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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의 형편과 조처가 마땅함을 잃은 일을 조목조목 벌여 아뢴 장계條陳四方形止處置失宜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0 · 한자 2,433자 · 낭독 21.1분

징비록 권7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天未悔禍賊勢猶熾臣誠痛心近日因往來之言時聞四方形止其間人謀不臧處置失宜者亦多有之不得不達伏望留神焉

하늘이 아직 재앙을 뉘우치지 않아 적의 형세가 그대로 사나우니 신은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요사이 오가는 말로 이따금 사방의 형편을 듣는데, 그 가운데 사람의 꾀가 좋지 못하고 조처가 마땅함을 잃은 것이 또한 많습니다. 아뢰지 않을 수 없으니 엎드려 바라건대 마음을 두소서.

협주 1

十月

시월

一曰聚兵自衛之弊昔唐時監軍悉聚軍中精勇之士名爲牙兵臨陣不戰而軍敗則先遁河朔終以不振今聞京畿等處巡察使及守令等盡聚道內精軍自隨其身或令分衛家屬平時出入各官貽弊多端而避賊潜行未甞一戰纔聞賊報不問多少輒棄軍先遁如廣州水原加平高陽等地之民初猶團結設伏捕賊而今則盡皆散赴各處不能禦賊官舍閭閻次第殘破誠可痛心今宜下書警䇿母使更踵前失且京畿一道諸將之中惟楊州牧使高彥伯稍可倚仗自楊州永平加平抱川之軍皆使彦伯統之俾令督捕京城以東之賊又令全羅兵及兩湖義兵紏合高陽交河等處之兵勦捕京城以西之賊以成掎角之勢又使果川廣州金浦通津仁川富平南陽水原等邑之軍統於一將皆各精抄射手各於其地分屯設伏嚴加瞭望賊至則互相通報登時勦擊且以遮遏南面使不得南下仍使忠淸全羅道爲繼援若是則京城之賊其勢日縮而恢復之形已成矣且江原一道山林險阻樹木深味往往有百二之險道內雖云軍丁鮮少而山谷之間以射獵爲生名爲山尺者甚多苟能以重賞購之授以方略哨探賊兵去來處處要擊射殺則賊必歛縮不敢恣意橫行而今乃畏避先逃如恐不及使之如蹈無人之地亦以此意下書于監司施行民間如有殺賊者其所得財物悉以與之官不得推人不得奪則人人必力於殺賊矣

하나. 군사를 모아 제 몸을 지키는 폐단입니다.

옛날 당나라 때 감군(監軍)이 군중의 정예롭고 날랜 군사를 다 모아 아병(牙兵)이라 이름하였습니다. 진에 임하여서는 싸우지 않고 군사가 무너지면 먼저 달아나니, 하삭(河朔)이 마침내 떨치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들으니 경기 등지의 순찰사와 수령들이 도 안의 정예 군사를 다 모아 제 몸을 따르게 하고, 혹은 나누어 제 집안 식구를 지키게 한다 합니다. 평시에 각 고을을 드나들며 폐단을 끼침이 여러 가지인데, 적을 피해 몰래 다니며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습니다. 겨우 적의 기별을 들으면 많고 적음을 묻지 않고 문득 군사를 버리고 먼저 달아납니다.

광주(廣州)·수원(水原)·가평(加平)·고양(高陽) 등지의 백성은 처음에는 그래도 뭉쳐 복병을 두고 적을 잡았는데, 이제는 다 흩어져 곳곳으로 가 적을 막지 못합니다. 관사와 마을이 차례로 무너지니 참으로 마음 아픕니다. 이제 마땅히 글을 내려 경계하시어 다시 앞의 잘못을 밟지 않게 하소서.

또 경기 한 도의 여러 장수 가운데 오직 양주 목사 고언백(高彥伯)이 조금 의지할 만합니다. 양주·영평(永平)·가평·포천(抱川)의 군사를 다 언백에게 거느리게 하시어 서울 동쪽의 적을 다그쳐 잡게 하소서. 또 전라도 군사와 충청·전라 두 도 의병으로 고양·교하(交河) 등지의 군사를 거두어 합하여 서울 서쪽의 적을 쳐 잡게 하시어, 앞뒤에서 맞잡는 형세를 이루게 하소서.

