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곡식 배가 와 닿은 곡절과 조호익을 보내 강동 등지에서 군사를 불러 모으게 한 일, 또 홍세공을 조도사에서 갈지 말고 그대로 맡기기를 청하여 달려 아뢴 장계馳。啓牙山糧船到泊緣由及發遣曹好益召募江東等處軍兵且請洪世恭勿遞調度使仍舊察任狀
臣旣爲祇受書狀後卽因忠淸道進上陪去人所言聞牙山倉白米一千二百石已泊于定州立巖地距定州三十里許若乘潮回泊于安州則一日可到臣方以安州以後糧餉接濟爲憂遠道許多糧船如期適到必是天賛國家中興之運不勝喜幸卽時發遣守門將康士雍及臣帶率軍官使之馳去令於明日內到泊于安州此船旣到安州則軍糧自爲可繼而順安縣亦有馬豆一千餘石人馬所需皆無匱乏之憂今大兵旣集賊勢宜蹙正須多發軍兵各處幷進以成掎角之勢臣路中逢義禁府都事曹好益自言前以。朝廷之命召募於江東等處而平壤失守之後人多渙散且無上司公文雖有願從者未易聚會臣卽爲文移曉諭江東成川等處守令人民使之具興應募以赴國家之急仍使曹好益更去招集若江東等地之兵又頗收集與三縣之兵東西夾持而分遺精卒抄擊中和往來之賊且與黃海道形勢相連則平壤之賊如籠中之鳥不難殲滅也臣卽聞調度使洪世恭以罪罷職云世恭固不無稽緩失誤之罪但今方在此察任遞易之後他人未及來到恐事益稽緩似當姑仍其任事定後論罪合於時宜敢此煩禀惶恐無地
신이 서장을 삼가 받은 뒤, 곧 충청도 진상 물건을 지고 가는 사람의 말로 아산창(牙山倉)의 흰쌀 천이백 섬이 이미 정주(定州) 입암(立巖) 땅에 와 닿았다고 들었습니다. 정주에서 삼십 리쯤 되는 곳이니, 조수를 타고 안주(安州)로 돌려 대면 하루면 이를 수 있습니다. 신이 마침 안주 이후의 양식을 이어 대는 일을 걱정하던 참인데, 먼 길의 많은 곡식 배가 때맞추어 마침 이르렀으니, 반드시 하늘이 나라의 중흥할 운수를 도운 것이라 기쁘고 다행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즉시 수문장 강사옹(康士雍)과 신이 데리고 있는 군관을 보내 달려가게 하여 내일 안으로 안주에 대게 하였습니다. 이 배가 안주에 이르면 군량은 저절로 이을 수 있고, 순안현(順安縣)에도 말먹이 콩 천여 섬이 있으니 사람과 말에 드는 것이 다 모자랄 걱정이 없습니다. 이제 큰 군사가 이미 모였으니 적의 형세가 마땅히 오그라들 것입니다. 바로 군사를 많이 내어 곳곳에서 함께 나아가 앞뒤로 맞물어 죄는 형세를 이루어야 합니다.
신이 길에서 의금부 도사 조호익(曺好益)을 만났습니다. 스스로 말하기를, 전에 조정의 명으로 강동(江東) 등지에서 군사를 불러 모았으나 평양을 지키지 못한 뒤로 사람들이 많이 흩어졌고, 또 상사의 공문이 없어 따르기를 원하는 자가 있어도 쉬 모이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신이 곧 공문을 지어 강동·성천(成川) 등지의 수령과 백성에게 타일러, 다 함께 일어나 모집에 응하여 나라의 급한 일에 달려오게 하고, 이어 조호익에게 다시 가서 불러 모으게 하였습니다. 만약 강동 등지의 군사를 또 자못 거두어 모아 세 고을 군사와 더불어 동쪽과 서쪽에서 끼고, 정예 군졸을 나누어 보내 중화(中和)를 오가는 적을 치며, 또 황해도와 형세가 서로 이어지면, 평양의 적은 새장 속의 새와 같아 섬멸하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신이 방금 들으니 조도사 홍세공(洪世恭)이 죄로 파직되었다 합니다. 홍세공에게 진실로 늦추고 그르친 죄가 없지는 않습니다. 다만 지금 여기서 그 소임을 맡아 보고 있는데, 갈린 뒤에 다른 사람이 미처 오지 못하면 일이 더욱 늦어질까 두렵습니다. 아직은 그 소임을 그대로 두고 일이 정해진 뒤에 죄를 논하는 것이 때에 맞을 듯합니다. 감히 이렇게 번거로이 여쭈오니 황공하기 그지없습니다.
협주 1
同日
같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