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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군사가 급히 나와 적을 치기를 청한 장계急請。天兵討賊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344자 · 낭독 3분

징비록 권6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天兵支待糧穀各處見在之數已曾狀啓請兵與否及兵馬出來遲速其他凡百動靜漠然未得聞知極爲悶欝安州密邇賊巢意外之處不可不慮各處輸到之糓尙皆載船留泊未得輸入官庫其中如牙山稅米輸來之人遠處漕運在海累月到此又留滯多時日日呼訴臣多般曉諭每令姑待或給糧料使免飢餓而秋氣漸高薄衣之人勢難强留處置實難卽見觀察使李元翼傳報賊中形止極爲叵測而大槪此賊千里遠鬪一未大挫其鋒自入平壤盤桓不進其間必有奸計兼且。天兵與我兵連次退北江邊土兵死傷日多三縣之兵又復潰散順安大將所統不過數千而無用者太半至於元帥所住則只有民軍一二百他無繼援之兵可助聲勢脫或賊兵多集分道散出左右支撑其勢極攤臣日夜憂念不勝寒心今此倭賊書契臣意不可不速爲申報於。中朝又痛陳賊謀兇慘須及其未集之前而爲協力掃蕩之計然後可無後虞若是則唐將亦必聽許而庶無緩不及事之悔

명나라 군사를 대접할 양곡으로 곳곳에 남아 있는 수는 이미 장계로 아뢰었습니다. 군사를 청하였는지 아닌지, 군마가 나오는 것이 이를지 늦을지, 그 밖의 온갖 동정을 아득히 듣지 못하여 몹시 답답합니다. 안주는 적의 소굴에 바짝 가까우니 뜻밖의 일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곳곳에서 실어 온 곡식은 아직 다 배에 실린 채 머물러 있고 관가 창고에 들이지 못하였습니다. 그중 아산창 전세 쌀을 실어 온 사람은 먼 곳에서 조운하느라 여러 달 바다에 있었고, 여기 와 또 오래 머물러 날마다 하소연합니다. 신이 여러 가지로 타일러 늘 잠시 기다리게 하고, 혹 양식을 주어 굶주림을 면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을 기운이 점점 높아져 옷이 얇은 사람을 억지로 머물게 하기 어려우니 처치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방금 관찰사 이원익(李元翼)이 전해 온 보고를 보니 적중의 형편이 몹시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대개 이 적은 천 리 먼 곳에서 싸우는데 한 번도 그 예봉을 크게 꺾지 못하였고, 평양에 들어간 뒤로 머뭇거리며 나아가지 않으니 그사이에 반드시 간사한 꾀가 있습니다. 겸하여 명나라 군사와 우리 군사가 잇달아 물러나 패하고, 강변 토병의 죽고 다침이 날로 많으며, 세 고을 군사도 또 무너져 흩어졌습니다. 순안 대장이 거느린 것은 수천에 지나지 않는데 쓸 수 없는 자가 태반이고, 원수가 머무는 곳에는 다만 민군 백이나 이백이 있을 뿐 달리 형세를 보태 이어 댈 군사가 없습니다. 혹시라도 적병이 많이 모여 길을 나누어 흩어져 나오면 좌우로 버티기에 그 형세가 몹시 벅찹니다. 신이 밤낮으로 근심하여 한심함을 이기지 못합니다.

이번 왜적의 서계는 신의 생각으로는 속히 명나라 조정에 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적의 꾀가 흉악하고 참혹함을 간절히 아뢰고, 반드시 적이 모이기 전에 힘을 합해 쓸어 없앨 계책을 세운 뒤라야 뒷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명나라 장수도 반드시 들어줄 것이니, 거의 늦어 일에 미치지 못하는 뉘우침이 없을 것입니다.

협주 1

八月

팔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