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사람과 묻고 답한 까닭을 아뢰고 이어 문안드린 장계馳。啓見唐人問答緣由因奔問。起居狀
今月十二日夜追來唐人八名自平壤馳到肅川十三日發向義州臣招致摠騎一人問賊兵形止則答云賊兵數本不多其中亦多假設疑似之兵以惑人見如持旗幟之類皆是不中用之兵若我兵來集乘夜掩擊則可以一擧蕩滅云臣對曰爾言正是正是倭賊當初原不敢與我軍相敵只緣民不知兵已二百年猝然遇之不能扺當望風奔潰以至於此今兵迫城下已累日城中望救一刻甚急未知。天兵當於何日到此摠騎答云十日十一日間應已越江因言援兵之來本不當遲緩而義州節制使多般搪塞哨探之人我地方官甚以爲非云奮臂扼腕言之不已臣答云本官不識事體有此違悞國家欲拿鞫論罪而以兵事方殷不能易置邊將姑待事定後論罪云則答曰何至欲拿打因卽辭去臣又聞唐人於一紙圖畫平壤地形及賊陣形止持去云昨日夕時林世祿又率唐人十五名馳到安州更擬哨探於平壤今朝始見所賫咨文則有題請擬議之語兵期遲速似難料度臣不勝悶迫問世祿曰平壤受兵已久留陣將官方極力把截但水上下淺灘甚多賊狡計百出萬一偷渡繞出城北則勢甚危迫未知。天兵幾日當到此答曰前去夜不收已探賊情而去軍馬當卽越江俺回路當遇於定州等處臣因致往來勞苦慰謝之意而退大槪竊看唐人辭色自初雖聞我國被倭賊來侵而不知虛的其後南邊郡邑以及都城連陷於旬日之間頗致恠訝且又事勢則甚急而告變請兵之事率多稽緩義州又復多費辭說糖塞來探之人別無泣血奔走倉黃迫切之狀故雖云發兵相救而終以事情爲疑致此遷延此事理之所固然者且唐人累問。國王何以又爲遷避臣令譯官對以賊兵迫城群臣請少出避而將官率兵督守保無疎虞云答曰知道矣惟是一路郡縣人吏頑甚且逃去殆盡唐人飲食及飼馬草料多不接濟唐人時有憝色發於言語此於事機體貌極爲關重臣戒勅守令使之十分盡心而猶未如意前頭大兵之來調度支供益難成形臣尤爲悶慮且臣之愚昧何知兵事但連日在城中詳觀賊兵形勢極有可乘之機若得援兵來到合力齊擧則可無不勝之勢而。大駕移蹕之後民心不甚擾動軍士各自致力此亦恐是天意江邊潰散還歸之卒及他未發之士勿論多少節次添入爲當傳聞黃海道海邊居民亦多相聚剽掠別無統屬其數甚多云亦須別遣一人急速招集以添軍數或以海州牧使李泰亨爲其道節度使俾令收集散亡鎭守列邑如白川延安安岳文化海州許多海邊之邑賊兵皆所未到。朝廷嚴勅守令母得如前奔避以待賊退時合勢追截之計亦爲今時之急務矣謹遣從事官辛慶晉奉狀馳。聞且奔問。起居
이달 열이튿날 밤에 뒤따라온 명나라 사람 여덟이 평양에서 숙천에 달려 이르렀다가 열사흗날 의주로 떠났습니다. 신이 명나라 군관 한 사람(摠騎)을 불러 적병의 형편을 물으니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적병의 수가 본디 많지 않고, 그 가운데도 거짓으로 꾸며 의심하게 하는 군사가 많아 사람의 눈을 홀립니다. 기치를 든 따위는 다 쓸모없는 군사입니다. 우리 군사가 와서 모여 밤을 타 엄습하면 한 번에 쓸어 없앨 수 있습니다.」
신이 대답하였습니다. 「그대 말이 옳고 옳습니다. 왜적이 애초에 본디 감히 우리 군사와 맞서지 못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군사 일을 알지 못한 지 이미 이백 년이라 갑자기 만나 당해 내지 못하고 적의 기세만 보고도 무너져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적병이 성 아래 다가온 지 여러 날이라 성안에서 구원을 바라기가 한시가 급합니다. 명나라 군사가 어느 날 여기에 이를지 모르겠습니다.」
그 군관이 대답하기를 「열흘이나 열하룻날 사이에 이미 강을 건넜을 것입니다」 하고, 이어 「구원병이 오는 것이 본디 더딜 까닭이 없는데, 의주 절제사가 여러 가지로 정탐하는 사람을 막고 미루니 우리 지방관이 매우 그르게 여깁니다」 하며 소매를 걷어붙이고 팔목을 부여잡으며 말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신이 「그 고을 관원이 일의 체모를 알지 못하여 이런 어긋남이 있었습니다. 나라에서 잡아 국문하여 죄를 논하려 하였으나, 군사 일이 한창이라 변장을 쉽게 바꿀 수 없어 우선 일이 정해진 뒤에 죄를 논하려 합니다」 하니, 「어찌 잡아 치기까지야 하겠습니까」 하고는 곧 하직하고 갔습니다. 신이 또 들으니 명나라 사람이 종이 한 장에 평양 지형과 적진의 형편을 그려 가지고 갔다 합니다.
