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량을 헤아려 마련하는 일을 아뢰는 장계料理軍餉狀
前月十九日右副承旨成貼李提督雖已退駐而南方炮手數萬今方出來以此意曉諭人民使之鎭定其心第加措運糧草善待。天兵毋致缺乏事有旨二十四日右副承旨成貼今見李德馨等書狀李提督今將前進前頭糧餉馬草卿其極意措備毋致缺乏以待事有。旨書狀臣幷在東坡祗受當初天兵乘破竹之勢皷行而進遠近之民咸謂京都指日可復其未死亡者稍稍還集不意大軍一退人心缺望驚懼無復固意臣亦爲此留駐東坡曉諭人民略以些少皮糓分賑饑民而心勞事批百計狼狽目前慘酷之狀則饑饉民生提挈老少聞臣在此庶望救活日日來集者無慮千百而無糓可濟重以近日風雨大作枕藉而死者日或八九拊膺焦心無可如何春耕麰種尙未入土環顧四方蕩無儲糓之處魚聚涸轍不日將糜爛無餘極爲痛迫。天兵支待糧餉則除已散給外時方見在之數米一萬九千九百四十三石豆七千一百一十三石米則稍優而豆甚不足然大兵登時進到猶可支吾而今旣曠日持久此處坐食之軍亦廣如李薲所率及高彥伯曹好益之軍皆爲仰給於此今又鄭希玄朴名賢之軍來到漣川亦告乏輝臣欲令退去則京城猶熾欲令仍留則糧無可辦之路事之難處至於如此臣之初意則欲以忠淸全羅船運之糓益以唐糧數萬餘石支給天兵至於京畿江原道零𤨏收合之糓則不足以補天兵一日之需而竭取無餘則軍糧民食皆無所出故欲稍留贏餘以備本處之需不意。天兵久留戶曹及運糧之官急於目前之窘京畿各官所儲及江原道鐵原安峽伊川等邑所儲幾盡取來無復餘糓今。天兵未易前進而我兵擧皆飢困不能成軍此處楊州高陽交河等邑之民經年與賊交戰頗皆精銳近日高彥伯所率捕賊者皆是此軍若得萬餘石之糓則數千精兵可以立聚其於討賊必有其效而頓無辦糧之䇿其將奈何傳聞宋經略已到義州等處未知進兵之期的在何日大扺唐糧三四萬石來到此處然後可無狼狽之患
지난달 열아흐렛날 우부승지가 적어 내린 「이 제독(李提督)이 비록 이미 물러나 머물렀으나 남쪽 포수 수만이 지금 나오고 있으니, 이 뜻으로 백성을 타일러 그 마음을 가라앉히게 하고, 또 군량과 꼴을 힘써 옮겨 마련하여 명나라 군사를 잘 대접하고 모자라는 일이 없게 하라」 하신 분부와, 스무나흗날 우부승지가 적어 내린 「이제 이덕형(李德馨) 등의 서장을 보니 이 제독이 이제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하니, 앞길의 군량과 말먹이를 경이 뜻을 다해 마련하여 모자라는 일 없이 기다리라」 하신 분부의 글을 신이 아울러 동파에서 받들었습니다.
처음 명나라 군사가 대를 쪼개는 기세를 타고 북을 치며 나아가자, 멀고 가까운 백성이 모두 서울을 며칠 안에 되찾으리라 하여 죽지 않고 남은 자들이 차츰 돌아와 모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큰 군사가 한번 물러나니 사람들의 마음이 무너지고 놀라 두려워하여 다시는 굳은 뜻이 없습니다. 신도 이 때문에 동파에 머물러 백성을 타이르고, 약간의 겉곡식으로 굶주린 백성을 조금씩 나누어 먹이나 마음은 수고로우나 일은 어그러져 온갖 계책이 낭패입니다.
눈앞의 참혹한 모습은 이렇습니다. 굶주린 백성이 늙은이와 어린것을 이끌고 신이 여기 있다는 말을 듣고 살아날까 바라 날마다 모여드는 이가 어림잡아 수백에서 수천이나 되는데 구제할 곡식이 없습니다. 게다가 요사이 비바람이 크게 일어 서로 포개어 죽는 자가 날마다 여덟아홉이니, 가슴을 치고 마음을 태워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봄갈이 보리 씨앗도 아직 땅에 넣지 못하였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쌓아 둔 곡식이 있는 곳이 없어 마른 수레바퀴 자국에 갇힌 붕어(涸轍之鮒)처럼 며칠 안에 다 문드러져 남지 않을 것이니 몹시 절박합니다.
명나라 군사를 대접할 군량은 이미 나누어 준 것을 빼고 지금 남아 있는 수가 쌀 일만 구천구백마흔세 석, 콩 칠천백열세 석입니다. 쌀은 그런대로 넉넉하나 콩이 몹시 모자랍니다. 그러나 큰 군사가 곧 나아가 이른다면 오히려 버틸 만한데, 이제 이미 날을 오래 끌어 이곳에 앉아 먹는 군사도 많습니다. 순변사 이빈(李薲)이 거느린 군사와 고언백(高彥伯)·조호익(曺好益)의 군사가 다 여기서 받아먹고, 이제 또 정희현(鄭希玄)·박명현(朴名賢)의 군사가 연천에 이르러 역시 떨어졌다고 고합니다. 신이 물러가게 하려 하면 서울의 적이 아직 성하고, 그대로 머물게 하려 하면 군량을 마련할 길이 없으니 일의 어려움이 이에 이르렀습니다.
신의 처음 뜻은 충청도와 전라도에서 배로 나른 곡식에 명나라 군량 수만여 석을 보태어 명나라 군사에게 대어 주려는 것이었습니다. 경기와 강원도에서 자잘하게 거둔 곡식은 명나라 군사의 하루 쓸 것도 채우지 못하는데 다 긁어 남김이 없으면 군사의 양식과 백성의 먹을 것이 다 나올 데가 없으므로, 조금 남겨 두어 이곳의 쓸 것에 대비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명나라 군사가 오래 머무니 호조와 군량 나르는 관원이 눈앞의 궁함에 급하여, 경기 여러 고을에 쌓인 것과 강원도 철원·안협·이천 등 고을에 쌓인 것을 거의 다 가져와 다시는 남은 곡식이 없습니다.
이제 명나라 군사는 쉬 나아가지 못하고 우리 군사는 모두 굶주리고 고달파 군사를 이루지 못합니다. 이곳 양주·고양·교하 등 고을 백성은 해를 넘겨 적과 싸워 자못 다 날래니, 요사이 고언백이 거느리고 적을 잡는 자가 다 이 군사입니다. 만일 만여 석 곡식을 얻으면 수천 정예를 곧 모을 수 있어 적을 치는 데 반드시 보람이 있겠으나, 군량을 마련할 계책이 전혀 없으니 장차 어찌하겠습니까.
전하여 듣건대 송 경략(宋經略)이 이미 의주 등지에 이르렀다 하나 군사를 낼 날이 정녕 언제인지 알지 못합니다. 대개 명나라 군량 서너 만 석이 이곳에 온 뒤에야 낭패할 걱정이 없겠습니다.
협주 1
三月五日
삼월 닷샛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