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11 진사록

이기빈을 법대로 죄주기를 청하는 장계請李箕賓依律定罪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526자 · 낭독 4.5분

징비록 권11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臣於本月初九日夜因京畿左監司成泳所報。宣靖陵賊變不勝痛哭之至卽勵到坡州與金命元等相議遣臣軍官李弘國率自募軍十名由楊州取路進去奉審而。獻陵亦與賊陣所在切近亦未知如何幷令奉審來告事馳送矣廣州一邑自前年邊彥琇敗軍之後人民散盡守令奔竄已爲空虛之地今此。陵寢之變不知出於何時臣前者約束諸將使之各守其處把截勦捕廣州牧使李箕賓則令率廣州龍仁軍及召募官金琢俞大進之軍與利川府使邊應星相倚在賊路之左勦擊沙坪院穿峴金嶺等處之賊又令金浦通津果川衿川等處之軍別爲定將與箕賓相對合力互相挾擊事再三丁寧申勅矣其後助防將邊應星連次馳報內李箕賓遠在南陽水原之境臣極爲駭愕而未省其故其後李箕賓牒報內因左監司成泳節制與俞沃同在南陽云此不過避亂趨歇要遠賊路棄其官守寄在他處無意討賊而事急則將浮海入于江華情狀極爲痛心若使箕賓仍在其處紏合軍兵多般瞭望設伏逐日力戰如往日高彥伯奉護康泰陵之事則。君親泉壤之禍庶或可救而畏死巧避全付賊手使變故至此其爲罪狀死固難贖大扺近來紀律渙散號令多門弊習已痼極難整頓左監司成泳近來處事大段疎濶無以收拾一方臣前者已陳此意而。朝廷尙不處置若箕賓之事又果出於成泳節制則其爲顚錯益甚矣李箕賓則臣已令捉來欲爲究問按法若。陵寢之變出於箕賓赴任之後則其罪益重似當事鞫依律以警人臣不急。君父之罪

신은 이달 초아흐렛날 밤 경기 좌감사 성영(成泳)이 알려 온 것으로 선릉(宣陵)과 정릉(靖陵)이 적에게 헐린 변고를 듣고 통곡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곧 파주로 달려가 김명원(金命元) 등과 의논하고, 신의 군관 이홍국(李弘國)에게 스스로 모은 군사 열 명을 이끌고 양주로 길을 잡아 나아가 살펴보게 하였습니다. 헌릉(獻陵) 또한 적진이 있는 곳과 몹시 가까워 어떠한지 알 수 없으므로 아울러 살펴보고 와서 알리게 하여 달려 보냈습니다.

광주(廣州) 한 고을은 지난해 변언수(邊彥琇)가 군사를 잃은 뒤로 백성이 다 흩어지고 수령이 달아나 숨어 이미 텅 빈 땅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에 능이 헐린 일이 어느 때에 일어났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신은 앞서 여러 장수를 단속하여 저마다 제 자리를 지켜 길을 막고 적을 치게 하였습니다. 광주 목사 이기빈(李箕賓)에게는 광주와 용인의 군사와 소모관 김탁(金琢)·유대진(俞大進)의 군사를 이끌고 이천 부사 변응성(邊應星)과 서로 의지하여 적의 길 왼편에 있으면서 사평원(沙坪院)·천현(穿峴)·금령(金嶺) 등지의 적을 치게 하였습니다. 또 김포·통진·과천·금천 등지의 군사에게는 따로 장수를 정하여 이기빈과 마주하여 힘을 합쳐 서로 끼고 치게 하라고 두세 번 거듭 단단히 일렀습니다.

그 뒤 조방장 변응성이 잇달아 달려 알린 것에 「이기빈은 멀리 남양과 수원 지경에 있습니다」 하였으니, 신은 몹시 놀랐으면서도 그 까닭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 뒤 이기빈이 문서로 알리기를 「좌감사 성영의 지휘를 따라 유옥(俞沃)과 함께 남양에 있습니다」 하였습니다. 이는 난리를 피하여 편한 곳으로 나아가 적의 길에서 멀기를 바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 벼슬자리를 버리고 다른 곳에 붙어 있어 적을 칠 뜻이 없고, 일이 급해지면 바다에 떠서 강화로 들어가려는 것이니 그 하는 짓(情狀)이 몹시 아픕니다.

만일 이기빈이 그대로 제자리에 있으면서 군사를 모으고 여러 가지로 망을 보며 복병을 두어 날마다 힘껏 싸우기를 지난날 고언백(高彥伯)이 강릉(康陵)과 태릉(泰陵)을 받들어 지킨 일처럼 하였더라면, 임금과 어버이가 묻히신 곳에 미친 화를 거의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죽기를 두려워하여 교묘히 피하고 적의 손에 온통 맡겨 변고가 이 지경에 이르게 하였으니, 그 죄상은 죽어도 진실로 씻기 어렵습니다.

대체로 요사이 기강이 흩어지고 호령이 여러 갈래로 나와 폐단이 이미 고질이 되어 바로잡기가 몹시 어렵습니다. 좌감사 성영은 요사이 일을 처리함이 크게 엉성하여 한 도를 거두어 잡지 못합니다. 신이 앞서 이미 이 뜻을 아뢰었으나 조정에서 아직 처치하지 않았는데, 이기빈의 일이 또 과연 성영의 지휘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 어그러짐이 더욱 심합니다.

이기빈은 신이 이미 잡아 오게 하여 따져 묻고 법대로 다스리려 합니다. 만일 능이 헐린 변고가 이기빈이 부임한 뒤에 일어난 것이라면 그 죄가 더욱 무거우니, 마땅히 국문하여 법대로 하여 임금과 어버이의 일을 급히 여기지 않는 신하의 죄를 경계해야 할 듯합니다.

협주 3

同日

같은 날

저본은 勵이나 馳의 잘못으로 봄

저본은 紏이나 糾의 잘못으로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