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11 진사록

선유관 이귀가 곡식을 모은 사연과, 이귀를 우선 종사관으로 머물러 두는 일을 아뢰는 장계馳。啓宣諭官李貴募粟辭緣及姑留李貴爲從事官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243자 · 낭독 1.9분

징비록 권11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宣諭官李貴牒呈內卑職去年十二月承宣諭之。命及道關據持空名帖往黃海江原等道曉諭民間收合升斗以助軍需納粟人等成册上使事牒呈當初李貴以國事方急隨力扶助之意出入民間周遍曉諭零𤨏收合所得雜糓三百六十六石除已輸到開城府爲。天兵糧餉外其餘則添補於我國軍餉俾免數日飢餓之患矣向前李貴於。天兵來駐開城之後各處糧草未及之際臣馳送于安峽伊川平康遂安等處運米豆三百餘石細折草三百餘石長草五千六百束來到以補其不足此後別無宣諭之事而臣所率從事官只一人凡千分遣檢督之際常患無人李貴姑留臣處稱爲從事官使之往來各處看檢糧草等事矣

선유관 이귀(李貴)의 첩정에 이렇게 있었습니다. 「저는 지난해 십이월에 선유하라는 명과 도의 관문(關文)에 따라 이름을 비워 둔 임명장을 가지고 황해·강원 등 도에 가서 민간에 깨우쳐 알려 되와 말을 거두어 모아 군수를 돕고, 곡식을 바친 사람들을 책으로 만들어 올리게 하였습니다.」

애초에 이귀는 나라 일이 바야흐로 급하니 힘을 따라 도와야 한다는 뜻으로 민간에 드나들며 두루 깨우쳐 알리고, 자잘하게 거두어 모아 잡곡 삼백육십육 석을 얻었습니다. 이미 개성부로 실어 와 명나라 군사의 양식으로 삼은 것을 빼고, 그 나머지는 우리나라 군량에 보태어 며칠 굶주리는 근심을 면하게 하였습니다.

앞서 이귀는 명나라 군사가 개성에 와서 머문 뒤 각처의 양식과 마초가 미치지 못하던 때에, 신이 안협(安峽)·이천(伊川)·평강(平康)·수안(遂安) 등지로 달려 보내어 쌀과 콩 삼백여 석, 잔 여물 삼백여 석, 긴 여물 오천육백 묶음을 옮겨 와 그 부족함을 보탰습니다.

이 뒤로는 따로 선유할 일이 없고, 신이 데리고 있는 종사관은 다만 한 사람뿐이라 온갖 일에 나누어 보내어 살피고 감독할 때에 늘 사람이 없어 걱정입니다. 이귀를 우선 신이 있는 곳에 머물러 두어 종사관이라 일컫고 각처를 오가며 양식과 마초 등의 일을 살피게 하였습니다.

협주 2

癸巳三月二十七日

계사년 삼월 스무이레

공명첩(空名帖) — 받을 사람의 이름을 비워 둔 임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