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일의 장계를 붙이다附金千鎰書狀
今三月初九日黃廷彧與倭賊出到江邊曲折段已曾馳。啓爲白置其後臨海君奴長世及黃赫孽族安鐸等賊倭一時逐日持書簡出來求和事一一馳報都體察使爲白在果十二日臣與忠淸水使丁傑京畿水使李蘋領率諸船乘潮直上先使一紙書示不戰逍遙之意然後自蚕頭嶺下皷笛振作雜以螺簫過西江抵黑石賊倭五六十列立相望之處爲白如乎巳時長世等又與賊倭十餘名持書簡出來臣等詳問賊中情狀後略書回答付送爲白遣欲探賊情虛實及兩君居處臣麾下守門將李藎忠從自願入送爲有如乎同李藎忠十四日還來進吿內矣身自大古介經藥田前路至靑坡石橋項從橋下川邊之路越邊過十餘家至一有銀杏樹大家乃賊將淸正所在也引入外廊二食頃許方乃召入翼廊之內金屏紅氈羅幃錦帳極其盛飾見倭將淸正者年可三十與兩王子共坐堂中藎忠就拜。王子前王子問。主上寒喧訖淸正以譯者問答而譯者迺叛國賊人沙火同之弟云賊將指。王子曰公見。王子肌膚顏色如何少無羸瘠可知吾厚待也且曰講和之事何以爲之速示可否則欲决行止何以遷延無黑白乎日本關白發諸島之兵朝暮渡海入驅朝鮮直擣中原則悔無所及何不速爲之處乎答曰目今。天將率百萬之衆與本國報讎之兵振旅而來日本能戰則戰可也至於講和之事在於。天將非我國之所敢擅決也又曰冒險入來無廼爲飢聊具薄饌於是童奴進食先賊將次。王子次藎忠相對而飯幷行酒三杯而撒然後廼召黃延彧父子及李瑛皆自異處而來亦行酒三杯曰朝鮮人來此公等相與傳言于此人使之吿其大將轉報江南之將速定和議可也俄而賊將曰我有不得已入城中之事公等共坐于此以待吾還遂出去諸卒下之賊縵立帳外而守之。王子及三人共坐燈下各道辛苦之狀慘不恐聞。王子身著毛段道袍頭戴毛冠具貂皮耳掩曰我常著白衣自欲和以來賊將措備衣冠今日勸令著之固辭則怒曰君欲著陋服示我薄待之意於來使乎强令洗面改著云云且臨海君擧冠露額指瘡痕曰上來時中路持棒亂打傷破處也黃廷彧亦云以我爲知傳國實所在之處而不爲指示於路上無數歐打幾死得生李瑛則曰吾以罵賊不屈再三欲殺而止頑命不死辱國之恥其何忍言兩。王子欲書私簡先入房中夫人亦同在此云夜深賊將始還藎忠與從倭宿于別處翌日食後仍給附呈。天將之書及兩。王子答書幷黃廷彧等。行在所了無臣字長紙書一封仍與安鐸及從倭等還出來同李藎忠持來之書段都體察使處皆爲封送爲白齊十五日巳時前項長世等復持賊將之書及兩。王子書簡出來問答之際。天將沈遊擊周遊擊謝相公三將率其家丁二十三人乘船直來于臣等泊船處賊倭等望見黃傘知。天將之至李藎忠亦答書傳給次下陸時賊倭等藎忠親自人歸面吿。天將來由於其將亦爲白去乙藎忠如其言入歸申時李藎忠持倭書還出來。天將望見藎忠之還促令招見問王子肥瘠何如答曰柴毀骨立又問賊中芻糧何如曰糧之多少未可知但見其衆頗有飢色糧乏可知而馬則只吃腐草瘦骨崢嶸死馬之棄路者無處無之無草可知又問賊兵多少曰未能詳知大槪觀其出入之倭皆疲殘無勇摧挫可知矣。天將曰知悉令通事金善慶傳言于賊曰俺等只聞有平行長不聞有淸正今始知汝實獲得。王子者也然則可速通書于俺等俺等受。天子之命爲大將軍非如前日往安邊之馮淑紘職卑之比也云云開諭入送。天將仍宿舟中當日辰時天將令角行船臣等領率舟師一時隨行至西江賊倭騎步者如前列立觀望爲白如乎午時賊將平行長玄蘇世俊等出來。天將則下陸不冬爲白遣使通事及家丁傳語且以書辭往復其間秘密之意不能詳知爲白齊又有清正所使之倭三十餘名與前項安鐸等出來。天將又書答書附途于淸正而皆以秘密爲之不得參見爲白齊。天將仍泊西江臣與丁傑李蘋領舟師護衛。天將以宿云云
이달 삼월 초아흐렛날 황정욱(黃廷彧)이 왜적과 함께 강가에 나온 곡절은 이미 일찍이 급히 아뢰었습니다. 그 뒤 임해군의 종 장세(長世)와 황혁(黃赫)의 서족 안탁(安鐸) 등이 왜적과 함께 날마다 편지를 지니고 나와 화친을 구하는 일을 낱낱이 도체찰사에게 급히 보고하였습니다.
