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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의 글을 올려 보내는 장계倭書上送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557자 · 낭독 4.9분

징비록 권10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倭書呈禮曹一封查將留置其處只爲謄示故改書上送又忠淸水使丁傑了倭書一道幷爲上送此乃事機之甚重者。朝廷急速詳議指揮大槪倭奴之爲此者情狀有三平壤見敗之後又敗於幸州精銳幾盡今雖北道原州等賊來聚一城而。天兵在後我國之軍多在南方歸路水使丁傑李蘋及金千鎰等各以舟師橫截江口高彥伯之軍連日血戰於城東我軍無所損失而賊兵多死所謂孤軍深入難善其歸黠虜固已破膽一也經年遠鬪兵疲意沮士卒思歸而兇酋不許故欲藉此而歸報關白得還其國二也欲以講和之言姑緩。天兵而留待其兵之後至者添兵肆毒三也臣竊觀。天將處置言語自前用兵之意未果而雜出於講解退兵之計今因此事其計益行故昨日臣與金命元同進查將之處欲見意思所在查將以傷寒臥病辭謝不見夜間查將密進家丁到臣所接處傳查將之言云病差則吾當親到倭所哄他先爲圖出王子其意欲令臣作答書與倭臣答云倭賊弱則詐和緩兵例也前於臨津及平壤之戰亦皆如此何可信聽而蹈於奸計乎况老爺前於平壤已入城見倭而旋卽用兵倭奴固已懷憤今不可親見凶賊明矣至於作書本國於此賊有竆天極地之讎雖死豈有講和之理以此謝遣而今朝查將更招通事云今日病歇須通于元帥議政與之議事云未知所言如何大槪中國厭於用兵欲許貢退兵以息生靈之禍而在我國則大讎未復而兵力寡弱欲藉他兵以復故有此難處之事而延遷之間糧食匱竭軍民潰散則雖有可乘之機力戰之將勇銳之卒皆無可用之處事勢之急日甚一日極爲痛迫

왜적의 글로 예조에 바친 한 통은 사 장수(査將)가 그곳에 두고 다만 베껴 보이기만 하므로 다시 써서 올려 보냅니다. 또 충청수사 정걸(丁傑)이 얻은 왜적의 글 한 통도 아울러 올려 보냅니다. 이는 일의 기미가 매우 중한 것이니 조정에서 급히 자세히 의논하여 지휘하소서.

대개 왜놈들이 이렇게 하는 까닭은 그 속셈이 셋입니다. 평양에서 패한 뒤에 또 행주에서 패하여 날랜 군사가 거의 다하였고, 이제 비록 북도와 원주 등지의 적이 와서 한 성에 모였으나 명나라 군사가 뒤에 있고 우리나라 군사가 남쪽 돌아갈 길에 많이 있으며, 수사 정걸과 경기수사 이빈(李蘋), 김천일(金千鎰) 등이 각각 수군으로 강어귀를 가로막고, 고언백(高彥伯)의 군사가 날마다 성 동쪽에서 피 흘려 싸워 우리 군사는 잃은 것이 없고 적병은 많이 죽었습니다. 이른바 외로운 군사가 깊이 들어와 그 돌아감을 잘 마치기 어려운 것이라, 간사한 오랑캐가 본디 이미 간담이 깨진 것이 하나입니다. 해를 넘겨 멀리 싸우느라 군사가 지치고 뜻이 꺾여 병졸이 돌아가기를 생각하나 흉악한 우두머리가 허락하지 않으므로, 이를 빌미로 관백에게 돌아가 아뢰고 제 나라로 돌아가려는 것이 둘입니다. 화친을 말하여 우선 명나라 군사를 늦추어 놓고 뒤에 오는 제 군사를 기다려 군사를 보태어 마음껏 해독을 부리려는 것이 셋입니다.

신이 가만히 명나라 장수의 처치와 말을 보니, 앞서부터 군사를 쓰려는 뜻은 이루지 못하고 화친하여 군사를 물리려는 계책이 섞여 나왔는데, 이제 이 일로 그 계책이 더욱 행해집니다. 그러므로 어제 신이 김명원(金命元)과 함께 사 장수가 있는 곳에 나아가 뜻이 어디 있는지 보려 하였으나, 사 장수는 찬 기운에 얻은 병으로 누웠다 하여 사양하고 보지 않았습니다.

밤에 사 장수가 친병(家丁)을 몰래 보내어 신이 묵는 곳에 이르러 그 말을 전하기를, 「병이 나으면 내가 몸소 왜의 처소에 가서 저들을 속여 먼저 왕자를 빼내 오겠다」 하였습니다. 그 뜻은 신에게 왜에게 줄 답서를 짓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신이 답하기를, 「왜적이 약해지면 거짓 화친하여 군사를 늦추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앞서 임진과 평양 싸움에서도 다 이러하였으니 어찌 믿고 들어 간사한 계책에 빠지겠습니까. 하물며 노야께서 앞서 평양에서 이미 성에 들어가 왜를 보시고도 곧 군사를 쓰셨으니 왜놈들이 본디 이미 분을 품었을 것이라, 이제 몸소 흉한 적을 보실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글을 짓는 일로 말하면, 우리나라는 이 적과 하늘 끝 땅 끝까지 다한 원한이 있으니 죽더라도 어찌 화친할 이치가 있겠습니까」 하고 사양하여 보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사 장수가 다시 통사를 불러 「오늘은 병이 덜하니 도원수와 의정에게 통하여 함께 일을 의논하겠다」 하였다니,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대개 중국은 군사 쓰기를 싫어하여 조공을 허락하고 군사를 물려 백성의 화를 그치게 하려 하고, 우리나라로서는 큰 원한을 갚지 못하였는데 군사 힘이 적고 약하여 남의 군사를 빌려 갚으려 하니, 이렇게 처하기 어려운 일이 있습니다. 끌고 미루는 사이에 양식이 다하고 군사와 백성이 흩어지면, 탈 만한 기회와 힘껏 싸울 장수와 날래고 굳센 군사가 있어도 다 쓸 데가 없습니다. 사세의 급함이 날로 더하니 몹시 아프고 절박합니다.

협주 1

癸巳三月七日在東坡

계사년 삼월 이렛날 동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