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적 형세를 논하고, 여러 장수를 각각 딸린 데가 있게 하여 곳곳에서 끊어 치게 하며, 아울러 송 경략에게 남쪽 정예를 충청도 등에 보내어 한강 남쪽에 둔친 적을 먼저 무찔러 적의 돌아갈 길을 끊기를 청하는 장계論京城賊勢且節制諸將各有統屬處處截邀仍乞請宋經略送南方精卒于忠淸等道使先勦滅漢江以南屯守之賊以斷賊歸路狀
城中賊勢則諸處體探之人逐日來告而所言不一惟高彥伯之軍皆是京城楊州等處之人故其所哨探之辭頗得其實又據逃回人供招大槪京中賊勢近日多數聚會當初。天兵始到之日賊兵甚少自肅淸門藏義門東小門皆無守城之賊北邊蕩然空虛只有南邊一帶以及山頭有賊而甚爲稀疎又於幸州之敗死者太半今則北賊盡入京城原州之賊亦爲來聚城中如興德洞柏子亭洞等處賊兵皆屯守自南大門以及慕華館近處賊陣連絡龍山倉則平壤敗歸之後設城屯遽漢江亦有賊陣橫結浮橋以相通行而沙平院穿峴一路賊兵亦多出沒焚蕩臣以此米甞不痛恨於。天將之一失機會使至於難圖也臣每念用兵制勝惟當先得形勢而已形勢旣得則雖弱可以制强今賊旣屯據京邑憑恃險阻而龍山等倉尙有餘糓主客勞逸之形懸然不同如非。天兵大勢進勦則我兵難以輕進也但賊兵千里連屯自漢江以南直至慶尚道孤軍深入而左右皆有我軍若能約束諸處官義之兵先擊道路往來之賊使首尾斷絕則京城之賊雖以鐵爲城不得不動矣伺其遁歸之際從後追擊可以全勝而我國將士一無致力之人至於義兵自京畿以及忠淸道無慮五十餘將而不受節制於官軍判渙乖離日就散亡勢難有爲而官軍則其數亦少率皆拱手旁觀一不下手人有問之則必曰姑待唐兵極爲痛心臣方頗爲節制各以近處之軍分屬武將使有統屬如楊州加平坡州長淵豐德高陽交河抱川積城朔寧漣川永平之軍則屬於高彥伯使之勦截京城東北及碧蹄延曙等處之賊利川驪州楊根砥平陰竹陽智等邑之軍及召募使俞大進義兵將李軼等軍屬於助防將邊應星使之勦捕竹山陽智金亮等處之賊廣州龍仁果川及義兵將金琢等軍屬於廣州牧使李箕賓勦捕沙平院穿峴龍仁等處之賊全羅兵使宣居恰在秃城故使之節制通津金浦陽川衿川安山水原南陽振威陽城安城之軍分付別將使與李箕賓邊應星等相對挾擊沙平院以下一路之賊而忠淸巡察使許頊兵使李沃駐軍於稷山安城之間遮蔽東路以護糧道且以勦截竹山以下之賊而各處義兵尤多亦當有所統屬如竹山義兵則屬於洪季男鎭川義兵陰城義兵忠州社倉義兵槐山報恩等處義兵亦皆擇其中可任者分統責以勦擊其處之賊而如有惰慢自便逗遛不進撓敗軍機者一切以軍法從事則旬日之間人心齊奮士氣頗振賊平庶幾有望矣聞忠淸道義兵則受制於建義大將沈守慶故本道巡察使以下不敢行其號令而守慶遠在牙山軍機之事頃刻變遷策應之急瞬息雖違往來禀命於遠處豈能保其不失機會。朝廷急速以此意馳諭于建義大將使行其節制龍山倉火攻一䇿臣亦料理已久茨忠淸水使丁傑近日率舟師往來於龍山之下者有日又令京畿水使李蘋及倡義使金千鎰各率舟師以助聲勢又借火箭數十于。天將送于丁傑使之相機善處但龍山地勢江面有斷壠倉在其內我軍若容易下陸爲賊所掩則必至奔敗故臣令丁傑等逐只精鍊敢進素諳地形之人然後乃可故至今未試從當百分詳審處置計料矣臣甞觀兵書云攻堅則瑕者堅攻瑕則堅者瑕故用兵之道先自敵人瑕而攻之則堅者自解今賊之精兵盡聚城中法不可速攻而漢江以南往來之寇則皆是羸兵疲卒輸運卜駄之賊擊之易勝且水路自開城府到江華自江華渡通津道路無阻而南方粮糓亦多饋餉甚易若以南方炮手數千統於猛將從水路繞出賊後與我軍作爲形勢乘其不意直進勦擊峰屯蟻雜之寇豈能支吾漢江以南之賊可一擧蕩盡則忠州以北賊路斷絕京城之賊將不攻自潰如此然後大軍從後皷行以進與前軍合勢姑留其歸路而追擊之賊當隻騎不返此甚今日之第一奇䇿前日頗言於在此。天將而率皆武人麤疎莫肯念聽宋經略已到其處急以此意傳告幸而見聽則非徒我國之幸亦天下之幸也鄭希玄朴名賢等軍亦聞來到楊州令與高彥伯李時言等連營以截東路而軍糧不繼京畿各邑及江原道伊川平康安峽等邑些少之糓盡數括取以爲。天兵之糧更無可措之勢惟此一事計無所出民間無斗粟之儲而前日募粟事目太重今經半年尙無應募之人中流失船一壺千金今豈可計其多少亦乞。朝廷急速講究得粟之䇿如無食則雖有精兵萬數許多計䇿而皆無可用矣此臣之日夜焦心不知所出者也
