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6 진사록

명나라 군사가 공강정으로 물러나 머문 곡절을 아뢴 장계天兵退駐控江亭緣由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697자 · 낭독 5.9분

징비록 권6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今此。天兵又不利於小醜其爲痛憤莫此爲甚蓋緣我國近日之報皆以倭賊欲退遁爲言祖總兵以下逐利輕進倍道疾馳馬病人疲加以天時不齊大雨泥濘冒夜行師頓之堅城之下以其所短乘其所長其致敗衂固不足恠旣退之後又不與我國之人商議處置而乘夜以行過州府皆不入雜於亂軍之中徹曉不止臣聞昨日住控江亭使從事官辛慶晉馳去問安則答以若知宰相在安州可入見而爲護史遊擊喪事過去云因爲留宿於亭上軍糧十餘駄及支待饌物顚倒追及今日又因韓應寅所報聞唐將欲退駐嘉山而應寅令譯官語之以當駐安州則唐將持疑未决揀閱軍士之有病者云自昨日至今大雨如注控江亭乃是草野空濶之地無一依庇而許多兵馬枕藉風雨以至二日極爲矜慘唐將之意欲更閱軍兵且招楊總兵多發兵馬而來臣竊念卽今雨潦方深開霽遲速未可預期而一路軍糧所儲定州有龜城移米三四百石牙山倉田稅米五百石安州有牙山稅米七百餘石此外郡邑所儲大抵僅支一二日今唐兵所駐之處非定州則安州而安州自亂民作亂之後器具蕩然假家等事雖方督令而亦難如意造作觀此事勢祖總兵則當少駐定州休息軍馬而其病不堪用者皆爲還送楊總兵則或因在江沿堡或進駐義州以俟雨霽然後以次徐徐進發使馬力不乏軍鋒不疲計出萬全可也不然而輕動不已千萬之兵遽復前來處處留連而雨不時霽川渠漲溢則進退狠狽在我亦將何力繼餉坐食之軍至於多日乎臣參詳事勢計不知所出爲之達曉吁嗟謹此具由馳。啓朝廷各別從長處置史遊擊之喪在我當極優護而送臣聞其將至卽令州官備棺材祭物以待而夜中過去人不及知棺則追送於途中其他千總以下身死者亦有數人因我國之事天朝將士至於死亡傷痛尤極護喪路費銀兩及祭奠事各別致厚施行庶幾盡繾綣之意祖總兵之言於辛慶晉者亦如此臣留此別無所事第念唐兵敗退之後人心恐或搖動姑爲仍留觀勢進退計料

이번에 명나라 군사가 또 하찮은 적에게 불리하였으니 애통하고 분함이 이보다 심한 것이 없습니다. 대개 우리나라의 요사이 보고가 다 왜적이 물러 달아나려 한다고 말한 탓입니다. 조 총병(祖總兵) 이하가 이익을 좇아 가벼이 나아가 이틀 길을 하루에 달리니 말은 병들고 사람은 지쳤습니다. 게다가 날씨가 고르지 못하여 큰비로 진창이 된 데다 밤을 무릅쓰고 군사를 몰아 굳은 성 아래에 다다랐습니다. 제 짧은 것으로 저들의 긴 것을 맞섰으니 패한 것이 진실로 괴이할 것이 없습니다.

물러난 뒤에도 우리나라 사람과 의논하여 조처하지 않고, 밤을 타 행군하여 지나는 고을에 다 들어가지 않은 채 어지러운 군사 가운데 섞여 새벽까지 그치지 않았습니다. 신이 어제 공강정(控江亭)에 머물렀다는 말을 듣고 종사관 신경진(辛慶晉)에게 달려가 문안하게 하였더니, 「재상이 안주에 있는 줄 알았다면 들어가 보았을 것이나, 사 유격(史遊擊)의 상사를 호송하느라 지나쳤다」고 답하고는 정자 위에서 묵었습니다. 군량 열여 바리와 대접할 음식을 허둥지둥 뒤쫓아 대었습니다. 오늘 또 한응인(韓應寅)의 보고로 명나라 장수가 가산으로 물러나 머물려 한다고 들었습니다. 한응인이 역관을 시켜 마땅히 안주에 머무르라고 말하게 하니, 명나라 장수는 의심을 품고 결정하지 못한 채 병든 군사를 가려 점검한다 합니다.

