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6 진사록

청룡포의 군량을 조처한 일을 아뢴 장계處置靑龍浦軍糧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149자 · 낭독 1.3분

징비록 권6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唐兵退去緣由臣已爲狀。啓勝敗兵家常事况唐將不無輕敵之心以至於此極爲痛惋三縣之糓輸到靑龍浦事當初意唐兵直進過江恐前途糧餉難繼故有此處置今則事勢如此師期遲速難可預期故臣通文於金信元使之量勢處之以唐人所言觀之則楊總兵之軍似當繼爲來到自義州以南糧料之需亦應再加料理然後可以支給臣亦留此無益更觀事勢爲之進退計料

명나라 군사가 물러간 곡절은 신이 이미 장계로 아뢰었습니다.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의 예삿일입니다만, 명나라 장수가 적을 가벼이 여기는 마음이 없지 않아 이에 이르렀으니 몹시 애통하고 한탄스럽습니다.

세 고을 곡식을 청룡포(靑龍浦)로 실어 오게 한 일은, 당초 명나라 군사가 곧장 나아가 강을 건널 것이라 여겨 앞길의 양식을 잇기 어려울까 걱정하여 이렇게 조처한 것입니다. 이제는 사세가 이와 같아 군사를 일으킬 때가 이를지 늦을지 미리 기약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신이 김신원(金信元)에게 공문을 보내 형세를 헤아려 처리하게 하였습니다.

명나라 사람의 말로 보면 양 총병(楊總兵)의 군사가 잇달아 올 듯합니다. 의주 이남의 양식도 마땅히 다시 더 마련한 뒤라야 댈 수 있습니다. 신도 여기 머물러 있어 이로울 것이 없으니, 다시 사세를 보아 나아가고 물러날 계획입니다.

협주 2

七月十九日

칠월 열아흐렛날

저본은 金信元이다. 앞뒤에 거듭 나오는 도원수 김명원(金命元)과는 다른 사람으로 보인다. ― 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