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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서와 호남의 형세가 위급하니 헤아려 조처하시기를 급히 아뢰다馳。啓兩湖事勢危迫參酌處置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818자 · 낭독 7분

징비록 권10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此處。天將粮料大槪前已馳。啓今據戶曹判書李誠中分戶曹判書朴忠侃所報米豆幾至四萬餘石。天兵糧餉稍可支吾至於馬草時方陸續輸運當初提督退兵非因糧乏一事只緣碧蹄輕進蹉跌轉輾至此坐失機會眞可痛心臣又有所慮者兩湖幸未盡經兵火頗緩於他道而自前年調度諸役皆出於此且李洸崔遠之軍中道潰散盡失糧資督運未已其他義兵官軍作弊侵徵割剝公私無有紀極民力殫竭蓄儲蕩盡尤甚於被兵之處傳聞忠淸道黃澗永同淸州等地四無人烟但聞風水之聲而自忠州以上之賊殺掠甚於秋冬大抵賊雖因大軍在西不卽遽向而雄據京邑更事漢江以南乘其空虛衝突於兩湖之境則將何以禦之假使棄城還歸而糧盡之賊欲取郡邑餘糓以爲行資亂出搶掠勢所宜有今南方之勢極爲危迫而。天兵支待軍糧盡在於稷山之間其他糧草輸運來在路傍者已多爲賊所掠不徒此也京畿郡縣初聞。天兵之至只以支供爲急盡忘備賊之事右道各官守令如果川抱川仁川富平南陽通津盡數分定差使員棄其官守盡率一境之人奔走諸處至如義兵聚合之人亦稱天兵支待運糧負草散軍獨處不復以討賊爲心臣竊深憂之急速行移于京畿左巡察使成泳令約束左道軍兵且傳通義兵合勢把截而往復遷延已經旬朔前月十七日以後漢江以南賊勢愈盛抱川衿川果川水原近處無不焚蕩人民駭散雖有全羅兵使宣居怡居守秃城僅僅自保其他更無邀截之軍加以軍食匱乏京畿郡邑些少之糓已爲竭取無餘雖欲調兵禦賊而飢羸困頓朝夕將盡之民何用於戰陣臣之初意曾已慮此故。天兵糧料則只以南邊船運之糓益以唐糧數萬餘石庶幾支待而至於江原道京畿之糓則姑未盡取以爲我國軍需此計未行今到無可奈何之地徒爲罔措京畿左監司成泳才器劣弱識慮不長不足以當事於危迫之際近日處置未免疎漏左道之事尤甚可慮而顧難得人以代則亦不足以濟事故臣姑未敢請遞。朝廷更加商量處置忠淸道牙山等處倉糓則本道巡察使許頊馳報內御史姜籤竭取轉輸更無餘儲極爲可悶云臣意此處軍糧略已措辦兩湖之糓雖不可不運而亦當稍存贏餘以備不虞之用似爲便當若兩湖板蕩軍民潰散而不可復收賊兵乘虛掩其無備則國家根本之寄更在何地此等曲折更令該司十分商量處置

이곳 명나라 장수와 군사의 양식 사정은 대개 앞서 이미 급히 아뢰었습니다. 이제 호조판서 이성중(李誠中)과 분호조판서 박충간(朴忠侃)이 보고한 바에 따르면 쌀과 콩이 거의 사만 석에 이릅니다. 명나라 군사의 군량은 그런대로 버틸 만하고, 말먹이 풀은 지금 잇달아 실어 나르고 있습니다.

애초에 제독이 군사를 물린 것은 양식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다만 벽제에서 가볍게 나아갔다가 발을 헛디딘 탓에 이리저리 굴러 여기까지 이르러 앉은 채로 기회를 잃었으니 참으로 애통합니다.

신에게 또 걱정되는 바가 있습니다. 호서와 호남은 다행히 병화를 다 겪지 않아 다른 도보다 자못 나았습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온갖 조달과 부역이 모두 여기서 나왔고, 또 이광(李洸)과 최원(崔遠)의 군사가 도중에 무너져 흩어져 군량과 물자를 다 잃었는데도 실어 나르기를 다그치는 일은 그치지 않습니다. 그 밖에 의병과 관군이 폐단을 지어 함부로 거두고 살을 깎듯 빼앗아 공사 간에 끝 간 데가 없습니다. 백성의 힘은 다하고 쌓아 둔 것은 씻은 듯 없어져 오히려 병화를 입은 곳보다 더 심합니다.

전해 듣기로 충청도 황간·영동·청주 등지는 사방에 사람의 연기가 없고 다만 바람 소리와 물소리만 들린다 합니다. 그리고 충주 위쪽의 적은 죽이고 노략질함이 지난 가을·겨울보다 심합니다.

