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6 진사록

군량이 지금 남아 있는 수를 조사하여 보고한 장계查報軍糧見在數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461자 · 낭독 3.6분

징비록 권6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天兵經過一路各官糧儲大抵皆蕩敗之餘當初意其不能成形近來諸處之糓運續輸運艱難湊合足可支給自義州賫糧可到定州自定州賫糧可到安州義州則本倉之糓頗優不足則昌朔二邑之糓可以連續添補定州安州則悉以他處之糓輸運前後唐兵已曾散給之外總計今日見在之數白造米田米幷二千五百石豆二千六百五十餘石唐兵支給一日之糧必用三升以此計之萬兵一日之糧爲二百石二千五百石則當爲萬兵半月之糧若五千兵則可支一月豆一馬支給一斗則二千六百餘石亦萬馬三四日之料此雖似不足而龜城所儲亦當添補安州站見在糓數雜米幷二千六百八十餘石豆一千七百七十石米數比定州稍優而豆則似爲不足然若未留連則猶可支給臣之患意賊勢方熾而我軍形勢孤弱人多㥘戰雖時時抄擊少有所獲而我軍死者過當至於人民逐日被死掠者不計其數萬一賊悉合醜類散漫西下則事之寒心非可以一二計前日。天兵之敗乃將帥失䇿輕敵之致非兵之罪也卽今秋氣已高馬足方健若請數千精兵與我軍先定約束誘引出來與之掎角馳驅於平原曠野之中則些少殘寇可以立盡此是何等大事何等機會雖有小弊有不暇計况見儲糧穀之數不至於蕩然無計。朝廷各別處置圖惟萬全長䇿不勝懇望之至

명나라 군사가 지나는 한 길의 각 고을 양식은 대개 다 무너지고 남은 것뿐이라, 당초에는 꼴을 이루지 못하리라 여겼습니다. 근래 여러 곳의 곡식을 잇달아 실어 나르고 어렵게 모아 넉넉히 댈 만합니다. 의주에서 양식을 지고 정주에 이를 수 있고, 정주에서 양식을 지고 안주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의주는 본 창고의 곡식이 자못 넉넉하고, 모자라면 창성·삭주 두 고을의 곡식으로 잇달아 보탤 수 있습니다. 정주와 안주는 다 다른 곳의 곡식을 실어 온 것입니다.

앞뒤로 명나라 군사에게 이미 나누어 준 것 말고 정주에 오늘 남아 있는 수를 다 헤아리면, 흰쌀·매조미쌀·밭쌀을 아울러 이천오백 섬, 콩 이천육백오십여 섬입니다. 명나라 군사에게 대는 하루 양식은 반드시 서 되를 씁니다. 이로 헤아리면 만 군사의 하루 양식이 이백 섬이니, 이천오백 섬은 만 군사의 보름 양식이 되고 오천 군사라면 한 달을 댈 수 있습니다. 콩은 말 한 마리에 한 말씩 주면 이천육백여 섬도 만 마리 말의 사나흘 먹이입니다. 이것이 모자랄 듯하나 구성(龜城)에 쌓인 것으로 또한 보탤 수 있습니다. 안주 참에 남아 있는 곡식은 잡쌀을 아울러 이천육백팔십여 섬, 콩 천칠백칠십 섬입니다. 쌀 수는 정주보다 조금 넉넉하나 콩은 모자랄 듯합니다. 그러나 오래 머무르지만 않으면 그런대로 댈 수 있습니다.

신이 걱정하는 바는, 적의 형세가 바야흐로 성한데 우리 군사의 형세는 외롭고 약하며 사람들이 싸움을 많이 겁내는 것입니다. 때때로 쳐서 조금 얻는 것이 있어도 우리 군사의 죽는 이가 지나치게 많고, 백성이 날마다 죽고 노략질당하는 것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만일 적이 무리를 다 합하여 서쪽으로 흩어져 내려오면 일의 한심함을 한둘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지난날 명나라 군사가 패한 것은 장수가 계책을 잃고 적을 가벼이 여긴 탓이지 군사의 죄가 아닙니다. 지금 가을 기운이 이미 높고 말발굽이 바야흐로 튼튼합니다. 만약 정예 군사 수천을 청하여 우리 군사와 먼저 약속을 정하고 적을 꾀어내어, 앞뒤로 맞물어 죄며 너른 벌판에서 몰아붙이면 얼마 안 되는 남은 적을 선 자리에서 다 없앨 수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일이며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작은 폐단이 있더라도 헤아릴 겨를이 없습니다. 더구나 쌓아 둔 양곡의 수가 아주 텅 비어 어찌할 수 없는 지경도 아닙니다. 조정에서 각별히 처치하시어 만전을 기하는 긴 계책을 도모하시기를 간절히 바라 마지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