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11 진사록

이긴 소식을 아뢰는 장계馳。啓捷報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256자 · 낭독 2.3분

징비록 권11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近日京城東西捕賊形止必具於都元帥狀。啓矣本月初九日高彥伯伏兵軍官李克一盧松白雲世等率軍二百餘名幷朴名賢體探軍七人遇賊於東小門外沙閑里賊兵幾二千餘我軍突出交戰賊奔潰高彥伯軍人所斬十七級朴名賢軍斬一級賊中矢顚仆者不計其數將大捷而軍士飢困已甚不能馳逐而還俄而賊衆從後大至若如前圍抱則我軍飢甚幾不能自脫而賊望見不敢前進故得無事還陣亦無一人死傷極爲喜幸惟是軍糧不敷只以天兵糧或田米或水濕腐杇之米日給人一升七合軍士受糧之後亦與其妻子飢餓者分食故終日僅食米半升而猶不能給菜色滿面氣力全無雖有奮勇討賊之心而其路無由極爲痛迫罔知所處

요사이 서울 동서에서 적을 잡은 형편은 반드시 도원수의 장계에 갖추어져 있을 것입니다. 이달 초아흐렛날 고언백(高彥伯)의 복병 군관 이극일(李克一)·노송(盧松)·백운세(白雲世) 등이 군사 이백여 명과 박명현(朴名賢)의 체탐군 일곱 사람을 아울러 이끌고 동소문 밖 사한리(沙閑里)에서 적을 만났습니다. 적병이 거의 이천여 명이었는데 우리 군사가 갑자기 나가 맞붙어 싸우니 적이 달아나 무너졌습니다. 고언백의 군사가 베인 것이 열일곱 급이요 박명현의 군사가 한 급을 베었으며, 적이 화살에 맞아 엎어진 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크게 이길 만하였으나 군사가 굶주리고 지친 것이 이미 심하여 달려 쫓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이윽고 적의 무리가 뒤에서 크게 이르렀는데, 만일 앞서처럼 에워쌌다면 우리 군사는 굶주림이 심하여 거의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적이 바라보고 감히 앞으로 나아오지 못하였으므로 무사히 진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또 한 사람도 죽거나 상한 이가 없으니 몹시 기쁘고 다행합니다.

오직 군량이 넉넉하지 않아 다만 명나라 군사의 양식 가운데 더러 밭쌀이나 더러 물에 젖어 썩은 쌀로 날마다 한 사람에게 한 되 일곱 홉을 줍니다. 군사가 양식을 받은 뒤에 또 굶주린 그 아내와 자식과 나누어 먹으므로 온 하루 겨우 쌀 반 되를 먹으면서도 오히려 넉넉히 주지 못합니다. 굶주린 낯빛이 얼굴에 가득하고 기력이 전혀 없으니, 용맹을 떨쳐 적을 치려는 마음이 있어도 그 길이 없어 몹시 아프고 절박하여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합니다.

협주 1

四月十二日

사월 열이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