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8 진사록

서울의 적이 평양에 더 이른 일을 아뢴 장계京城之賊添到平壤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416자 · 낭독 3.6분

징비록 권8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左防禦使李鎰馳報內前日接戰時被擄逃還人彥陽等供稱城中留賊有大旗之陣七無旗之陣十九向者暴雨之夕一陣又自京來幷前大旗之陣八矣無旗之陣則軍數多不過五十或僅二十餘名大旗陣則少不下三四百多者不可勝計而陣各有旗四十竿云昨夜黃海道遂安人持。啓本者過此言黃海一路安城龍泉等處自京下來之賊近日多數充滿有向西之狀云臣前者自順安粗陳賊勢請急探唐兵遲速密報軍中當初沈將定限五十日若從九月初一日計之則今只隔一日假使。天兵果到於限內而賊衆已多則其勦滅似當費力况至今邈然往來唐人人人異說不可憑信自古遠慮者少姑息者多。中國亦豈無論議異同而爲之掣肘者乎卽沈惟敬之志未知必行與否五十日之後賊以爲失信而擧衆西來則其誰止之唐兵雖來恐亦已晚且賊自入我境全資我國糧餉今因調度。天兵預收民間之糓皆積於一路脫有意外之憂將何收拾臣私憂過計無任憫迫莫知所爲弓箭臣累次狀。啓至於請輸下三道箭竹今則諸處各陣擧皆垂乏僅存數百餘部不足以備一日之用雖有百萬兵拱手而無爲事益危急。朝廷凡事急急區處使無難追之悔

좌방어사 이일(李鎰)이 달려 보고한 가운데, 전날 싸울 때 사로잡혔다가 도망쳐 돌아온 사람 언양(彥陽) 들이 이르기를 「성 안에 머무는 적은 큰 기를 세운 진이 일곱이요 기 없는 진이 열아홉인데, 지난번 소나기 오던 저녁에 한 진이 또 서울에서 와 앞의 것과 아울러 큰 기의 진이 여덟이 되었다. 기 없는 진은 군사가 많아야 쉰을 넘지 않고 혹은 겨우 스무 남짓이며, 큰 기의 진은 적어도 삼사백을 밑돌지 않고 많은 것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데 진마다 기가 마흔 자루씩 있다」 하였습니다.

어젯밤에 황해도 수안(遂安) 사람으로 장계를 모시고 가는 이가 이곳을 지나며 말하기를 「황해 한 길의 안성(安城)·용천(龍泉) 등지에 서울에서 내려온 적이 요사이 많은 수로 가득 차 서쪽으로 향할 형세가 있다」 하였습니다.

신이 앞서 순안(順安)에서 적의 형세를 대강 아뢰고, 명나라 군사가 오는 더디고 빠름을 급히 알아내어 군중에 은밀히 알려 주시기를 청하였습니다. 당초 심 장수가 기한을 쉰 날로 정하였으니 구월 초하루부터 헤아리면 이제 다만 하루가 남았습니다. 가령 명나라 군사가 과연 기한 안에 이른다 해도 적의 무리가 이미 많으면 쳐 없애는 데 힘이 들 듯합니다. 하물며 이제까지 아득하고, 오가는 명나라 사람이 사람마다 말이 달라 믿을 수 없음에리까. 예부터 멀리 헤아리는 이는 적고 잠시 편안하려는 이는 많으니, 중국인들 또한 어찌 의논이 같고 다름으로 이를 끌어당겨 막는 자가 없겠습니까. 곧 심유경(沈惟敬)의 뜻도 반드시 행해질지 알 수 없습니다. 쉰 날 뒤에 적이 신의를 잃었다 하여 무리를 들어 서쪽으로 오면 그 누가 막겠습니까. 명나라 군사가 온다 해도 이미 늦을까 두렵습니다.

또 적이 우리 지경에 들어온 뒤로 오로지 우리나라 군량에 기대고 있습니다. 이제 명나라 군사를 대접할 조도 때문에 민간 곡식을 미리 거두어 다 한 길에 쌓아 두었으니, 혹 뜻밖의 근심이 있으면 장차 무엇으로 수습하겠습니까. 신이 홀로 걱정하고 지나치게 헤아려 답답하고 급하기 그지없어 할 바를 알지 못합니다.

활과 살은 신이 여러 번 장계하여 하삼도의 살대를 실어 오기를 청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제 여러 곳 각 진이 다 거의 다하여 겨우 수백 부가 남았을 뿐이니 하루 쓰임에도 넉넉하지 못합니다. 백만 군사가 있다 한들 손을 꽂은 채 할 일이 없습니다. 일이 더욱 위태롭고 급하니 조정에서 모든 일을 급히 조처하시어 뒤쫓기 어려운 뉘우침이 없게 하소서.

협주 1

壬辰十月十九日

임진년 시월 열아흐렛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