열이튿날 신이 충청수사 정걸(丁傑), 경기수사 이빈(李蘋)과 더불어 여러 배를 거느리고 밀물을 타 곧바로 올라갔습니다. 먼저 종이 한 장의 글로 싸우지 않고 노닌다는 뜻을 보인 뒤에, 잠두령 아래에서 북과 피리를 울리고 소라와 퉁소를 섞어 서강을 지나 흑석에 이르니 왜적 오륙십이 늘어서서 서로 바라보는 곳이었습니다.
사시에 장세 등이 또 왜적 열댓 명과 함께 편지를 지니고 나왔습니다. 신들이 적중의 실정을 자세히 물은 뒤에 대강 답을 써서 부쳐 보냈습니다. 적정의 허실과 두 왕자가 있는 곳을 더듬어 알고자 하여, 신의 휘하 수문장 이신충(李藎忠)을 스스로 원하는 대로 들여보냈습니다.
그 이신충이 열나흗날 돌아와 아뢴 바에, 「제가 대고개에서 약전 앞길을 지나 청파 돌다리 목에 이르러 다리 밑 냇가 길을 따라 건너편으로 넘어 열댓 집을 지나, 은행나무가 있는 한 큰 집에 이르니 곧 적장 청정(淸正)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바깥 행랑으로 이끌어 들여 밥 두 끼 지을 만한 동안을 두었다가 비로소 익랑 안으로 불러들였는데, 금병풍과 붉은 담요, 비단 휘장과 장막으로 꾸밈이 극히 성하였습니다.
왜장 청정을 보니 나이는 서른쯤이고 두 왕자와 함께 마루에 앉아 있었습니다. 제가 나아가 왕자 앞에 절하니 왕자가 임금의 안부를 묻고 나서, 청정이 통역으로 묻고 답하였는데 통역은 곧 나라를 배반한 도적 사화동(沙火同)의 아우라 합니다.
적장이 왕자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공이 왕자의 살빛과 낯빛을 보니 어떠한가. 조금도 여위지 않았으니 내가 두터이 대접한 줄 알 만하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화친하는 일을 어찌하려는가. 빨리 옳고 그름을 보이면 가고 머무를 것을 정하려 한다. 어찌 미루기만 하고 흑백이 없는가. 일본 관백이 여러 섬의 군사를 내어 아침저녁으로 바다를 건너와 조선을 몰아 곧바로 중원을 친다면 뉘우쳐도 미칠 바가 없을 것이니, 어찌 빨리 처결하지 않는가」 하였습니다.
제가 답하기를 「지금 명나라 장수가 백만 무리를 거느리고 우리나라의 원수 갚을 군사와 함께 군세를 떨쳐 옵니다. 일본이 싸울 수 있으면 싸우면 될 것입니다. 화친하는 일은 명나라 장수에게 달렸으니 우리나라가 감히 마음대로 정할 바가 아닙니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왔으니 시장하지 않은가」 하고 애오라지 변변찮은 음식을 차렸습니다. 이에 아이종이 밥을 올리는데 먼저 적장, 다음 왕자, 다음 저에게 하여 마주 앉아 먹고 아울러 술 석 잔을 돌린 뒤에 물렸습니다. 이내 황정욱 부자와 이영(李瑛)을 불러 모두 다른 곳에서 오게 하고 또한 술 석 잔을 돌리며 말하기를 「조선 사람이 여기 왔으니 공들은 서로 이 사람에게 말을 전하여, 그 대장에게 아뢰고 강남의 장수에게 옮겨 알려 빨리 화의를 정하게 하는 것이 옳다」 하였습니다.
이윽고 적장이 「나는 부득이 성안에 들어갈 일이 있으니 공들은 여기 함께 앉아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라」 하고 마침내 나갔습니다. 여러 졸개 아래 적들이 장막 밖에 늘어서서 지켰습니다.
왕자와 세 사람이 등불 아래 함께 앉아 저마다 괴롭고 쓰라린 모양을 말하니 참혹하여 차마 들을 수 없었습니다. 왕자는 몸에 모단 도포를 입고 머리에 모관과 담비 가죽 귀마개를 갖추어 쓰고 말하기를 「나는 늘 흰옷을 입었는데 화친하려 한 뒤로 적장이 옷과 관을 마련하고 오늘 입으라 권하였다. 굳이 사양하니 성내어 『그대는 누추한 옷을 입어 내가 박대한다는 뜻을 오는 사신에게 보이려 하는가』 하고 억지로 낯을 씻고 갈아입게 하였다」 하였습니다.
