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11 진사록

군사들의 군공을 논하여 상 주기를 청하다軍人等軍功論賞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319자 · 낭독 2.7분

징비록 권11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臣近觀京畿及各處官軍義兵太半潰散其幸未散者亦緣飢餓無食不能成軍故不復以捕賊爲心極爲可痛且以自前軍功或不趁時施行因多缺望之心臣悶其如此自近日凡有軍功者卽時成給考功帖書某年某月某日某人斬賊幾級後日憑考論賞云云而著署踏印給之軍心頗爲喜悅不無激勸之意矣高陽有義兵將宣傳官李山輝者所率之軍亦以無食散去已久臣招來少資軍糧數石使之伏兵於龍山等處連有斬獲如山輝者各別論賞以勸其餘宜當各處軍人所奪倭物除不得已上送憑驗表表之物外其餘牛馬衣服等物則使之卽給其人蓋軍食不敷旣不能散給官輝則惟此一事可以少慰其心俾無潰散之患矣高彥伯軍人盧松前後捕斬賊首甚多近日率軍百餘人出入於京城內外每戰先登勇膽出人臣成給空名奉事告身其後戰功尤著。朝廷亦量宜行賞使之激勸勸興起恐或無妨

신이 요사이 보건대 경기와 여러 곳의 관군과 의병이 태반이나 무너져 흩어졌습니다. 다행히 흩어지지 않은 자도 굶주려 먹을 것이 없어 군사를 이루지 못하니, 다시는 적 잡는 데 마음을 두지 않아 몹시 애통합니다. 또 전부터 군공을 더러 때맞추어 시행하지 않은 까닭에 서운해하는 마음이 많습니다.

신이 그와 같음을 딱하게 여겨 요사이부터는 무릇 군공이 있는 자에게 곧바로 공을 헤아리는 문서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무 해 아무 달 아무 날 아무개가 적의 머리 몇을 베었으니 뒷날 이를 상고하여 상을 논한다고 써서, 서명하고 도장을 찍어 주었습니다. 군사의 마음이 자못 기뻐하니 북돋아 권하는 뜻이 없지 않습니다.

고양에 의병장 선전관 이산휘(李山輝)라는 자가 있는데 거느린 군사도 먹을 것이 없어 흩어져 간 지 이미 오래입니다. 신이 불러와 군량 몇 석을 조금 대주고 용산 등지에 군사를 숨겨 두게 하니 잇달아 베고 사로잡음이 있었습니다. 이산휘 같은 자는 각별히 상을 논하여 그 나머지를 권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여러 곳 군사가 빼앗은 왜의 물건은, 부득이 올려 보내어 증거로 삼을 드러난 물건 외에 그 나머지 소·말·옷 따위는 곧 그 사람에게 주게 하소서. 대개 군량이 넉넉지 않아 이미 나누어 줄 수 없으니, 오직 이 한 가지 일로 그 마음을 조금 위로하여 무너져 흩어지는 근심이 없게 할 만합니다.

고언백(高彥伯)의 군사 노송(盧松)은 앞뒤로 적의 머리를 잡아 벤 것이 매우 많습니다. 요사이 군사 백여 명을 거느리고 서울 안팎을 드나들며 싸울 때마다 먼저 오르니 날램과 담이 남보다 뛰어납니다. 신이 이름을 비워 둔 봉사 임명장을 만들어 주었는데 그 뒤로 싸움의 공이 더욱 드러났으니, 조정에서도 마땅함을 헤아려 상을 행하여 북돋아 일으키게 하여도 혹 해롭지 않을 듯합니다.

협주 1

癸巳三月十九日在東坡

계사년 삼월 열아흐레, 동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