성안의 적 형세는 여러 곳 정탐꾼이 날마다 와서 알리나 그 말이 한결같지 않습니다. 오직 고언백(高彥伯)의 군사는 다 서울과 양주 등지 사람이므로 그 살펴 온 말이 자못 사실에 가깝고, 또 도망하여 돌아온 사람의 진술도 있어 대개 이러합니다.
서울의 적은 요사이 많이 모였습니다. 처음 명나라 군사가 이르던 날에는 적병이 매우 적어 숙청문·장의문·동소문에 다 성 지키는 적이 없고 북쪽 가장자리는 텅 비었으며, 다만 남쪽 한 띠와 산머리에만 적이 있었으되 매우 성글었습니다. 또 행주에서 패하여 죽은 자가 절반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북쪽 적이 다 서울로 들어가고 원주의 적도 와서 모였습니다.
성안에는 흥덕동·백자정동 같은 곳에 적병이 다 둔쳐 지키고, 남대문에서 모화관 근처까지 적진이 잇닿았습니다. 용산창은 평양에서 패하여 돌아온 뒤에 성을 쌓고 둔쳐 웅거하였으며, 한강에도 적진이 있어 배다리를 가로질러 매고 서로 오갑니다. 사평원(沙平院)과 천현(穿峴) 한 길에도 적병이 많이 나타나 불 지르고 노략합니다. 신은 이 때문에 명나라 장수가 한 번 기회를 놓쳐 도모하기 어려운 데 이르게 한 것을 아프게 한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신이 늘 생각하건대 군사를 써서 이기는 것은 오직 먼저 형세를 얻는 데 있을 뿐입니다. 형세를 얻으면 약한 것으로도 강한 것을 누를 수 있습니다. 이제 적이 이미 서울에 둔쳐 웅거하여 험한 곳을 믿고, 용산 등의 창고에는 아직 남은 곡식이 있어 지키는 쪽과 치는 쪽, 편안한 쪽과 수고로운 쪽의 형세가 아주 다릅니다. 명나라 군사가 큰 형세로 나아가 무찌르지 않으면 우리 군사만으로는 가벼이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다만 적병이 천 리에 잇달아 둔쳐 한강 남쪽에서 곧장 경상도까지 이르니, 외로운 군사가 깊이 들어온 것이요 좌우에는 다 우리 군사가 있습니다. 만일 곳곳의 관군과 의병을 단속하여 길에 오가는 적을 먼저 쳐서 머리와 꼬리를 끊으면, 서울의 적은 쇠로 성을 삼았더라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달아나 돌아가는 때를 엿보아 뒤에서 쫓아 치면 온전히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장수와 군사 가운데 힘을 다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의병으로 말하면 경기에서 충청도까지 어림잡아 쉰 남짓 장수가 있으나 관군의 절제를 받지 않아 갈라지고 어그러져 날로 흩어져 없어지니 형세가 일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관군은 그 수도 적은데 대개 팔짱을 끼고 곁에서 보기만 하며 한 번도 손을 대지 않고, 누가 물으면 반드시 「우선 명나라 군사를 기다린다」 합니다. 몹시 마음 아픕니다.
