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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양식을 급히 실어 나르기를 청하다請急速輸運唐糧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429자 · 낭독 3.7분

징비록 권9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京畿糧草事臣自前憂慮必知狼狽如此已曾累陳於狀。啓畿甸本是殘薄兵火之餘滿目灰燼惟江華喬桐等邑稍似完全前年禾糓亦登避亂之人及義兵等充滿其中公私船隻之聚泊者其數不可勝記若能先事措置收聚蒿草於通津江華等處細折五六萬石分載船隻又以島中之人略有統屬分運輸到則可以接濟至於軍糧則先計見在元數而知其軍馬幾日之食不足則預爲輸運忠淸道內浦及全羅道海邊倉糓有裕之處積置近境臨時灌輸亦可不至於窘竭聞江華前日留泊之船私相給與所餘不多又不約束人夫登時輸運事到目前然後方欲取辦文移往復動經數日雖百般督促難可立辦今軍糧則稍有餘儲可支數日馬豆則竭乏已久馬死者相繼於道今日之勢罔知攸措昨日。天將欲還駐開城府臣與李德馨等多般哀乞姑爲留駐夕間招通事密語更催後兵欲爲進取云云而惟賊兵屯據京城我兵利鈍似難預期脫或曠日持久則糧草俱竭進退不得任事之臣雖萬死而不足贖誤國之罪唐糧入萬餘石若能及時追到庶可支給而尙無到近之報臣不知一路所輸今到何處江氷已解船路輸運之事亦須急急措置無失事機事。朝廷別樣善處事係悶迫屢次馳。啓

경기의 양식과 꼴 일은 신이 전부터 걱정하여 반드시 이처럼 낭패할 줄 알고 이미 여러 번 장계로 아뢰었습니다. 경기는 본디 메마르고 가난한 데다 병화를 겪은 나머지 눈에 가득한 것이 잿더미입니다. 오직 강화·교동 등 고을이 조금 온전한 듯하고 지난해 곡식도 잘 여물었으며, 피란한 사람과 의병 등이 그 안에 가득하고 공사(公私)의 배가 모여 댄 것이 그 수를 이루 적을 수 없습니다.

만일 일에 앞서 조치하여 통진·강화 등지에서 꼴을 거두어 모아 오륙만 섬을 잘게 썰어 배에 나누어 싣고, 또 섬 안 사람을 조금이라도 거느려 나누어 실어 오게 하였더라면 대어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군량에 이르러서는 먼저 지금 남아 있는 전체 수량을 헤아려 군마의 며칠 먹을 것이 모자라는 줄 알면 미리 실어 나르고, 충청도 내포와 전라도 바닷가 창고에 곡식이 넉넉한 곳에서 가까운 지경에 쌓아 두었다가 때에 임하여 대어 보내면 또한 군색하고 마르는 데 이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들으니 강화에 전날 머물러 대었던 배를 사사로이 서로 내주어 남은 것이 많지 않고, 또 인부를 단속하여 제때 실어 나르지도 않았다 합니다. 일이 눈앞에 닥친 뒤에야 비로소 마련하려 하니 공문이 오가는 데 걸핏하면 며칠이 지나, 아무리 백방으로 독촉하여도 당장 마련하기 어렵습니다.

이제 군량은 조금 남은 것이 있어 며칠은 지탱할 만하나, 말콩은 마른 지 이미 오래여서 죽는 말이 길에 잇달았습니다. 오늘의 형세는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어제 명나라 장수가 개성부로 물러가 머물려 하기에 신이 이덕형(李德馨) 등과 여러 가지로 애걸하여 우선 머물러 있게 하였습니다. 저녁에 통사를 불러 가만히 말하기를, 뒤따르는 군사를 다시 재촉하여 나아가 치려 한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적병이 서울에 웅거하고 있으니 우리 군사가 이길지 질지는 미리 기약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혹시라도 날을 끌어 오래가면 양식과 꼴이 다 말라 나아가지도 물러가지도 못할 것이니, 일을 맡은 신하는 만 번 죽어도 나라를 그르친 죄를 갚기에 모자랍니다.

명나라 양식 만여 섬이 들어오는 것이 만일 제때 뒤따라 이르면 거의 대어 줄 수 있을 터인데 아직 가까이 왔다는 기별이 없습니다. 신은 한 길로 실어 오는 것이 지금 어디에 이르렀는지 알지 못합니다. 강 얼음이 이미 풀렸으니 뱃길로 실어 나르는 일도 모름지기 급히 조치하여 일의 기회를 잃지 마소서. 조정에서 각별히 잘 처리하소서. 일이 절박한 데 매여 여러 차례 급히 아룁니다.

협주 1

癸巳二月一日

계사년 이월 초하룻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