또 과천(果川)·광주·김포(金浦)·통진(通津)·인천(仁川)·부평(富平)·남양(南陽)·수원 등 고을의 군사를 한 장수에게 거느리게 하시되, 다 활 쏘는 군사를 정하게 가려 각각 그 땅에 나누어 둔치고 복병을 두며 망보기를 엄히 하게 하소서. 적이 오면 서로 알려 그때 바로 쳐부수고, 또 남쪽을 막아 적이 내려가지 못하게 하며, 이어 충청·전라도로 뒤를 잇대어 돕게 하소서. 이렇게 하면 서울의 적은 그 형세가 날로 움츠러들고 되찾을 형세가 이미 이루어질 것입니다.

또 강원 한 도는 산과 숲이 험하고 막히며 나무가 깊고 빽빽하여 이따금 적은 군사로도 막을 만한 험한 곳이 있습니다. 도 안에 군사 될 장정이 적다고는 하나, 산골에서 사냥으로 살아가는 산척(山尺)이라 하는 자가 매우 많습니다. 진실로 두터운 상을 걸어 부르고 방략을 일러 주어 적병의 오감을 살펴 곳곳에서 길목을 막아 치고 쏘아 죽이게 하면, 적이 반드시 움츠러들어 감히 마음대로 횡행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두려워 피하며 먼저 달아나기를 미치지 못할까 걱정하듯 하여, 적으로 하여금 사람 없는 땅을 밟듯 하게 합니다. 이 뜻으로도 감사에게 글을 내려 시행하게 하소서.

민간에서 적을 죽인 자가 있으면 그 얻은 재물을 다 그에게 주고 관가에서 찾아가지 못하며 남이 빼앗지 못하게 하시면, 사람마다 반드시 적 죽이기에 힘쓸 것입니다.

一修築山城督民入保此最爲急務近日遠近避亂之人率皆奔竄山谷無所棲泊糜粉寇手者日以千萬數安有如此慘痛之事乎若使之入處山城而聚軍守之則賊兵雖散漫四出而人情有所憑恃不至崩潰且一道之中多有完城賊來則據險力戰賊退則乘勢追躡賊必不敢肆意攻剽矣蓋自東萊釜山陷城之後人以守城爲必死之道莫肯守之故賊如蹈無人之地今則全州延安皆以據守得全故人頗知守城之利若乘此際有所區處則人必信從而事可有濟矣况秋候日寒而賊兵未退林藪木落之後何處藏避宜令該司急速知委擧行以救萬一

하나. 산성을 고쳐 쌓고 백성을 다그쳐 들어가 지키게 하는 것이 가장 급한 일입니다.

요사이 멀고 가까운 데서 난리를 피하는 사람이 대개 다 산골로 달아나 숨어 붙어 살 곳이 없고, 도적의 손에 가루가 되는 이가 날마다 천으로 만으로 셉니다. 어찌 이처럼 참혹하고 아픈 일이 있겠습니까.

만일 산성에 들어가 살게 하고 군사를 모아 지키게 하면, 적병이 비록 흩어져 사방으로 나와도 인심이 믿을 데가 있어 무너지는 데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한 도 가운데 온전한 성이 많으니, 적이 오면 험한 데 웅거하여 힘껏 싸우고 적이 물러가면 기세를 타 뒤쫓으면 적이 반드시 감히 마음대로 치고 노략하지 못할 것입니다.

대개 동래(東萊)와 부산(釜山)이 성을 잃은 뒤로 사람들이 성 지키기를 반드시 죽는 길로 여겨 지키려 하지 않았으므로 적이 사람 없는 땅을 밟듯 하였습니다. 이제는 전주(全州)와 연안(延安)이 다 웅거하여 지켜 온전함을 얻었으므로 사람들이 자못 성 지키는 이로움을 압니다. 만일 이때를 타 조처하는 바가 있으면 사람들이 반드시 믿고 따라 일을 이룰 수 있겠습니다.

하물며 가을 기운이 날로 차가운데 적병은 물러가지 않았습니다. 숲의 나뭇잎이 진 뒤에는 어디에 숨어 피하겠습니까. 마땅히 맡은 관아로 하여금 급히 알려 거행하게 하시어 만에 하나라도 구하소서.