신이 이제 자못 절제를 세워 각각 가까운 곳 군사를 무장에게 나누어 붙여 거느릴 데가 있게 하였습니다. 양주·가평·파주·장단·풍덕·고양·교하·포천·적성·삭녕·연천·영평의 군사는 고언백에게 붙여 서울 동북쪽과 벽제·연서 등지의 적을 무찔러 끊게 하였습니다. 이천·여주·양근·지평·음죽·양지 등 고을의 군사와 소모사 유대진(俞大進), 의병장 이일(李軼) 등의 군사는 조방장 변응성(邊應星)에게 붙여 죽산·양지·금량 등지의 적을 무찔러 잡게 하였습니다. 광주·용인·과천의 군사와 의병장 김탁(金琢) 등의 군사는 광주목사 이기빈(李箕賓)에게 붙여 사평원·천현·용인 등지의 적을 무찔러 잡게 하였습니다. 전라병사 선거이(宣居怡)는 독성에 있으므로 통진·김포·양천·금천·안산·수원·남양·진위·양성·안성의 군사를 절제하게 하고 별장에게 분부하여, 이기빈·변응성 등과 마주 보며 사평원 아래 한 길의 적을 끼고 치게 하였습니다. 충청순찰사 허욱(許頊)과 병사 이옥(李沃)은 직산과 안성 사이에 군사를 머물러 동쪽 길을 가려 막아 군량 길을 보호하고, 또 죽산 아래의 적을 무찔러 끊게 하였습니다.
곳곳의 의병은 더욱 많으니 또한 거느릴 데가 있어야 합니다. 죽산 의병은 홍계남(洪季男)에게 붙이고, 진천 의병과 음성 의병, 충주 사창 의병, 괴산·보은 등지의 의병도 다 그 가운데 맡길 만한 이를 가려 나누어 거느리게 하여 그곳의 적을 치도록 책임 지웠습니다. 만일 게으르고 제 편한 대로 하여 머뭇거리며 나아가지 않고 군사 기회를 어지럽혀 그르치는 자가 있으면 한결같이 군법으로 다스리겠습니다. 그리하면 열흘 사이에 사람 마음이 가지런히 떨쳐 일어나고 사기가 자못 떨쳐 적을 평정할 바람이 있겠습니다.
듣건대 충청도 의병은 건의대장 심수경(沈守慶)에게 매여 있으므로 본도 순찰사 이하가 감히 호령을 행하지 못한다 합니다. 그런데 심수경은 멀리 아산에 있고 군사 기회는 잠깐 사이에 바뀌어 대응의 급함이 눈 깜짝할 새에 어긋나니, 먼 곳에 오가며 명을 여쭈어서야 어찌 기회를 잃지 않기를 보장하겠습니까. 조정에서 급히 이 뜻을 건의대장에게 알려 그 절제가 제대로 행해지게 하소서.
