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6 진사록

우리 군사가 적과 맞붙어 싸운 일을 달려 아뢴 장계馳。啓我軍與賊接戰事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233자 · 낭독 2.1분

징비록 권6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昨日辰末李元翼傳通內左遊擊朴錫命馳人進告內倭賊或云二十餘名或云四十餘名後運則不得的知釜山院向來出送伏兵等接戰云云故繼援軍鱗次入送再通內左斥候將金應瑊馳報內諸將等幷爲追逐至咸福院碧潼土兵孔玉柱進告內彼賊先鋒三十餘名投劒又捨統筩曰我輩欲向我地汝等亦捨弓矢來聽我言云而我軍無數發射直進賊所則賊兵次次遁背云故繼援軍全數入送大軍亦前進計料三通內三領伏兵將李元馳告內我軍搏擊則彼賊退屯種松處四通內右部將馳人進告內倭賊等遁還入城未及追捕云云故其辭緣爲先馳啓昨日斬馘二級幷爲監封上送

어제 진시 끝 무렵에 이원익(李元翼)이 전한 통보에는, 좌유격 박석명(朴錫命)이 사람을 달려 보내어 고하기를 「왜적이 혹 스무남은 명이라고도 하고 혹 마흔남은 명이라고도 하며 뒤에 오는 무리는 확실히 알 수 없는데, 부산원(釜山院)에 전부터 내보내 둔 복병들과 맞붙어 싸운다」 하였으므로, 뒤를 받칠 군사를 잇달아 들여보냈다 하였습니다.

두 번째 통보에는, 좌척후장 김응겸(金應瑊)이 달려와 보고하기를 「여러 장수들이 아울러 뒤쫓아 함복원(咸福院)에 이르렀는데, 벽동(碧潼) 토병 공옥주(孔玉柱)가 고하기를 〈저 적의 선봉 삼십여 명이 칼을 던지고 또 총통도 버리며 우리는 우리 땅으로 가려 하니 너희도 활과 화살을 버리고 와서 내 말을 들으라 하였는데, 우리 군사가 무수히 쏘며 적 있는 곳으로 곧바로 나아가니 적병이 차츰차츰 달아나 등을 보였다〉 하였다」 하였으므로, 뒤를 받칠 군사를 남김없이 들여보내고 큰 군사도 앞으로 나아갈 계획이라 하였습니다.

세 번째 통보에는, 삼령 복병장 이원(李元)이 달려와 고하기를 「우리 군사가 후려쳐 치니 저 적이 물러나 종송처(種松處)에 둔쳤다」 하였습니다.

네 번째 통보에는, 우부장이 사람을 달려 보내어 고하기를 「왜적들이 달아나 도로 성으로 들어가 미처 뒤쫓아 잡지 못하였다」 하였습니다.

그 곡절을 우선 달려 아룁니다. 어제 벤 머리 두 급은 아울러 봉하여 올려 보냅니다.

협주 1

壬辰八月十一日

임진년 팔월 열하룻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