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11 진사록

심 유격이 적중에서 나온 일을 아뢰는 장계沈遊擊自賊中出來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621자 · 낭독 5.4분

징비록 권11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昨日金至貴及本國通事金善慶等自龍山舟師到此沈遊擊則取道江華直向開城又有吳宗道者亦自龍山馳過皆云向宋經略所在處查總兵以沈遊擎不來見已而去責怒不已且謂譯官張翰等曰沈遊擊所爲我全不知之此意須言於體察使云云臣問善慶以遊擊所爲則云到船招平行長與言而淸正亦欲相見講和遊擊不肯因以書字往來問答而秘不得見但聞遊擊欲取禀於宋爺而定行長問還期則遊擊以來月初八日爲限而還云又據京畿水使李蘋馳報謄書周弘謨上提督書一紙其爲講解似非虛語前日。下送榜文都元帥金命元則欲卽入送于城中而臣意沈遊擊方在其處萬一此書傳於賊中如淸正者出示遊擊責其與行長等私約則恐天將大有慍怒而事有難處且此榜文大書踏印亦恐賊疑其行間而不爲深信則反致敗事故姑未發送觀勢處置計料臣自。天兵退去之後與都元帥金命元相議約束於諸將使丁傑李蘋金千鎰等以舟師橫截於江口夜間乘潮以各陣所造龜船載火炮攻破漢江浮橋使不得恣意往來而又令義兵將李山輝朴惟仁及秋義使禹性傳精抄軍人三江高陽等處詳知地形之人細探賊勢然後欲圖龍山先破倉糓屯守之賊則餘賊自衰雖未知果能成事與否而諸陣則皆受指揮方謀進取適又有沈遊擊往來之事軍心日解極爲痛悶且自今日至來月初八日中間更有二十日其間各處軍馬坐食之費亦無紀限而春盡夏來此後變故又安可預料臣晝夜憂慮不勝悶迫之至數日前得於道路聞全羅水使李舜臣邀擊出來倭船於釜山亂近處又爲勝捷多奪賊船軍糧云公文未到時未知虛實而此言果實則賊方運糧於其處兇謀所在實爲叵測而我國舟師適又撞破以挫其勢其幸實大緣係軍機先以所聞幷達

어제 김지귀(金至貴)와 우리나라 통사 김선경(金善慶) 등이 용산의 수군 진에서 이곳에 이르렀습니다. 심 유격(沈遊擊)은 강화로 길을 잡아 바로 개성으로 향하였고, 오종도(吳宗道)라는 자도 용산에서 말을 달려 지나갔는데, 모두 송 경략(宋經略)이 있는 곳으로 간다고 하였습니다. 사 총병(査總兵)은 심 유격이 와서 보지도 않고 그대로 가 버린 것을 두고 꾸짖고 노여워하기를 그치지 않았으며, 역관 장한(張翰) 등에게 이르기를 「심 유격이 하는 일은 내가 전혀 알지 못한다. 이 뜻을 반드시 체찰사에게 말하라」 하였습니다.

신이 김선경에게 유격이 한 일을 물으니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배에 이르러 평행장(平行長)을 불러 말하였고, 청정(淸正)도 서로 만나 화친을 말하고자 하였으나 유격이 들어주지 않았으며, 그리하여 글로 오가며 묻고 답하였는데 숨기어 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유격이 송 대인(宋爺)에게 여쭈어 정하려 한다고 들었으며, 행장이 돌아올 기약을 묻자 유격은 다음 달 초여드렛날로 한을 삼고 돌아갔다 합니다.

또 경기수사 이빈(李蘋)이 말을 달려 알린 바에 따라 주홍모(周弘謨)가 제독에게 올린 글 한 장을 베껴 올려 보냅니다. 화친을 이루려는 것이 빈말은 아닌 듯합니다.

앞서 내려보내신 방문(榜文)을 도원수 김명원(金命元)은 곧 성 안으로 들여보내려 하였으나, 신의 생각으로는 심 유격이 바야흐로 그곳에 있으니 만일 이 글이 적중에 전해져 청정 같은 자가 유격에게 내보이며 행장 등과 사사로이 약속한 것을 꾸짖는다면, 명나라 장수가 크게 노여워하여 일이 처리하기 어려워질까 두렵습니다. 또 이 방문은 큰 글씨로 쓰고 도장을 찍었으니, 적이 이를 사이를 벌리려는 것으로 의심하여 깊이 믿지 않는다면 도리어 일을 그르치게 될까 두렵습니다. 그러므로 아직 보내지 않고 형세를 보아 처리할 생각입니다.

신은 명나라 군사가 물러간 뒤로 도원수 김명원과 서로 의논하여 여러 장수에게 약속하였습니다. 정걸(丁傑)·이빈·김천일(金千鎰) 등으로 하여금 수군으로 강어귀를 가로막게 하고, 밤중에 물때를 타서 각 진에서 지은 거북선에 화포를 실어 한강의 배다리를 쳐부수어 적이 마음대로 오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또 의병장 이산휘(李山輝)·박유인(朴惟仁)과 추의사 우성전(禹性傳)에게 군사를 가려 뽑게 하고, 삼강(三江)·고양(高陽) 등지의 지형을 자세히 아는 사람으로 적의 형세를 세밀히 살피게 한 뒤에 용산을 도모하여 창고의 곡식을 두고 지키는 적을 먼저 깨뜨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면 남은 적은 스스로 쇠할 것입니다.

과연 일을 이룰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으나 여러 진이 모두 지휘를 받아 바야흐로 나아가 취하기를 꾀하였는데, 마침 또 심 유격이 오가는 일이 있어 군사들의 마음이 날로 풀어지니 몹시 애가 탑니다. 또 오늘부터 다음 달 초여드렛날까지 그 사이에 다시 스무 날이 있으니, 그동안 각처 군마가 앉아서 먹는 비용도 한이 없고, 봄이 다하고 여름이 오면 이 뒤의 변고를 또 어찌 미리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신은 밤낮으로 근심하여 답답하고 절박함을 이기지 못합니다.

며칠 전 길에서 얻어 들으니, 전라수사 이순신(李舜臣)이 부산(釜山) 근처에 나온 왜선을 맞아 쳐서 또 이겼으며 적의 배와 군량을 많이 빼앗았다고 합니다. 공문이 이르지 않아 아직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으나, 이 말이 과연 참이라면 적이 바야흐로 그곳으로 군량을 옮기는 것이니 흉악한 꾀가 어디 있는지 실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수군이 마침 또 들이쳐 깨뜨려 그 형세를 꺾었으니 그 다행함이 실로 큽니다. 군사 기밀에 관계되는 일이므로 먼저 들은 바를 아울러 아룁니다.

협주 1

同日

같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