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6 진사록

황해도 곳곳의 백성이 군사를 일으켜 적을 친 곡절을 살펴 보고한 장계探報黃海道各處人民起兵討賊緣由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447자 · 낭독 3.7분

징비록 권6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臣前日所遣體探黃海道人金克諶等昨夜始爲還來備言黃海一道事情且持遂安郡守韓守眞牒呈及各處人民文狀以來自。車駕西巡平壤陷沒之後遠近民情無所係屬弱者從賊求生强者乘時盜竊者不知其數而其中能私自招集奮意殺賊者間或有之至爲可嘉至於黃州之民則欲尋覓閔仁伯去處累度往來於祥原等處而不得還去及聞臣文移悲感傳觀各爲文狀欲效勦賊之功民情如此滅賊無日所患守令將帥之類一皆抱頭鼠竄無一人倡率興起者此輩之罪可謂上通於天極爲痛甚傳聞閔仁伯逃避于德泉等處而近來始欲還官已向成川判官鄭曄等亦從三縣向去云果登時到官收集散亡則猶可濟事。朝廷別爲區處右人等量加褒異使有興起之心其中崔銀老則以年少出身之人先倡聚軍欲勦賊倭號令頗行於其類將來不無可望臣所賫來空名告身欲爲先付送黃州等處之民聞天兵欲波江而朝廷憂糧餉之不繼皆云新穀已出若。天兵果渡江則處處衆民家出戶輸願爲接濟惟望早爲蕩平以活民生到處涕泣言之云極爲矜惻前月二十八日平壤接戰時我軍死亡者其數不少今日所用精銳惟是江邊健兒而日漸銷耗賊氣猶盛未曾一挫尤切痛憤臣移文于江界陣亡諸人家屬幷令恤典擧行

신이 전날 황해도로 보낸 정탐꾼 김극심(金克諶) 등이 어젯밤에야 비로소 돌아왔습니다. 황해 한 도의 사정을 갖추어 말하고, 또 수안 군수 한수진(韓守眞)의 첩정과 곳곳 백성의 글을 가지고 왔습니다.

대가가 서쪽으로 옮기시고 평양이 함락된 뒤로 멀고 가까운 곳의 민심이 붙잡아 맬 데가 없어, 약한 자는 적을 따라 살기를 구하고 강한 자는 때를 타 훔치는 자가 그 수를 알 수 없습니다. 그 가운데 스스로 사람을 불러 모아 분발하여 적을 죽이는 자가 간혹 있으니 매우 가상합니다. 황주 백성은 민인백(閔仁伯)이 간 곳을 찾으려고 상원(祥原) 등지를 여러 번 오갔으나 찾지 못하고 돌아갔는데, 신의 공문을 듣고는 슬퍼 감동하여 서로 돌려 읽고 각각 글을 지어 적을 치는 공을 바치려 합니다. 민심이 이와 같으니 적을 멸할 날이 멀지 않습니다.

걱정스러운 것은 수령과 장수 무리가 하나같이 머리를 감싸고 쥐처럼 숨어, 앞장서 거느려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 무리의 죄는 위로 하늘에 사무친다 할 만하니 몹시 애통합니다. 전해 듣건대 민인백은 덕천(德泉) 등지로 피해 있다가 근래 비로소 관아로 돌아가려 하여 이미 성천으로 향하였고, 판관 정엽(鄭曄) 등도 세 고을에서 그리로 갔다 합니다. 과연 제때 관아에 이르러 흩어진 이들을 거두어 모으면 그래도 일을 건질 만합니다. 조정에서 따로 조처하시고, 위 사람들에게 헤아려 포상을 더하여 일어날 마음을 갖게 하소서. 그중 최은로(崔銀老)는 나이 젊은 출신으로 먼저 앞장서 군사를 모아 왜적을 치려 하고 호령이 그 무리에 자못 행해지니 앞으로 바랄 만한 것이 없지 않습니다. 신이 가지고 온 이름을 비워 둔 임명장(空名告身)을 먼저 보내려 합니다.

황주 등지의 백성이, 명나라 군사가 강을 건너려 하는데 조정이 양식을 잇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말을 듣고, 다들 새 곡식이 이미 났으니 명나라 군사가 과연 강을 건너면 곳곳의 뭇 백성이 집집마다 내고 호마다 실어다 대기를 원한다 하며, 오직 일찍 쓸어 없애 백성을 살리기를 바란다고 가는 곳마다 눈물 흘리며 말하였다 합니다. 몹시 딱하고 측은합니다.

지난달 스무여드렛날 평양에서 싸울 때 우리 군사의 죽은 수가 적지 않습니다. 오늘 쓰는 정예는 오직 강변의 날랜 군사뿐인데 날로 점점 줄어듭니다. 적의 기세는 아직 성하여 한 번도 꺾지 못하였으니 더욱 애통하고 분합니다. 신이 강계에 공문을 보내 싸움에서 죽은 여러 사람의 가족에게 아울러 나라에서 주는 구휼을 베풀게 하였습니다.

협주 2

八月三日

팔월 사흗날

저본은 波江이나 渡江의 잘못으로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