어제부터 지금까지 큰비가 쏟아붓듯 합니다. 공강정은 곧 풀밭의 텅 빈 넓은 땅이라 하나도 의지해 가릴 것이 없는데, 많은 군마가 비바람 속에 서로 겹쳐 누운 채 이틀에 이르렀으니 몹시 딱하고 참혹합니다. 명나라 장수의 뜻은 다시 군사를 점검하고 또 양 총병(楊總兵)을 불러 군마를 많이 내어 오려는 것입니다.

신이 가만히 생각건대, 지금 장맛비가 한창이라 개는 것이 이를지 늦을지 미리 기약할 수 없습니다. 한 길에 쌓아 둔 군량은, 정주에 구성(龜城)에서 옮긴 쌀 삼사백 섬과 아산창(牙山倉) 전세 쌀 오백 섬이 있고, 안주에 아산창 전세 쌀 칠백여 섬이 있습니다. 그 밖에 고을에 쌓인 것은 대개 겨우 하루 이틀 댈 만합니다. 이제 명나라 군사가 머무를 곳은 정주가 아니면 안주인데, 안주는 난민이 난을 일으킨 뒤로 살림살이와 기물이 다 없어졌고 임시 막집 따위도 지금 독촉하고 있으나 뜻대로 지어 내기 어렵습니다.

이 사세를 보건대, 조 총병은 마땅히 정주에 잠깐 머물러 군마를 쉬게 하고 병들어 쓸 수 없는 자는 다 돌려보내며, 양 총병은 강가 보루에 그대로 있거나 의주로 나아가 머물러 비가 개기를 기다린 뒤에 차례로 천천히 떠나게 하여, 말 힘이 모자라지 않고 군사의 예봉이 지치지 않게 하는 것이 만전을 기하는 계책이라 옳겠습니다. 그렇지 않고 가벼이 움직이기를 그치지 않아 천만 군사가 갑자기 다시 앞으로 와 곳곳에 머물러 지체하는데 비는 제때 개지 않고 내와 도랑이 넘치면, 나아가고 물러남이 낭패가 되니 우리에게 또한 무슨 힘이 있어 여러 날 앉아 먹는 군사에게 양식을 잇겠습니까. 신이 사세를 자세히 헤아려 보아도 낼 계책을 알지 못하여 이 때문에 새벽이 되도록 탄식하였습니다. 삼가 이렇게 곡절을 갖추어 달려 아뢰오니, 조정에서 각별히 좋은 쪽을 좇아 처치하소서.

사 유격의 상사는 우리로서 마땅히 극진히 넉넉하게 보호하여 보내야 합니다. 신이 그가 곧 이른다는 말을 듣고 곧 고을 관원에게 관(棺)과 제물을 갖추어 기다리게 하였으나, 밤중에 지나가 사람들이 미처 알지 못하였으므로 관은 길에서 뒤쫓아 보냈습니다. 그 밖에 천총 이하로 죽은 자도 몇 사람 있습니다. 우리나라 일로 명나라 장수와 군사가 죽기에 이르렀으니 아프고 쓰림이 더욱 극진합니다. 상여를 호송할 노자 은냥과 제사 일을 각별히 두터이 하여 시행하시면 거의 간곡한 뜻을 다할 것입니다. 조 총병이 신경진에게 한 말도 이와 같았습니다.

신이 여기 머물러야 달리 할 일이 없습니다. 다만 생각건대 명나라 군사가 패해 물러난 뒤라 인심이 혹 흔들릴까 두려우므로, 아직 그대로 머물러 형세를 보아 나아가고 물러날 계획입니다.

협주 1

저본은 같은 곡식을 田稅米와 稅米로 갈라 적었을 수 있다. 한 곡식이므로 「아산창 전세 쌀」로 맞추었다. ― 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