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6 진사록

명나라 군사가 안주를 지난 일과 소와 술을 미리 갖추어 명나라 군사를 먹일 일을 아뢴 장계天兵過安州事及預備牛酒犒餉。天兵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521자 · 낭독 4.1분

징비록 권6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天兵本月十五日自嘉山曉發到安州不入城從晴川江直向肅川一路糧餉支供之事自安州以南尤甚蕩敗恐無以成形適宣傳官愼德容調發甑山咸從之糓八百二十石及調度使洪世恭調發熙川雲山博川寧邊价川等處之糓五百六十九石俱到安州唐兵過去後盡發州內見在民夫及除出戰用不關老殘軍及時負戴追及於肅川俵給軍糧後今方輸送順安者三百四十餘石足以支數日之糧其未足者陸續輸送牙山倉米三百石移載甑山船隻令回泊于三和廣梁龍岡三和等官米豆八百餘石幷令回泊廣梁幸若。天兵收復平壤而渡江追躡則將以此糓接之第念。天兵出來後因事力窘竭尙未一擧犒軍之禮其於國體極爲未安萬一得成大功蕩平兇賊而還則宴慰犒賞之事當從優厚以答其勤臣與調度使等相議欲於平壤安州定州義州四處爲之所入雜物大槩參商則一處各酒千餘盆牛二十餘頭猪羊鷄狗從其所得措備各以近處郡邑幷定預辦其中又定差使員使之次知檢察行移知委此事於國家事體關重且。天兵旣已救活我國百萬生靈之命則其所以報答者不容不盡雖有小弊有不暇顧况酒千餘盆不過米三十石以此計之則幷定各官一處所出僅五六石而足可辦出惟牛隻則本道頗稀貴故慮或難辦令民間自願備納者限年復戶免役或他論賞如此湊合可以成禮但義州則。大駕所駐其禮似當盛於他邑宴餉後唐將以下贈給禮幣亦令該曹預爲磨鍊準備使無臨時窘乏之患

명나라 군사가 이달 보름날 가산(嘉山)에서 새벽에 떠나 안주(安州)에 이르렀는데, 성에 들어가지 않고 청천강을 따라 곧장 숙천(肅川)으로 향하였습니다. 한 길의 양식을 대는 일은 안주 이남이 더욱 심히 무너져 꼴을 이루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마침 선전관 신덕용(愼德容)이 증산(甑山)·함종(咸從)의 곡식 팔백스무 섬을, 조도사 홍세공(洪世恭)이 희천·운산·박천·영변·개천 등지의 곡식 오백예순아홉 섬을 조발하여 다 안주에 이르렀습니다. 명나라 군사가 지나간 뒤에 고을 안에 있는 인부와, 싸움에 쓰지 않는 늙고 약한 군사를 다 내어, 때맞추어 지고 이고 숙천까지 뒤쫓아 가 군량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지금 순안(順安)으로 실어 보내는 것이 삼백사십여 섬이니 며칠 양식은 넉넉히 댈 만하고, 모자라는 것은 잇달아 실어 보내겠습니다.

아산창 쌀 삼백 섬은 증산의 배에 옮겨 실어 삼화(三和) 광량(廣梁)에 돌려 대게 하고, 용강(龍岡)·삼화 등 고을의 쌀과 콩 팔백여 섬도 아울러 광량에 돌려 대게 하였습니다. 다행히 명나라 군사가 평양을 되찾고 강을 건너 뒤쫓으면 이 곡식으로 대려 합니다.

다만 생각건대 명나라 군사가 나온 뒤로 일과 힘이 다하여 아직 한 번도 군사를 먹이는 예를 치르지 못하였으니, 나라의 체면에 몹시 미안합니다. 만일 큰 공을 이루어 흉악한 적을 쓸어 없애고 돌아오면, 잔치로 위로하고 상 주는 일을 마땅히 넉넉히 하여 그 수고에 답해야 합니다. 신이 조도사 등과 서로 의논하여 평양·안주·정주·의주 네 곳에서 하려 합니다. 드는 잡물을 대강 헤아리면 한 곳에 각각 술 천여 동이와 소 스무남은 마리이고, 돼지·양·닭·개는 얻는 대로 마련합니다. 각각 가까운 고을을 아울러 정하여 미리 갖추게 하고, 그 가운데 또 차사원을 정하여 맡아 살피게 하도록 공문을 보내 알렸습니다.

이 일은 나라의 체모에 관계됨이 무겁고, 또 명나라 군사가 이미 우리나라 백만 백성의 목숨을 구해 살렸으니 갚는 바를 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은 폐단이 있더라도 돌아볼 겨를이 없습니다. 더구나 술 천여 동이는 쌀 서른 섬에 지나지 않으니, 이로 헤아리면 아울러 정한 각 고을이 한 곳에 내는 것이 겨우 대여섯 섬이라 넉넉히 마련해 낼 수 있습니다. 오직 소는 이 도에 자못 드물고 귀하여 마련하기 어려울까 걱정되므로, 민간에서 스스로 원하여 갖추어 바치는 자에게는 햇수를 한정하여 집에 지우는 부역을 면제해 주거나 달리 상을 논하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모으면 예를 이룰 수 있습니다.

다만 의주는 대가가 머무시는 곳이니 그 예가 마땅히 다른 고을보다 성대해야 할 듯합니다. 잔치 뒤에 명나라 장수 이하에게 주는 예물도 해당 관청으로 하여금 미리 마련해 준비하게 하여, 때에 임하여 군색할 걱정이 없게 하소서.

협주 1

七月十七日

칠월 열이렛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