一今日八道之中尤甚板蕩處北道江原京畿黃海道而京畿黃海道則猶有倡義討賊之人至於北道江原道則民心敗毀幾不知有國極爲駭愕今宜急急收拾大抵江原道山林最爲深險往往人所不能通行道內軍卒雖少而山谷之間擊殺猛獸名爲山尺者其類甚多若處處購募設伏於要害隨見輒射則賊必不敢近境而監司守令只以遇賊奔避爲心一不規畫使之崩潰令北道江原道全爲賊藪而與京畿之賊連勢且與慶尙道海邊只隔一嶺若諸處皆無追捕之人則一朴晉雖在慶尙道其能禦之乎如不能禦則八方無地爲我國矣事之危迫至於如此可爲痛心北道則賊勢彌漫固不可趁時收取江原京畿道之事所當及時區處臣請言京畿形勢自楊州積城抱川永平加平等邑之軍統於一將遮蔽京城以東江華喬桐高陽交河長湍坡州等邑之軍統於一將遮遏京城以西廣州果川衿川安山水原南陽等邑之軍又統於一將遮遏南方三面合勢約束相通號令歸一氣勢聯絡且與諸處義兵同心戮力以圖濟事臣觀今日京畿諸將中惟高彥伯最爲可任東邊之軍一委於彥伯其在西南之將亦惟。朝廷所擇耳如是然後江原道之軍與京畿東道之軍合勢崔遠金千鎰之軍與西道之軍合勢忠淸道軍及義兵洪季男等軍與廣州等邑之軍合勢三面掎角相機進取先抄精軍分道出奇散出之賊次第勦盡則賊之在城中者氣勢日縮而京城我民必有內應相圖者矣京畿巡察使權徵處事乖當人情憤鬱。朝廷更寄以巡察之任徵不思討賊專收道內丁壯稱爲牙兵軍官自衛其身及其家屬賊退則出入官邑責辦厨傳以爲民弊賊至則數十里之外散軍逃去且如高彥伯等雖欲盡力捕賊而不肯分與精勇至於委邊彥琇以大軍而廣州陷沒委趙儆以衆兵而加平失守臣不知國家今日之勢能堪幾敗耶。朝廷所以激發人心有勸有懲者全在賞罰平時尙然况於危難乎如黃海前監司趙仁得自臨津失守以後在相望之地未甞遣一卒勤王且以海州爲金城鐵關乘船逃避於賊兵未至之前而旣遞監司而旋爲巡察海州牧使李泰亨棄城逃走留軍危地離陣獨宿使康翎瓮津之民血肉狼籍罪狀如此而猶保官爵四方聞之有以議。朝廷賞罰之無章臣甚惜焉此等事臣本不敢妄言但。國事危迫如此而臣冒居大臣之後旣知利害所關不得不達惶恐無已江原監司姜紳亦非統禦之才亦當以他人改差

하나. 오늘 팔도 가운데 더욱 심하게 무너진 곳은 북도와 강원·경기·황해도입니다.

경기와 황해도에는 그래도 의를 부르짖어 적을 치는 사람이 있으나, 북도와 강원도에 이르러서는 민심이 무너져 나라가 있는 줄을 거의 모르니 몹시 놀랍습니다. 이제 마땅히 급급히 거두어 수습해야 합니다.

대저 강원도는 산과 숲이 가장 깊고 험하여 이따금 사람이 다닐 수 없는 곳이 있습니다. 도 안의 군졸은 비록 적으나 산골에서 사나운 짐승을 쳐 죽이는 산척이라 하는 자가 그 무리가 매우 많습니다. 만일 곳곳에서 상을 걸어 모으고 요해처에 복병을 두어 보는 대로 쏘게 하면 적이 반드시 감히 지경에 가까이 오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와 수령은 오직 적을 만나면 달아나 피할 마음뿐이요 한 번도 계획하지 않아 무너지게 하였습니다.

북도와 강원도가 온통 적의 소굴이 되어 경기의 적과 기세를 잇게 되었고, 또 경상도 바닷가와는 다만 한 고개를 사이에 두었을 뿐입니다. 만일 여러 곳에 다 뒤쫓아 잡을 사람이 없으면 박진(朴晉) 하나가 비록 경상도에 있은들 그것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막지 못하면 팔방에 우리나라 될 땅이 없습니다. 일의 위태롭고 급박함이 이에 이르렀으니 마음 아픕니다.

북도는 적의 형세가 가득 퍼져 진실로 때맞추어 거두어들일 수 없으나, 강원·경기도의 일은 마땅히 때에 미쳐 조처해야 합니다.

