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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유격을 만나 일을 의논한 것을 달려 아뢴 장계馳。啓見沈遊擊論事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639자 · 낭독 6분

징비록 권7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沈遊擊昨日夕時自嘉山來宿于此今早發向肅川臣預送軍官問安于中路到舘後卽親詣候之則答以多謝且云路中只著行衣不便相見臣令譯官更通曰我以國命檢勅一路糧餉老爺無乃有分付之事乎答云雖行衣未安相見無妨臣入行禮後遊擊令設交椅自移其椅來就臣所坐幾於接膝云吾武人不閑禮貌勿咎因辟左右細問軍兵幾何糧料儲備幾何臣答以軍兵有管領之員非所管然大槪則可知遂言順安及三縣暨李鎰軍數又言諸道處處起軍勦賊之事糧料則粗備萬餘兵十餘日之糧今秋糓已熟方百計措辦答曰此處之軍恇怯善走吾當往彼親見其可用與否臣對以向來。天兵亦非不足而適天雨失利今若。天兵更出則蕩平非難此小邦日夜之望不然遲緩時日賊若集諸道之散出者合勢西來則恐有難支之患遊擊曰前日將官之罪不可勝言臣曰乃天時不齊而然非將官之罪遊擊曰旣誤軍機且誣言朝鮮與倭同反安有如此之事乎其將二人皆當死臣答曰小邦之事天日在上不須多說蒙老爺軫念如此不勝感激此外所說煩多而不能盡達同來譯官言遊擊來時小駐控江亭有一擺撥兒自順安來遊擊問我軍形止其人對云以朝鮮兵力無平賊之望其屯住順安不爲退北者亦爲多幸云云大槪我軍今日之勢極爲孤弱每日惟向釜山院往來而已更無他策賊安居飽食以逸待勞寧有自退之理乎臣日夜憂悶不知所出適湖城監之軍自遠來到頗慰軍情與之掎角稍可濟急而湖城監以肅拜事留軍三和獨向。行在朝廷急速發還便統其軍前進平壤之賊專備西北不備東南在我不無可乘之便而近日我軍每出一道不爲設奇乍進乍退終無望於挫其大勢極爲可慮其他糧料等事隨勢措置從後馳。啓計料但賊兵未退警報相續郡縣人民皆無固志事事渙散難集尤爲憂悶

심 유격(沈遊擊)이 어제 저녁때 가산(嘉山)에서 와 이곳에 묵고 오늘 아침 숙천(肅川)으로 떠났습니다. 신이 미리 군관을 보내어 도중에 문안하게 하고, 유격이 관에 이른 뒤에 곧 몸소 나아가 뵈려 하니 「매우 고맙다」 하면서도 「길에서 행의만 입었을 뿐이라 서로 보기 편치 않다」 하였습니다. 신이 역관을 시켜 다시 통하기를 「나는 나라의 명으로 한 길의 군량을 단속하고 있으니, 노야께서 분부하실 일이 없으시겠습니까」 하니, 「행의라 미안하나 서로 보아도 무방하다」 하였습니다.

신이 들어가 예를 행한 뒤에 유격이 의자를 놓게 하고 스스로 그 의자를 옮겨 신이 앉은 데로 와서 거의 무릎이 닿을 만하더니 「나는 무인이라 예모에 익숙하지 못하니 허물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이어 좌우를 물리고 군사가 얼마나 되며 양식 쌓아 둔 것이 얼마나 되는지 자세히 물었습니다.

신이 답하기를 「군사는 맡아 거느리는 관원이 따로 있어 내가 맡은 바는 아니나 대개는 알 수 있다」 하고, 드디어 순안과 세 고을 및 이일(李鎰)의 군사 수를 말하고 또 여러 도 곳곳에서 군사를 일으켜 적을 치는 일을 말하였습니다. 양식은 만여 군사의 열흘 남짓 양식을 대충 갖추었고 올가을 곡식이 이미 익었으므로 바야흐로 온갖 계책으로 마련하고 있다 하였습니다.

유격이 대답하기를 「이곳 군사는 겁이 많아 잘 달아나니, 내가 마땅히 그곳에 가서 쓸 만한지 아닌지 몸소 보겠다」 하였습니다. 신이 대답하기를 「저번에 명나라 군사도 모자란 것이 아니었는데 마침 하늘에서 비가 내려 이롭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만일 명나라 군사가 다시 나오면 쓸어 없애기 어렵지 않으니, 이것이 작은 나라가 밤낮으로 바라는 바입니다. 그렇지 않아 날짜를 끌다가 적이 만일 여러 도에 흩어져 나간 무리를 모아 형세를 합쳐 서쪽으로 오면 지탱하기 어려운 근심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하였습니다.

유격이 말하기를 「지난날 장수와 군관의 죄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하기에, 신이 「이는 천시가 고르지 못하여 그러한 것이지 장수와 군관의 죄가 아닙니다」 하였습니다. 유격이 말하기를 「이미 군기를 그르쳤고 또 조선이 왜와 함께 배반하였다고 무고하였으니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는가. 그 장수 두 사람은 다 죽어 마땅하다」 하였습니다. 신이 답하기를 「우리나라의 일은 하늘의 해가 위에 있으니 많이 말할 것이 없습니다. 노야께서 이처럼 깊이 헤아려 주시니 감격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하였습니다. 이 밖에 말한 것은 번거롭게 많아 다 아뢰지 못합니다.

함께 온 역관이 말하기를, 유격이 올 때 공강정(控江亭)에 잠시 머물렀는데 파발꾼 하나가 순안에서 왔으므로 유격이 우리 군사의 형편을 물으니,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조선의 병력으로는 적을 평정할 가망이 없고, 순안에 둔쳐 머물러 물러나 달아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다」 하였다 합니다.

대개 우리 군사의 오늘 형세는 몹시 외롭고 약하여 날마다 오직 부산원(釜山院)으로 오갈 뿐이고 달리 다른 계책이 없습니다. 적은 편히 살며 배불리 먹고 편안함으로 고달픔을 기다리니 어찌 스스로 물러갈 이치가 있겠습니까. 신은 밤낮 걱정스럽고 답답하여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합니다.

마침 호성감(湖城監)의 군사가 멀리서 와 닿아 군사들의 마음을 자못 위로하니, 그와 더불어 앞뒤에서 맞잡으면 조금은 급한 것을 건질 만합니다. 그런데 호성감이 숙배할 일로 군사를 삼화(三和)에 머물러 두고 홀로 행재소로 가니, 조정에서 급히 돌려보내어 곧 그 군사를 거느리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평양의 적은 오로지 서북만 대비하고 동남은 대비하지 않으니 우리에게 탈 만한 틈이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우리 군사는 늘 한 길로만 나가고 기이한 꾀를 베풀지 않아 잠깐 나아갔다 잠깐 물러나니, 마침내 그 큰 형세를 꺾을 가망이 없어 몹시 염려스럽습니다.

그 밖의 양식 따위 일은 형세를 따라 조처하고 뒤따라 달려 아뢸 계획입니다. 다만 적병이 물러가지 않고 경보가 잇달아 고을 백성이 다 굳은 뜻이 없어 일마다 흩어져 모으기 어려우니 더욱 걱정스럽고 답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