또 임해군이 관을 들어 이마를 드러내고 헌데 자국을 가리키며 「올라올 때 도중에 몽둥이를 들고 마구 때려 다쳐 터진 자리다」 하였습니다. 황정욱도 「내가 전국보 있는 곳을 안다고 여겼는데 가리켜 보이지 않는다 하여 길에서 수없이 때려 거의 죽었다가 살아났다」 하였습니다. 이영은 「나는 적을 꾸짖고 굽히지 않아 두세 번 죽이려다 그쳤다. 모진 목숨이 죽지 않았으니 나라를 욕되게 한 부끄러움을 어찌 차마 말하겠는가」 하였습니다.
두 왕자가 사사로운 편지를 쓰려고 먼저 방 안에 들어갔는데 부인도 함께 여기 있다 합니다. 밤이 깊어 적장이 비로소 돌아오니 저는 따라온 왜인과 함께 다른 곳에서 잤습니다. 이튿날 밥을 먹은 뒤에, 명나라 장수에게 부쳐 올리는 글과 두 왕자의 답서, 아울러 황정욱 등이 행재소 앞으로 쓴 신하 신(臣) 자가 전혀 없는 긴 종이 글 한 통을 주기에, 안탁과 따라온 왜인들과 함께 돌아 나왔습니다」 하였습니다.
그 이신충이 가지고 온 글은 도체찰사에게 모두 봉하여 보냈습니다.
열닷샛날 사시에 앞서 말한 장세 등이 다시 적장의 글과 두 왕자의 편지를 지니고 나왔습니다. 묻고 답하는 사이에 명나라 장수 심 유격(沈遊擊)·주 유격(周遊擊)·사 상공(謝相公) 세 장수가 그 가정 스물세 사람을 거느리고 배를 타 곧바로 신들이 배를 댄 곳으로 왔습니다. 왜적들이 누런 일산을 바라보고 명나라 장수가 이른 줄 알았습니다.
이신충이 답서를 전해 주려고 뭍에 내릴 때, 왜적들이 이신충이 몸소 들어가 명나라 장수가 온 까닭을 그 장수에게 낯대고 알리게 하므로 이신충이 그 말대로 들어갔습니다. 신시에 이신충이 왜의 글을 지니고 돌아 나오니, 명나라 장수가 그가 돌아오는 것을 바라보고 재촉하여 불러 보게 하였습니다.
왕자가 살쪘는지 여위었는지 물으니 「몹시 야위어 뼈만 남았습니다」 답하였습니다. 또 적중의 꼴과 양식이 어떠한지 물으니 「양식의 많고 적음은 알 수 없으나 다만 그 무리를 보니 자못 굶주린 빛이 있어 양식이 모자람을 알 만합니다. 말은 다만 썩은 풀을 먹어 야윈 뼈가 앙상하고 죽은 말을 길에 버린 것이 없는 데가 없으니 꼴이 없음을 알 만합니다」 하였습니다. 또 적병이 얼마나 되는지 물으니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대개 드나드는 왜인을 보면 모두 지치고 시들어 날래지 못하니 꺾인 줄 알 만합니다」 하였습니다.
명나라 장수가 「다 알았다」 하고 통사 김선경(金善慶)을 시켜 적에게 말을 전하기를 「우리는 다만 평행장(平行長)이 있다고만 들었고 청정이 있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다. 이제 비로소 네가 실로 왕자를 얻은 자임을 알았다. 그렇다면 빨리 우리에게 글을 통할 만하다. 우리는 천자의 명을 받아 대장군이 되었으니 지난날 안변에 갔던 풍숙굉(馮淑紘)처럼 벼슬이 낮은 자에 견줄 바가 아니다」 하여 타일러 들여보냈습니다. 명나라 장수는 그대로 배 안에서 잤습니다.
그날 진시에 명나라 장수가 뿔피리를 불어 배를 가게 하니, 신들이 수군을 거느리고 한꺼번에 따라가 서강에 이르렀습니다. 왜적의 말 탄 자와 걷는 자가 전처럼 늘어서서 바라보았습니다. 오시에 적장 평행장과 현소(玄蘇)·세준(世俊) 등이 나왔습니다. 명나라 장수는 뭍에 내리지 않고 통사와 가정을 시켜 말을 전하고 또 글로 주고받았는데, 그사이 비밀한 뜻은 자세히 알 수 없었습니다.
또 청정이 부린 왜인 삼십여 명이 앞서 말한 안탁 등과 함께 나왔습니다. 명나라 장수가 또 답서를 써서 청정에게 부쳐 보냈는데 모두 비밀히 한 까닭에 참여해 보지 못하였습니다. 명나라 장수가 그대로 서강에 배를 대니, 신은 정걸·이빈과 함께 수군을 거느리고 명나라 장수를 호위하며 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