대개 적이 대군이 서쪽에 있는 까닭에 곧바로 그리로 향하지는 않으나, 서울에 웅거하여 다시 한강 이남을 손대고 그 빈틈을 타 호서와 호남 지경으로 들이친다면 장차 무엇으로 막겠습니까. 설사 성을 버리고 돌아간다 하더라도 양식이 다한 적이 고을에 남은 곡식을 거두어 길 양식으로 삼으려고 어지러이 나와 노략질하는 일은 형세상 마땅히 있을 만합니다.

이제 남쪽의 형세가 몹시 위급합니다. 그런데 명나라 군사를 대접할 군량은 모두 직산 근처에 있고, 그 밖에 실어 오다 길가에 놓인 양식과 꼴은 이미 적에게 빼앗긴 것이 많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경기의 고을들은 처음 명나라 군사가 온다는 말을 듣고 오직 대접하는 일만 급하게 여겨 적을 막을 일은 죄다 잊었습니다. 우도 각 고을 수령인 과천·포천·인천·부평·남양·통진은 모두 딴 일에 뽑혀 나가, 제 고을 지키는 일을 버리고 온 지경의 사람을 다 이끌고 여기저기 내달립니다. 심지어 의병으로 모인 사람까지도 명나라 군사를 대접한다 일컬으며 양식을 나르고 꼴을 지니, 군사는 흩어지고 홀로 남아 다시는 적을 치는 데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신은 삼가 이를 깊이 근심합니다. 급히 경기 좌순찰사 성영(成泳)에게 공문을 보내어 좌도 군사를 단속하고 또 의병에게 알려 힘을 합쳐 길목을 막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가며 미루는 사이에 이미 한 달이 지났습니다.

지난달 열이렛날 뒤로 한강 이남의 적세가 더욱 성하여 포천·금천·과천·수원 가까운 곳은 불타지 않은 데가 없고 백성은 놀라 흩어졌습니다. 비록 전라병사 선거이(宣居怡)가 독성을 지키고 있으나 겨우 제 몸을 보전할 뿐이요, 그 밖에는 다시 맞아 끊을 군사가 없습니다. 게다가 군량이 모자라 경기 고을의 얼마 안 되는 곡식마저 이미 바닥이 나도록 거두어 남은 것이 없습니다. 비록 군사를 뽑아 적을 막고자 하나 굶주려 여위고 지쳐 아침저녁으로 숨이 끊길 백성을 싸움터에 무엇에 쓰겠습니까.

신의 처음 뜻은 일찍이 이를 염려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명나라 군사의 양식은 다만 남쪽 바닷길로 실어 온 곡식에 명나라 양식 수만여 석을 보태어 대접하려 하였고, 강원도와 경기의 곡식은 아직 다 거두지 말고 우리나라 군수로 삼으려 하였습니다. 이 계책이 행해지지 않아 이제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그저 어쩔 줄 모를 뿐입니다.

경기 좌감사 성영은 재주와 그릇이 못 미치고 식견과 생각이 길지 못하여 위급한 즈음에 일을 맡기기에 넉넉지 못합니다. 요사이 처결이 엉성함을 면치 못하니 좌도의 일이 더욱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그러나 돌아보건대 대신할 사람을 얻기 어려워 또한 일을 이루기에 넉넉지 못한 까닭에, 신이 아직 감히 갈아 주기를 청하지 못합니다. 조정에서 다시 헤아려 조처하소서.

충청도 아산 등지의 창고 곡식은, 그 도 순찰사 허욱(許頊)이 급히 보고한 바에 「어사 강첨(姜籤)이 바닥나도록 거두어 실어 가 다시 남은 것이 없으니 몹시 딱하다」 하였습니다.

신의 생각에 이곳의 군량은 대략 이미 마련되었습니다. 호서와 호남의 곡식을 나르지 않을 수는 없으나, 또한 마땅히 얼마쯤 남겨 두어 뜻밖의 쓰임에 대비하는 것이 편할 듯합니다. 만일 호서와 호남이 무너져 군사와 백성이 흩어져 다시 거둘 수 없게 되고 적병이 빈틈을 타 대비 없는 곳을 덮친다면, 나라의 근본을 맡길 곳이 다시 어디이겠습니까. 이런 곡절을 다시 해당 관사로 하여금 십분 헤아려 조처하게 하소서.

협주 3

癸巳三月十日在東坡

계사년 삼월 열흘, 동파에서

차사원(差使員) — 나랏일이 있을 때 따로 뽑아 보내던 벼슬아치다.

경기 좌순찰사와 경기 좌감사는 한 사람 성영(成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