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11 진사록

정릉에 적의 변고가 생긴 일을 아뢰는 장계馳。啓靖陵賊變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411자 · 낭독 3.8분

징비록 권11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本月初八日二更提督自安城到開城府臣翌日與都元帥金命元自東坡馳來到提督下處問安則提督卽時改服出立廳上招臣等詣前行禮問慰頗致慇懃且曰沈遊擊雖在龍山倭賊狡詐豈可憑信吾自有定計願勿疑慮臣陳其進兵之意提督曰此事不可煩說吾當處置且云今已日晚明日再會商量又云南兵千餘明日當先送馬山臣等致謝而出臣又別具呈文極陳乘時討滅不可講解之意且押送城中逃來兒童二十口使之極陳近日賊勢孤弱之狀臣等旣出提督卽出牌文催促後來劉綎兵馬似是用兵之意而未可的知欲待明日更與諸臣極力祈懇適見京畿都事沈克明持左監司成泳報狀而來。宣靖陵賊禍至於此極臣子所不忍聞臣等痛心切骨求死不得卽立於提督門外相與涕泣號慟陳此賊狀提督亦加驚歎取見報來文書臣等與在此諸臣退來滿月臺前南望號慟俄而提督出牌文問我國軍兵駐箚何地明白開報以便分布臣卽於小紙書各處軍馬所在以送而臣等馳向東坡坡州欲更爲奉審以知實狀馳。啓計料此賊兇逆極天罔極之禍上及。陵寢而不能殲滅至今與賊俱生臣子之罪萬死猶輕緣由爲先馳。啓

이달 초여드렛날 이경에 제독이 안성(安城)에서 개성부에 이르렀습니다. 신은 이튿날 도원수 김명원(金命元)과 함께 동파에서 달려와 제독이 머무는 곳에 이르러 문안하니, 제독은 곧 옷을 갈아입고 나와 대청 위에 서서 신들을 불러 앞에 나아가 예를 행하게 하고 위로하여 물으며 꽤 정성스럽게 대하였습니다. 또 「심 유격(沈遊擊)이 용산에 있으나 왜적이 교활하고 간사하니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나에게 스스로 정한 계책이 있으니 의심하고 염려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신이 군사를 나아가게 하자는 뜻을 아뢰니, 제독은 「이 일은 번거롭게 말할 것이 아니다. 내가 마땅히 처리하겠다」 하였습니다. 또 「오늘은 이미 날이 저물었으니 내일 다시 모여 헤아리자」 하고, 「남쪽 군사 천여 명을 내일 먼저 마산(馬山)으로 보내겠다」 하였습니다. 신들은 고마움을 드리고 나왔으며, 신은 또 따로 정문(呈文)을 갖추어 때를 타서 쳐 없애야 하고 화친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극진히 아뢰었습니다. 또 성 안에서 도망하여 온 아이 스무 명을 압송하여 요사이 적의 형세가 외롭고 약한 실정을 극진히 아뢰게 하였습니다.

신들이 나온 뒤에 제독은 곧 패문(牌文)을 내어 뒤에 오는 유정(劉綎)의 군마를 재촉하였으니 군사를 쓰려는 뜻인 듯하나 확실히는 알 수 없습니다. 내일을 기다려 다시 여러 신하와 함께 힘을 다하여 간절히 청하고자 하였습니다.

마침 경기도사 심극명(沈克明)이 좌감사 성영(成泳)의 보장을 가지고 온 것을 보니, 선릉(宣陵)·정릉(靖陵)의 적의 화가 이토록 극심하여 신하로서 차마 들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신들은 마음이 아프고 뼈에 사무쳐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곧 제독의 문 밖에 서서 서로 눈물 흘리고 울부짖으며 이 적의 실정을 아뢰었습니다. 제독도 놀라 탄식하며 보고해 온 문서를 가져다 보았습니다. 신들은 이곳에 있는 여러 신하와 함께 물러나 만월대(滿月臺) 앞에 와서 남쪽을 바라보며 울부짖었습니다.

이윽고 제독이 패문을 내어 우리나라 군사가 어느 땅에 머물러 있는지 밝게 알려 나누어 배치하기 편하게 하라고 물었습니다. 신은 곧 작은 종이에 각처 군마가 있는 곳을 써서 보냈고, 신들은 동파와 파주로 달려가 다시 받들어 살펴 실상을 알아 말을 달려 아뢸 생각입니다.

이 적의 흉악하고 거스름이 하늘에 사무치고, 그 끝없는 화가 위로 능침(陵寢)에까지 미쳤는데도 무찔러 없애지 못하고 지금까지 적과 함께 살아 있으니 신하의 죄는 만 번 죽어도 오히려 가볍습니다. 연유를 먼저 말을 달려 아룁니다.

협주 1

四月九日

사월 아흐렛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