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9 진사록

적병이 전라감사 권율의 진을 침범하였다가 패하여 물러난 일을 아뢰는 장계馳。啓賊兵犯全羅監司權慄陣敗退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533자 · 낭독 4.6분

징비록 권9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他餘事前已狀。啓天兵尙留開城府臣以料理軍事欲與元帥金命元相議處置來到東坡本月十二日午時李薲馳報內京中賊多出陽川犯全羅巡察使權慄駐軍之處時方接戰云云臣前到臨津令各陣及義兵急速馳救十三日曉頭李薲馳報內倭賊三衛出來一衛持白旗一衛持紅旗一衛持黑旗圍抱接戰良久三衛皆爲我軍所敗死者甚多遁出又據義兵將禹性傳馳報賊兵來犯全羅陣聞報卽時分軍繼援又自率舟師水陸繼援次發去云云近日賊兵自平壤敗歸之後不敢出入已久而。天兵久不前進賊又生心連日出没漢江以南其數尤多不勝痛心。天將之意雖未詳知當初碧蹄輕進不利一向退縮每諉以天晴路乾則當進云而懼賊在城中者甚多近日體探之人還自城中者多言賊兵幾盡出去。天將欲於數日後進兵適有譯官吳廷福者十餘日前自江華來謁。天將因請自爲體探挾唐人一名同行久未還來昨日始爲來到徑自入見天將言賊兵之在城中者無慮三四萬且言陪臣等使我言賊少而今以實告當得罪云。天將甚信其說更停進兵之計且留廷福在側以防得罪此輩情狀極爲叵測徐當觀勢處置糧餉則南方船運今始來到東坡站下到泊者米八千餘石豆三千餘石足爲六七日之需而今方南方之糓連續來到糧餉粗繼若能及時進兵賊兵不無望風退北之理而。天將之意亦無速前之計臣與接待等官苦口力陳到此再三呈文只言不滅倭寇無退歸之理愼勿致疑云云而觀其處置則有退無進百計乖張罔知攸措

나머지 일은 앞서 이미 장계로 아뢰었습니다. 명나라 군사는 아직 개성부에 머물러 있고, 신은 군사 일을 헤아려 도원수 김명원(金命元)과 의논하여 처치하려고 동파에 왔습니다.

이달 열이튿날 낮에 순변사 이빈(李薲)이 달려와 알리기를, 「서울의 적이 많이 양천으로 나와 전라순찰사 권율(權慄)이 군사를 머문 곳을 침범하여 지금 맞붙어 싸우고 있다」 하였습니다. 신이 앞서 임진에 이르러 여러 진과 의병에게 급히 달려가 구원하라 하였습니다.

열사흗날 새벽에 순변사 이빈이 알리기를, 「왜적이 세 떼로 나왔는데 한 떼는 흰 기를, 한 떼는 붉은 기를, 한 떼는 검은 기를 들고 에워싸 오래 맞붙어 싸웠으나, 세 떼가 다 우리 군사에게 패하여 죽은 자가 매우 많고 달아났다」 하였습니다. 또 의병장 우성전(禹性傳)이 알린 데 따르면, 적병이 전라도 진을 치러 온다는 기별을 듣고 곧 군사를 나누어 잇달아 구원하게 하고 또 스스로 수군을 거느려 물과 뭍으로 이어 구원하러 떠났다 하였습니다.

요사이 적병은 평양에서 패하여 돌아간 뒤로 감히 드나들지 못한 지 오래였는데, 명나라 군사가 오래 나아가지 않으니 적이 다시 마음을 내어 날마다 한강 남쪽에 나타나며 그 수가 더욱 많아졌습니다. 마음 아픔을 이길 수 없습니다.

명나라 장수의 뜻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처음 벽제(碧蹄)에서 가벼이 나아갔다가 이기지 못한 뒤로 한결같이 움츠러들어 늘 「날이 개고 길이 마르면 마땅히 나아가겠다」고 미루면서도 성안에 적이 매우 많음을 두려워합니다. 요사이 성안에서 돌아온 정탐꾼들이 적병이 거의 다 나갔다고 많이 말하므로 명나라 장수가 며칠 뒤에 군사를 내려 하였습니다.

마침 역관 오정복(吳廷福)이라는 자가 열흘 남짓 전에 강화에서 와 명나라 장수를 뵙고 스스로 정탐하기를 청하여, 명나라 사람 하나를 끼고 함께 갔다가 오래 돌아오지 않더니 어제야 비로소 이르렀습니다. 곧바로 명나라 장수에게 들어가 뵙고 성안에 있는 적병이 어림잡아 서너 만이라 하고, 또 「이 나라 신하들이 나를 시켜 적이 적다고 말하게 하였는데 이제 사실대로 아뢰니 죄를 얻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명나라 장수가 그 말을 매우 믿어 다시 군사 낼 계책을 멈추고, 또 오정복을 곁에 두어 죄 받는 것을 막아 주니 이 무리의 속셈이 몹시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천천히 형세를 보아 처치하겠습니다.

군량은 남쪽에서 배로 나른 것이 이제야 동파 나루 아래에 이르러, 와 닿은 것이 쌀 팔천여 석과 콩 삼천여 석이니 엿새 이레 쓸 것은 넉넉합니다. 지금 남쪽 곡식이 잇달아 오고 있어 군량은 그런대로 이어집니다. 만일 때를 놓치지 않고 군사를 낸다면 적병이 바람만 보고도 달아날 까닭이 없지 않은데, 명나라 장수의 뜻은 또한 빨리 나아갈 계책이 없습니다.

신이 접대하는 관원들과 더불어 입이 닳도록 힘써 아뢰고 여기 와서 두세 번 글을 올려 다만 「왜구를 없애지 않고는 물러가 돌아갈 까닭이 없으니 부디 의심하지 마시라」고 하였습니다마는, 그 처치를 보면 물러남만 있고 나아감은 없어 온갖 계책이 어그러지니 조처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