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6 진사록

임반역에서 명나라 장수가 이빈에게 분부한 일과 충청도 장계 지닌 사람을 올려 보낸 일과 홍종록을 보내 구성 창고 곡식을 지키게 한 일을 아뢴 장계林畔驛唐將分付李薲事及路逢忠淸道書狀陪持人上送發遣從事官洪宗祿看守龜城倉糓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543자 · 낭독 4.7분

징비록 권6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臣昨日留金命元李元翼兵使李潤德守定州與防禦使李薲同行到雲興斥候唐人皆已還去日沒時到林畔初欲請見唐將伏聞。軍駕已親臨面議臣追到言辭曲折恐致重複還有未安之意故令譯官只通李薲姓名以爲平壤留陣將帥欲親陳賊勢且聽老爺約束故來兩將答云賊勢吾已詳聞將帥離陣出來則軍士將解散無留見我卽還去整軍以待可也旣而史遊擊招通事密語云吾不議於戴叅將獨通于總兵官請簡精兵三百直到賊所若報可則吾當馳進汝國將帥亦極擇精銳以待吾行嚮導可也李薲終不得見今曉還赴定州而他餘諸將之分散者如李鎰李薦邈無形影監司宋言愼以本道總率之官亦由他路以去時在定州者手下無一軍卒拱手相視計無所出自大駕西行漸深道路流民十五爲群如失家之狗無所係心强者搶掠弱者奔迸數日之內將盡爲亂民所見悲慘臣之昧慮只有叩心推胷求死不得而已臣路逢沔川鄕吏自言持忠淸監司。啓本欲達。行在而間關水陸足腫難行臣令帶率下人有馬者率去馳送狀啓之事雖未的知而漢江以南忠淸全羅郡邑尙皆完全慶尙左右道郡邑除賊所經過者外皆爲我土黃海道海州等邑亦未蕩敗北道關東依舊而今幸。天兵來救若將士協心與之合力似不至於無可奈何但國綱蕩然寇賊未至之處守令爭先逃去散失倉糓傳聞江邊近處如龜城等邑亦已如此唐兵雖來事無可爲臣從事官洪宗祿曾在龜城詳知其處之事故事急未及。啓禀從中路發送使之馳去曉諭人更堅守倉糓以待調發云云

신이 어제 김명원(金命元)·이원익(李元翼)과 병사 이윤덕을 머물러 정주를 지키게 하고, 방어사 이빈(李薲)과 함께 운흥에 이르렀습니다. 척후하던 명나라 사람은 다 이미 돌아갔고, 해 질 무렵 임반(林畔)에 이르렀습니다. 처음에는 명나라 장수를 뵙기를 청하려 하였으나, 임금께서 이미 몸소 임하여 마주 의논하셨다고 엎드려 들었으므로, 신이 뒤미처 이르러 말하는 곡절이 거듭될까 하여 도리어 미안한 뜻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역관에게 이빈의 이름만 통하게 하고, 평양에 진을 머무른 장수가 몸소 적의 형세를 아뢰고 또 어른의 분부를 들으려 왔다고 하였습니다.

두 장수가 대답하기를 「적의 형세는 내가 이미 자세히 들었다. 장수가 진을 떠나 나오면 군사가 흩어질 것이니, 나를 보려고 머물지 말고 곧 돌아가 군사를 정돈하고 기다리는 것이 옳다」 하였습니다. 이윽고 사 유격(史遊擊)이 통사를 불러 가만히 말하기를 「내가 대 참장(戴叅將)과 의논하지 않고 홀로 총병관에게 통하여 정병 삼백을 골라 곧장 적 있는 곳에 이르기를 청하였다. 허락한다는 보고가 오면 내가 달려 나아갈 것이니, 너희 나라 장수도 정예를 잘 골라 내가 가기를 기다렸다가 길잡이가 되는 것이 옳다」 하였습니다. 이빈은 끝내 뵙지 못하고 오늘 새벽 정주로 돌아갔습니다.

그 밖에 흩어진 여러 장수는, 이일(李鎰)과 이천(李薦) 같은 이는 아득히 그림자도 없고, 감사 송언신(宋言愼)은 그 도를 거느리는 관원인데도 다른 길로 갔습니다. 지금 정주에 있는 사람은 손 아래 군졸 하나 없어 팔짱을 끼고 서로 바라보며 낼 계책이 없습니다. 대가가 서쪽으로 더욱 깊이 옮겨 가신 뒤로 길의 유민이 열씩 다섯씩 무리를 지어 집 잃은 개처럼 마음 붙일 데가 없고, 강한 자는 노략질하며 약한 자는 달아나 흩어지니, 며칠 안에 다 난민이 될 것이라 보이는 바가 비참합니다. 신의 어두운 생각으로는 다만 가슴을 두드리고 밀치며 죽으려 하여도 죽지 못할 뿐입니다.

신이 길에서 면천 향리를 만났는데, 스스로 충청감사의 계본을 가지고 행재소에 올리려 한다면서 물과 뭍으로 어렵게 오느라 발이 부어 가기 어렵다 하였습니다. 신이 데리고 있는 아랫사람 가운데 말 있는 자에게 데리고 달려가게 하였습니다. 장계의 내용은 확실히 알지 못하나, 한강 이남 충청도와 전라도 고을은 아직 다 온전하고, 경상 좌우도 고을도 적이 지나간 곳을 빼면 다 우리 땅이며, 황해도 해주 등 고을도 아직 무너지지 않았고, 북도와 관동은 예와 같습니다. 이제 다행히 명나라 군사가 구하러 오니, 장수와 군사가 마음을 모아 힘을 합치면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는 이르지 않을 듯합니다.

다만 나라의 기강이 무너져 적이 이르지 않은 곳에서도 수령이 앞다투어 달아나 창고 곡식을 흩어 잃습니다. 전하는 말에 강변 가까운 구성(龜城) 같은 고을도 이미 이러하다 하니, 명나라 군사가 오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없게 됩니다. 신의 종사관 홍종록(洪宗祿)이 일찍이 구성에 있어 그곳 일을 자세히 압니다. 그러므로 일이 급하여 미처 아뢰지 못하고 중로에서 보내, 달려가 사람들을 타일러 창고 곡식을 굳게 지키며 불러 낼 때를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협주 1

六月

유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