신이 청컨대 경기의 형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양주·적성(積城)·포천·영평·가평 등 고을의 군사를 한 장수에게 거느리게 하여 서울 동쪽을 가리고, 강화(江華)·교동(喬桐)·고양·교하·장단(長湍)·파주(坡州) 등 고을의 군사를 한 장수에게 거느리게 하여 서울 서쪽을 막고, 광주·과천·금천(衿川)·안산(安山)·수원·남양 등 고을의 군사를 또 한 장수에게 거느리게 하여 남쪽을 막게 하소서. 세 면이 기세를 합하고 약속이 서로 통하여 호령이 하나로 돌아가면 기세가 이어질 것입니다. 또 여러 곳 의병과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모아 일을 이루기를 꾀하소서.

신이 보건대 오늘 경기 여러 장수 가운데 오직 고언백이 가장 맡길 만합니다. 동쪽 군사를 한결같이 언백에게 맡기시고, 서쪽과 남쪽에 있을 장수는 또한 오직 조정에서 가리실 바입니다. 이렇게 한 뒤에야 강원도 군사가 경기 동쪽 군사와 기세를 합하고, 최원(崔遠)·김천일(金千鎰)의 군사가 서쪽 군사와 기세를 합하고, 충청도 군사와 의병 홍계남(洪季男) 들의 군사가 광주 등 고을 군사와 기세를 합할 것입니다. 세 면이 앞뒤에서 맞잡아 틈을 보아 나아가 취하되, 먼저 정예 군사를 가려 길을 나누어 뜻밖으로 나아가 흩어져 나온 적을 차례로 다 쳐 없애면, 성 안에 있는 적은 기세가 날로 움츠러들고 서울의 우리 백성 가운데 반드시 안에서 호응하여 함께 꾀할 자가 있을 것입니다.

경기 순찰사 권징(權徵)은 일 처리가 어그러져 인심이 분하고 답답해하는데, 조정에서 다시 순찰의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징은 적 칠 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도 안의 장정을 거두어 아병이니 군관이니 일컬으며 제 몸과 그 집안 식구를 지킵니다. 적이 물러가면 고을을 드나들며 대접을 다그쳐 마련하게 하여 백성의 폐단이 되고, 적이 오면 수십 리 밖에서 군사를 흩고 달아납니다. 또 고언백 들이 비록 힘을 다해 적을 잡고자 하여도 정예롭고 날랜 군사를 나누어 주려 하지 않습니다. 변언수(邊彥琇)에게 큰 군사를 맡겨 광주가 함락되고, 조경(趙儆)에게 많은 군사를 맡겨 가평을 지키지 못하는 데 이르렀습니다. 신은 나라의 오늘 형세가 몇 번이나 패함을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조정이 인심을 북돋우어 권하기도 하고 징계하기도 하는 것은 온전히 상과 벌에 있습니다. 평시에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위태롭고 어려운 때이겠습니까. 황해 전 감사 조인득(趙仁得)은 임진(臨津)을 지키지 못한 뒤로 서로 바라보이는 땅에 있으면서 한 군사도 보내어 임금을 도운 적이 없습니다. 또 해주(海州)를 쇠로 된 성과 관문으로 여기면서도 적병이 이르기 전에 배를 타고 달아나 피하였는데, 감사를 갈렸다가 곧 순찰이 되었습니다. 해주 목사 이태형(李泰亨)은 성을 버리고 달아나며 군사를 위태로운 땅에 두고 진을 떠나 홀로 자, 강령(康翎)·옹진(瓮津) 백성의 피와 살이 어지러이 흩어지게 하였습니다. 죄상이 이러한데도 오히려 벼슬을 지킵니다. 사방에서 이를 듣고 조정의 상벌에 법도가 없다고 의논하니 신은 매우 애석합니다.

이런 일을 신이 본디 감히 망령되이 말할 것이 아니오나, 다만 나랏일이 이처럼 위태롭고 급박한데 신이 외람되이 대신의 자리에 있어 이미 이해에 걸린 바를 아니 아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황공하기 그지없습니다. 강원 감사 강신(姜紳)도 또한 거느려 다스릴 재목이 아니니 마땅히 다른 사람으로 갈아 차임하소서.

一賊兵屯據京城已久民情狃安且迫於飢饉太半入處幾與相忘極爲寒心然賊敗去之時則必盡爲芟刈以泄其毒假使不爲芟刈而亦必虜掠卷去百工伎藝擧爲倭人如火炮水戰弓矢等事無不敎之其爲後日之憂庸有紀乎此亦急設方略諭以禍福使之登時自拔而出以免死亡且有心於內應者亦當以優賞勸之以動其心此亦今日之最急者也

하나. 적병이 서울에 둔치고 웅거한 지 이미 오래되어 민심이 익숙해져 편안히 여깁니다.