용산창을 불로 치는 한 계책은 신도 헤아린 지 오래입니다. 이에 충청수사 정걸(丁傑)이 요사이 수군을 거느리고 용산 아래를 오간 지 여러 날이며, 또 경기수사 이빈(李蘋)과 창의사 김천일(金千鎰)에게 각각 수군을 거느려 소리와 기세를 돕게 하였습니다. 또 불화살 수십을 명나라 장수에게 빌려 정걸에게 보내어 기미를 보아 잘 처리하게 하였습니다. 다만 용산은 땅 형세가 강 쪽에 끊어진 언덕이 있고 창고가 그 안에 있어, 우리 군사가 쉽게 뭍에 내렸다가 적에게 덮치이면 반드시 무너져 달아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이 정걸 등에게 하나하나 정예를 가려 익히고 감히 나아갈 만하며 본디 땅 형세를 잘 아는 사람을 고른 뒤에야 하라 하였으므로 아직 시험하지 못하였고, 앞으로 백 번 자세히 살펴 처치할 셈입니다.
신이 일찍이 병서를 보니 「굳은 데를 치면 흠 있던 데가 굳어지고, 흠 있는 데를 치면 굳던 데가 흠이 된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군사를 쓰는 길은 먼저 적의 흠부터 치는 것이니, 그리하면 굳던 데가 절로 풀립니다. 이제 적의 날랜 군사는 다 성안에 모여 있어 법으로 보아 빨리 칠 수 없으나, 한강 남쪽을 오가는 적은 다 약하고 지친 군사요 짐을 나르는 무리라 치면 이기기 쉽습니다. 또 물길은 개성부에서 강화에 이르고 강화에서 통진으로 건너는 데 길이 막힘이 없으며, 남쪽 곡식도 많아 먹이기가 매우 쉽습니다.
만일 남쪽 포수 수천을 날랜 장수에게 거느리게 하여 물길로 돌아 적의 뒤로 나가서 우리 군사와 더불어 형세를 이루고, 뜻하지 않은 때를 타 곧장 나아가 친다면, 벌 떼처럼 둔치고 개미처럼 섞인 적이 어찌 버티겠습니까. 한강 남쪽의 적을 한 번에 쓸어 없애면 충주 위쪽 적의 길이 끊어져 서울의 적은 치지 않아도 절로 무너질 것입니다. 그런 뒤에 큰 군사가 뒤에서 북을 치며 나아가 앞 군사와 형세를 합하고, 그 돌아갈 길을 잠시 남겨 두었다가 쫓아 치면 적은 한 기병도 돌아가지 못할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오늘의 첫째가는 기이한 계책입니다. 일전에 여기 있는 명나라 장수에게 자못 말하였으나 대개 무인이라 거칠고 성글어 마음에 두어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송 경략(宋經略)이 이미 그곳에 이르렀으니 급히 이 뜻을 전하여 알리고, 다행히 들어 준다면 우리나라의 다행일 뿐 아니라 천하의 다행이겠습니다.
정희현(鄭希玄)·박명현(朴名賢) 등의 군사도 양주에 이르렀다 하므로 고언백·이시언(李時言) 등과 진을 잇달아 치고 동쪽 길을 끊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군량이 이어지지 못하고, 경기 여러 고을과 강원도 이천·평강·안협 등 고을의 적은 곡식을 다 긁어 명나라 군사의 양식으로 삼아 다시 마련할 형세가 없습니다. 오직 이 한 가지 일에 계책이 나오지 않습니다. 민간에는 한 말 곡식의 저축도 없고, 일전의 곡식 모으는 조목은 너무 무거워 반년이 지난 이제까지 응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물 가운데서 배를 잃으면 한 병 물이 천금이라 하였으니, 이제 어찌 많고 적음을 따지겠습니까. 조정에서 급히 곡식 얻을 계책을 강구하시기를 아울러 빕니다. 먹을 것이 없으면 날랜 군사 만 명과 허다한 계책이 있어도 다 쓸 데가 없습니다. 이것이 신이 밤낮으로 마음을 태우면서도 길을 찾지 못하는 바입니다.
협주 2
癸巳三月五日
계사년 삼월 닷샛날
저본은 長淵이나 長湍의 잘못으로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