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6 진사록

명나라 군사가 평양을 치다가 불리하여 사 유격이 싸우다 죽은 일을 아뢴 장계天兵進攻平壤不利史遊擊戰死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203자 · 낭독 1.8분

징비록 권6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昨日唐兵進勦倭賊終日佇待吉語忽聞先鋒史遊擊爲鐵丸所傷以死唐兵連續退來極爲驚駭之際夜半祖總兵王參將立馬城外招通事朴義儉語之曰今日我軍入城多殺倭寇而不意史遊擊身死我軍亦多死亡俺等欲仍留更爲勦捕而矢盡火炮亦盡故不得已退軍當與楊總兵更調兵馬多數出來傳語宰相撫定人心勿爲搖動津頭浮橋亦勿少動以待之俺等遲不過三四日當更來本欲入城留宿而此處糧餉不敷故不爲入宿今日當到定州因馳去云他餘事當隨後狀。啓此甚緊急消息故敢此先爲馳。啓

어제 명나라 군사가 나아가 왜적을 치므로 온종일 좋은 소식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선봉 사 유격(史遊擊)이 철환에 맞아 죽었다는 말이 들리고, 명나라 군사가 잇달아 물러 나오니 몹시 놀랍고 두렵던 참이었습니다.

밤중에 조 총병(祖總兵)과 왕 참장(王參將)이 성 밖에 말을 세우고 통사 박의검(朴義儉)을 불러 말하였습니다. 「오늘 우리 군사가 성에 들어가 왜구를 많이 죽였으나, 뜻밖에 사 유격이 죽고 우리 군사도 죽은 이가 많다. 우리는 그대로 머물러 다시 치려 하였으나 화살이 다하고 화포도 다하였으므로 부득이 군사를 물렸다. 마땅히 양 총병(楊總兵)과 함께 다시 군마를 조발하여 많은 수로 나올 것이니, 재상에게 말을 전하여 인심을 어루만져 안정시키고 흔들리지 않게 하라. 나루의 배다리도 조금도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 우리는 늦어도 사나흘 안에 반드시 다시 오겠다. 본래 성에 들어가 묵으려 하였으나 이곳 양식이 넉넉하지 않으므로 들어가 묵지 않는다. 오늘 정주에 이를 것이다.」 그러고는 달려갔습니다.

그 밖의 일은 마땅히 뒤따라 장계로 아뢰겠습니다. 이는 매우 긴급한 소식이므로 감히 이렇게 먼저 달려 아룁니다.

협주 1

十八日

열여드렛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