또 굶주림에 몰려 태반이 들어가 살며 거의 서로 잊은 듯하니 몹시 한심합니다. 그러나 적이 패하여 갈 때에는 반드시 다 베어 죽여 그 독을 풀 것이요, 설사 베어 죽이지 않더라도 반드시 사로잡아 걷어 갈 것입니다. 온갖 장인과 재주 있는 이가 다 왜인의 손에 들어가, 화포·바다 싸움·활과 살 같은 일을 저들에게 가르치지 않는 것이 없을 터이니, 뒷날의 근심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이 또한 급히 방략을 베풀고 화와 복으로 타일러 그때 바로 스스로 빠져나와 죽음을 면하게 하소서. 또 안에서 호응할 마음이 있는 자는 마땅히 두터운 상으로 권하여 그 마음을 움직이게 하소서. 이 또한 오늘의 가장 급한 일입니다.

一各道將官不可不省蓋將官太多而號令雜出守令人民莫適所從徒爲貽弊無益於事今宜急省其不能者如召募官等亦徒爲紛紛其無顯效者姑且罷遣爲當

하나. 각 도의 장수와 군관은 줄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개 장수와 군관이 너무 많아 호령이 어지러이 나오니 수령과 백성이 좇을 바를 알지 못합니다. 한갓 폐단만 끼치고 일에는 보탬이 없습니다. 이제 마땅히 그 일 못하는 자를 급히 줄이소서. 소모관(召募官) 들도 또한 한갓 어수선하기만 하고 뚜렷한 보람이 없는 자는 우선 파하여 보내는 것이 마땅합니다.

一當今急務惟在激勵人心使之興起如公私賤之捕殺賊倭者皆卽許免賤不可吝惜以失人心古語云重賞之下必有死士且聞江原道等處凡民射殺賊倭所奪之物皆以平時賊臟爲例本官報監司置簿推尋若失之則或以民間牛馬充納而監司認爲己物私與所知之人民皆怨苦莫肯以射賊爲心云其爲無謂甚矣今宜廣加知委凡捕賊而所得之物悉與其人官不得推人不得奪則村民皆知殺賊之利處處蜂起而賊勢少衰矣

하나. 지금의 급한 일은 오직 인심을 북돋우어 떨쳐 일어나게 하는 데 있습니다.

관가의 종이든 사삿집 종이든 왜적을 잡아 죽인 자는 다 곧 천함을 면하도록 허락하실 것이요, 아끼다가 인심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옛말에 「무거운 상 아래에는 반드시 죽기로 나서는 군사가 있다」 하였습니다.

또 들으니 강원도 등지에서는 백성이 왜적을 쏘아 죽이고 빼앗은 물건을 다 평시의 장물 예로 삼아, 본 고을이 감사에게 알리고 장부에 올려 찾아가며, 만일 잃으면 혹 민간의 소와 말로 채워 바치게 한다 합니다. 그런데 감사는 제 물건으로 여겨 사사로이 아는 사람에게 주니, 백성이 다 원망하고 괴로워하여 적 쏘기를 마음에 두려 하지 않는다 합니다. 그 까닭 없음이 심합니다.

이제 마땅히 널리 알리시어, 무릇 적을 잡아 얻은 물건은 다 그 사람에게 주고 관가에서 찾아가지 못하며 남이 빼앗지 못하게 하소서. 그러면 마을 백성이 다 적 죽이는 이로움을 알아 곳곳에서 벌떼처럼 일어나고 적의 형세가 조금 쇠할 것입니다.

一今日之所恃者人心古人以單膠感士楚王撫慰戰士三軍如挾纊蓋怨不在大惠不在小所貴推赤心置人腹而已今凡在戰陣之士當加撫恤而南軍義兵之在江華及他處者因往來之使別以。敎旨宣慰以慰其勞訪問村落間私自捕賊之人令所在官吏一一具錄。啓聞而施賞使有激勵之心

하나. 오늘 믿을 것은 인심입니다.

옛사람은 한 통의 술로 군사를 감동시켰고, 초나라 임금이 싸우는 군사를 어루만져 위로하니 삼군이 솜옷을 낀 듯하였습니다. 대개 원망은 큰 데 있지 않고 은혜는 작은 데 있지 않으니, 귀한 것은 참마음을 남에게 다 내어 보이는 일일 뿐입니다.