어제 저녁에 임세록(林世祿)이 또 명나라 사람 열다섯을 거느리고 안주에 달려 이르러 다시 평양을 정탐하려 하였습니다. 오늘 아침에야 가져온 자문을 보니 위에 아뢰어 의논하게 한다는 말이 있어, 군사가 오는 시기의 더디고 빠름을 헤아리기 어려울 듯합니다. 신이 민망하고 급함을 이기지 못하여 임세록에게 물었습니다. 「평양이 적을 맞은 지 이미 오래라 진에 머무른 장수와 군관(將官)들이 힘을 다해 막아 끊고 있습니다. 다만 물 위아래 얕은 여울이 매우 많고 적의 간사한 꾀가 백 가지로 나오니, 만일 몰래 건너 성 북쪽으로 돌아 나오면 형세가 몹시 위태롭습니다. 명나라 군사가 며칠에 여기 이를지 모르겠습니다.」 대답하기를 「먼저 간 정탐꾼이 이미 적의 형편을 살피고 갔으니 군마가 곧 강을 건널 것입니다. 내가 돌아가는 길에 정주 등지에서 만날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신이 이에 오가는 수고를 위로하고 사례하는 뜻을 표하고 물러났습니다.
대개 가만히 명나라 사람의 말과 낯빛을 보니 이러합니다. 처음에는 우리나라가 왜적의 침노를 입었다는 말을 들었어도 헛된지 참인지 알지 못하다가, 그 뒤에 남쪽 고을에서 도성까지 열흘 사이에 잇따라 함락되었으므로 자못 괴이쩍게 여겼습니다. 게다가 사세는 몹시 급한데 변을 알리고 군사를 청하는 일이 대개 더디었고, 의주에서는 또 말만 많이 허비하며 와서 정탐하는 사람을 막고 미루어, 피눈물로 달려가는 창황하고 절박한 모양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군사를 내어 구한다 하면서도 끝내 사정을 의심하여 이렇게 미루게 된 것이니, 이는 사리로 보아 그럴 만한 일입니다.
또 명나라 사람이 국왕께서 어찌하여 또 옮겨 피하셨는가를 여러 번 물었습니다. 신이 역관을 시켜 「적병이 성에 다가와 여러 신하가 잠시 나가 피하시기를 청하였고, 장수와 군관들이 군사를 거느리고 독려하여 지키니 허술할 걱정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게 하니 「알겠다」 하였습니다. 다만 이 한 길의 고을 아전들이 몹시 완악하고 또 달아나 거의 다 없어져서, 명나라 사람의 음식과 말 먹일 꼴을 대어 주지 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명나라 사람이 때로 노여운 빛을 말에 드러내니, 이는 일의 기틀로 보나 체모로 보나 매우 중한 일입니다. 신이 수령을 경계하고 단속하여 십분 마음을 다하게 하였으나 아직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앞으로 큰 군사가 오면 뒷바라지가 더욱 꼴을 이루기 어려울 것이라 신이 더욱 민망합니다.
또 신이 어리석고 어두우니 군사 일을 어찌 알겠습니까. 다만 며칠 성안에 있으며 적병의 형세를 자세히 보니 탈 만한 기회가 매우 있습니다. 구원병이 와서 힘을 합쳐 함께 일어나면 이기지 못할 형세가 없을 것입니다. 대가(大駕)가 옮겨 가신 뒤에도 백성의 마음이 심히 흔들리지 않고 군사가 저마다 힘을 다하니, 이 또한 하늘의 뜻인가 합니다. 강변에서 무너져 흩어졌다가 돌아온 군졸과 아직 나오지 않은 군사를 많고 적음을 가리지 말고 차례로 더 넣어야 마땅합니다.
전하는 말에 황해도 바닷가 백성도 많이 모여 노략질하는데 거느릴 데가 없고 그 수가 매우 많다 합니다. 또한 따로 한 사람을 보내 급히 불러 모아 군사 수에 보태야 합니다. 혹 해주목사 이태형(李泰亨)을 그 도의 절도사로 삼아 흩어진 자를 거두어 모으고 여러 고을을 지키게 하소서. 배천·연안·안악·문화·해주 같은 바닷가 여러 고을에는 적병이 다 이르지 않았습니다. 조정에서 수령을 엄히 단속하여 전처럼 달아나 피하지 못하게 하고, 적이 물러갈 때를 기다려 세력을 합해 뒤쫓아 끊을 계책을 세우는 것도 지금의 급한 일입니다. 삼가 종사관 신경진(辛慶晉)을 보내 장계를 받들어 달려가 아뢰게 하고, 아울러 문안드립니다.
협주 4
壬辰六月十三日
임진년 유월 열사흗날
摠騎 — 명나라 군대의 군관
大駕 — 임금의 수레, 곧 임금을 이르는 말이다. ― 옮긴이
이 단락에서 명나라 사람이 한 말 안의 「우리 군사」는 말한 이가 명나라 사람이므로 명나라 군사를 가리킨다. ― 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