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5 근폭집

김수남을 파사성 수성장으로 정해 달라고 청한 계請金壽男婆娑守城將差定事。啓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443자 · 낭독 3.4분

징비록 권5 근폭집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婆娑城已爲畢築時方措備軍粮器械以爲上流保守之地但驪州牧使臨時雖當入守而常時則在於本官城機修設等事未得專意顧見必須使武將一人稱爲守城將如秃城趙撥之例晝夜留在其處凡事急急措置可無疎虞且驪州境內人民於城守之事志意尙未堅固當以本土武將爲士民所知者爲守城將率其家屬先入而曉諭他人入城守禦然後可無渙散難合之憂護軍金壽男居在驪州壽男曾在平壤經歷戰陣不至恇怯云請金壽男婆娑守城將差定下送聽防禦使邊應星節制與本州牧使協同防守何如。答曰既委義嚴守又使金壽男守之未解其間曲折事。傳敎矣上流重地有城子處只有婆娑守城之事不可疎漏義嚴雖或居守而不可專委其事且所率軍皆是遠處山谷間無根之輩臨時調發或來或否用以築城則猶可若於急難之際只以此輩欲爲守城恐難得力呂州品官士人以下皆當淸野入城而本邑束伍之軍亦當分半入城亦非義嚴所能號令節制臣初欲使邊應星入守而江灘地面濶遠防禦使當往來檢勅不可但在一城之內故已令呂州牧使尹國馨臨時城守而若無武將之預在其處措設守備則亦恐未及於守禦故議于備邊司請以本處武將金壽男差送非偶然計而然也敢此更。禀

파사성은 이미 쌓기를 마쳤고 지금 군량과 무기와 기구를 갖추어 상류를 지키는 땅으로 삼으려 합니다. 다만 여주목사가 때가 되면 들어가 지켜야 하나 평소에는 제 고을에 있어, 성의 시설을 고쳐 세우는 일을 오로지 마음 써 돌아보지 못합니다. 반드시 무장 한 사람을 수성장이라 이름하여 수원 독성(禿城)의 조발(趙撥)처럼 밤낮으로 그곳에 머물게 하여 모든 일을 서둘러 조치하게 해야 허술할 걱정이 없습니다.

또 여주 경내 백성은 성을 지키는 일에 뜻이 아직 굳지 못합니다. 마땅히 그 고장 무장으로 사민이 아는 사람을 수성장으로 삼아 제 식구를 거느리고 먼저 들어가게 하고, 남들을 타일러 성에 들어가 지키게 한 뒤에야 흩어져 다시 모으기 어려운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호군 김수남(金壽男)이 여주에 사는데, 일찍이 평양에 있으며 싸움을 겪어 겁내지 않는다 합니다. 김수남을 파사성 수성장으로 정해 내려보내 방어사 변응성의 절제를 받으며 그 고을 목사와 함께 지키게 함이 어떠하겠습니까.

이에 답하시기를 「이미 의엄(義嚴)에게 맡겨 지키게 하고 또 김수남에게 지키게 하니 그 사이 곡절을 알지 못하겠다」 하고 전교하셨습니다.

상류의 중한 땅에 성이 있는 곳은 파사뿐이니 지키는 일을 허술히 할 수 없습니다. 의엄이 머물러 지킨다 하여도 그 일을 오로지 맡길 수는 없습니다. 또 그가 거느린 군사는 다 먼 곳 산골의 뿌리 없는 무리라 때에 닥쳐 불러내면 오기도 하고 오지 않기도 합니다. 성 쌓는 데 쓰면 그런대로 되겠으나, 급하고 어려울 때 이 무리만으로 성을 지키려 하면 힘을 얻기 어려울까 합니다.

여주의 품관과 사인 이하가 다 들을 비우고 성에 들어가야 하고 그 고을 속오군도 절반을 나누어 성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 또한 의엄이 호령하고 절제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신이 처음에는 변응성에게 들어가 지키게 하려 하였으나, 강 여울의 땅이 넓고 멀어 방어사가 오가며 단속해야 하니 한 성 안에만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여주목사 윤국형(尹國馨)에게 때가 되면 성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무장이 미리 그곳에 있어 지킬 채비를 갖추지 않으면 막아 지키는 데 미치지 못할까 합니다. 그러므로 비변사에 의논하여 그곳 무장 김수남을 보내기를 청한 것이니, 우연히 그리한 계책이 아닙니다. 감히 이렇게 다시 아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