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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군사가 동파에서 또 개성부로 물러난 것을 아뢰다馳。啓天兵自東坡又退開城府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373자 · 낭독 3.2분

징비록 권9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今日曉臣與接待使李德馨等俱詣提督下處問安提督出令軍馬分半欲送于開城府使之休息火箭器械亦令送于開城府臣甚怪其由令譯官問之則答云此處無一房屋天若下雨軍器盡濕則不可用獨不見祖承訓之事乎臣告曰前日自坡州還駐東坡遠近民情莫不驚懼今又分兵送于開城府則雖老爺切於休兵更進愚民豈知此意且賊聞之必乘勝西下前功盡棄願老爺退軍還進曲折明白分付陪臣亦當分道兼措開城府糧料提督怒曰吾堂有退去之意爾輩何以不曉事而多言耶臣不得已退來大槪提督昨日不用南兵與數十騎卒遇賊兵不利而退所當申勅軍馬更爲進取之計而遽爲退駐今又欲退開城勢甚可疑而不肯明言若聞退歸之言則必發怒若。天兵因此而退則賊氣愈驕必乘勢長驅恐大事因此不濟不勝痛憤之至且京畿馬草全不接濟自將官以下戰馬一日倒殞者無慮數百餘匹其餘皆飢立待斃欲刈取則軍人不來欲輸運則江華通津等邑海島往來必經數日臣初非所管地方事非預措臨迫際計無所出

오늘 새벽 신이 접대사 이덕형(李德馨) 등과 함께 제독의 처소에 나아가 문안하였습니다. 제독이 영을 내려 군마를 반으로 나누어 개성부로 보내 쉬게 하려 하고, 불화살과 싸움 연장도 개성부로 보내게 하였습니다.

신이 그 까닭을 몹시 괴이히 여겨 역관을 시켜 물으니 「이곳에는 집 한 채도 없으니 하늘에서 비가 내려 군기가 다 젖으면 쓸 수 없다. 조승훈(祖承訓)의 일을 보지 못하였느냐」 하였습니다.

신이 고하기를 「전날 파주에서 동파로 물러나 머무시자 멀고 가까운 백성의 마음이 놀라고 두려워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이제 또 군사를 나누어 개성부로 보내면, 노야께서 아무리 군사를 쉬게 하여 다시 나아가려 하신들 어리석은 백성이 어찌 이 뜻을 알겠습니까. 또 적이 들으면 반드시 이긴 기세를 타고 서쪽으로 내려와 앞서 이룬 공이 다 버려질 것입니다. 노야께서 군사를 물렸다 다시 나아가는 곡절을 밝게 분부하시기 바랍니다. 신도 길을 나누어 개성부 양식을 아울러 마련하겠습니다」 하였습니다. 제독이 성내어 「내가 어찌 물러갈 뜻이 있겠느냐. 너희 무리는 어찌 일을 알지 못하고 말이 많으냐」 하기에 신은 하는 수 없이 물러 나왔습니다.

대개 제독이 어제 남병(南兵)을 쓰지 않고 수십 기병과 더불어 적병을 만나 이기지 못하여 물러났으니, 마땅히 군마를 거듭 신칙하여 다시 나아가 칠 계책을 세워야 할 터인데 갑자기 물러나 머물고 이제 또 개성으로 물러가려 합니다. 형세가 몹시 의심스러우나 밝게 말하려 하지 않고, 물러간다는 말을 들으면 반드시 성을 냅니다. 만일 명나라 군사가 이 때문에 물러나면 적의 기세가 더욱 교만해져 반드시 기세를 타고 멀리 몰아올 것이니, 큰일이 이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할까 두려워 원통함을 이기지 못합니다.

또 경기의 말먹이 꼴이 전혀 대어지지 않아 장수들 이하 싸움말이 하루에 쓰러져 죽는 것이 무려 수백여 필이고, 나머지도 다 굶은 채 서서 죽기를 기다립니다. 베어 오자니 군사가 오지 않고, 실어 오자니 강화·통진 등 고을의 섬을 오가는 데 반드시 며칠이 걸립니다. 신은 애초에 맡은 지방이 아니어서 일을 미리 마련해 두지 못하였으니 급박한 즈음에 계책이 나올 데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