이제 무릇 싸움터에 있는 군사를 마땅히 어루만져 보살피소서. 강화와 다른 곳에 있는 남쪽 군사와 의병은 오가는 사신 편에 따로 교지를 내려 위로하시어 그 수고를 달래소서. 마을 사이에서 사사로이 적을 잡은 사람을 찾아 물으시어, 그곳 관리로 하여금 낱낱이 갖추어 적어 아뢰게 하고 상을 주시어 떨쳐 일어날 마음을 갖게 하소서.

一近日賊兵漸加其實我民投入者太半傳聞錦山之戰賊陣射矢如雨此皆我民耳極爲可駭蓋賊獲我民之壯健者皆卽削髮變爲倭形而驅使故民往往雖欲逃出畏見殺於官軍甘心附賊以助其勢誠可痛也今宜別爲事目處處張榜知委如自賊中來投者母得斬殺使之各還其居其有能殺賊或以賊情來告者厚加賞賜以廣歸順之路

하나. 요사이 적병이 점점 느는데 실상 우리 백성으로 들어간 자가 태반입니다.

전하여 들으니 금산(錦山) 싸움에 적진에서 쏜 살이 비 오듯 하였다는데 이는 다 우리 백성일 뿐이니 몹시 놀랍습니다. 대개 적이 우리 백성 가운데 굳세고 튼튼한 자를 얻으면 다 곧 머리를 깎아 왜인 모양으로 바꾸어 부립니다. 그러므로 백성이 이따금 달아나 나오고자 하여도 관군에게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달게 적에게 붙어 그 기세를 도우니 참으로 아픕니다.

이제 마땅히 따로 조목을 만들어 곳곳에 방을 붙여 알리시되, 적 가운데서 와서 붙는 자는 베어 죽이지 말고 각각 제 살던 곳으로 돌아가게 하소서. 적을 죽이거나 적의 정상을 와서 알리는 자는 두터이 상을 주시어 돌아와 따르는 길을 넓히소서.

一倭奴短於水戰而當初淺慮之人妄言水戰非便使賊任意登陸人謀不臧亦天之爲尙何言哉今全羅道舟師甚盛而慶尙道則蕩敗幾盡明年備患亦是數月間事耳此賊雖幸而得勝而慶尙舟船若不登時措置明年與今年等耳臣意當此。國家危急之際所當不計他事專力爲防備如以下三道奴婢身貢及他所出之物盡爲軍備預爲知委于當事之臣於春冬之間隨其賊退之處造得板屋戰船百餘隻且以善於水戰者爲水使又以常時慶尙道倭料米價布盡餉戰士待變於海口然後可以有濟今內賊未退固難議此然凡事不預則不立受任方面之臣不可以不知也

하나. 왜놈은 바다 싸움에 서툽니다.

그런데 처음에 얕게 생각한 사람이 바다 싸움은 편하지 않다고 망령되이 말하여 적이 마음대로 뭍에 오르게 하였습니다. 사람의 꾀가 좋지 못한 것이 또한 하늘이 한 일이니 다시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이제 전라도 수군은 매우 성하나 경상도는 무너져 거의 다하였습니다. 내년의 근심에 대비할 일도 또한 몇 달 사이의 일일 뿐입니다. 이 적을 비록 요행히 이긴다 하여도 경상도 배를 그때 바로 마련하지 않으면 내년이 올해와 같을 뿐입니다.

신의 뜻은 이러합니다. 이처럼 나라가 위급한 때를 당하여 마땅히 다른 일은 헤아리지 말고 오로지 막아 지키는 데 힘을 써야 합니다. 아래 세 도의 노비 신공과 그 밖에 나는 물건을 다 군비로 삼도록 일 맡은 신하에게 미리 알리시고, 겨울과 봄 사이에 적이 물러간 곳을 따라 판옥전선 백여 척을 만들게 하소서. 또 바다 싸움에 익숙한 이를 수사로 삼으시고, 평시에 경상도에서 왜인을 먹이던 쌀과 값 치르던 베를 다 싸우는 군사에게 먹이며 바다 어귀에서 변을 기다리게 하신 뒤에야 이룰 수 있습니다.

이제 안의 적이 물러가지 않았으니 진실로 이를 의논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은 미리 하지 않으면 서지 않으니, 한 방면을 맡은 신하는 알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