠州一運由金山出於黃澗永同之路此等各處措置待變等事不可少忽但今處處無粮乏兵雖有可行之策而不得措手然不可任置而不爲之計也往時韓明胤爲永同縣監時得精勇之軍設伏勦擊多有斬獲自明胤死後其軍雖離散而亦有遺存者若能招募收拾猶可得數百人云今淸安縣監全有亨報恩縣監金好恬永同縣監鄭霽黃澗縣監柳大春皆在賊路所經要害地頭此四邑守令凡刷馬支供等事勿令侵責以休民力責令召募軍兵撫輯山尺勇力之人詳探賊路所由措置遮截之事而因令全有亨助防將稱號指揮措置四邑合爲一心預爲操鍊軍卒措備軍器以待不虞之變事忠淸監司及兵使處行移何如

적의 형세는 날로 급한데 우리 쪽에서 계책으로 응하고 방비하는 일은 하나도 조치되지 않았습니다. 만일 부딪쳐 북으로 올라오기를 다시 지난날 변고와 같이 하면 한강 이남에는 다시 가릴 곳이 없으니, 한심한 일이 한둘이 아닙니다.

전라도에는 이미 순변사 이일(李鎰)을 보내어 경상도 여러 군사의 뒤를 돕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충청도의 죽령·조령·추풍령과 황간·영동 일대를 방비하는 일은 아직 의지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앞서 적병이 길을 나누어 올라올 때, 한 무리는 조령으로 곧장 충주를 침범하고 한 무리는 금산으로 황간·영동 길로 나왔습니다. 이런 여러 곳에 조치하여 변을 기다리는 일을 조금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제 곳곳에 양식이 없고 군사가 모자라 행할 만한 계책이 있어도 손을 쓰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버려 두고 꾀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지난날 한명윤(韓明胤)이 영동현감이 되었을 때 정예하고 날랜 군사를 얻어 복병을 두고 쳐서 베고 사로잡은 것이 많았습니다. 한명윤이 죽은 뒤로 그 군사가 흩어졌으나 또한 남은 자가 있어, 불러 모아 거두면 오히려 수백 명은 얻을 수 있다 합니다.

이제 청안현감 전유형(全有亨), 보은현감 김호념(金好恬), 영동현감 정제(鄭霽), 황간현감 유대춘(柳大春)이 다 적이 지나는 길목 요해처에 있습니다. 이 네 고을 수령에게는 무릇 말을 징발하고 물자를 대는 일로 침탈하고 책망하지 말게 하여 백성의 힘을 쉬게 하고, 군병을 불러 모으고 산에서 사냥으로 사는 사람과 힘센 사람을 어루만져 모으며 적이 오는 길을 자세히 살펴 막아 끊을 일을 조치하게 하소서. 그리고 전유형에게 조방장 칭호를 주어 지휘하고 조치하여 네 고을이 한마음이 되게 하며, 미리 군졸을 조련하고 군기를 갖추어 뜻밖의 변을 기다릴 일을 충청감사와 병사에게 공문으로 보내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