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참장이 적진에 들어간 까닭과 경상도에 왜적이 더 온 것을 아뢰는 장계馳。啓周參將往入賊陣緣由及慶尙道倭賊添來狀
臣昨日往坡州與權慄約束軍事日暮有周叅將弘謨旗牌朱朝元率三百餘人以皷吹前導而至臣令從事官柳熙緒李貴等問安且問去處則答以欲向京城迎來。王子及被擄諸臣云俄而令擺撥兒宋後漢出語云旗牌至此陪臣須入扣頭行禮臣答以旗牌扣頭所不敢辭但此乃往于倭營之旗牌生等何須先爲扣頭且倭賊有不共戴天之讎本國則萬無許和之理尤不可扣頭承命叅將大怒促之不已臣終不入則因又山示經略牌文其中一款云朝鮮國與倭賊固爲不共戴天然今已乞貢請降姑且聽候本部報復啓釁者斬云臣等不勝痛惋語之曰觀此牌文是欲我兵不殺倭賊寧有是理尤不可承命反覆爭辨終不叩頭而退又爲呈文於提督則每以軍機難泄勿爲焦心等語慰解且推托於經略其爲痛迫不可形言大槪沈遊擊入賊中而不還者今已六七日其事極爲荒唐而凡百擧措全不使我人聞知以此其間曲折不得與聞賊謀難測遲延時月狼狽日甚雖提督向臣等所言如此而亦難可憑卽刻慶尙左監司韓孝純四月初三日成貼牒星内近日東萊釜山賊勢比前大異前則往來之船多不過三四十隻今則不知其數來泊者至於再次賊情所在極爲叵測云賊兵添來之言雖不可知其虛實而時方風和兇賊逞計萬端豈無此憂所當登時急擊以奪其氣而。天將處置雜出於和戰之計屢失機會尤爲痛心近日分遣精兵方圖龍山等處之賊且遣別軍于漢江以南頗有斬獲而龍山則因沈游擊方在其處諸將未敢輕易下手今見牌文辭緣益深痛惋
신은 어제 파주로 가서 권율(權慄)과 군사 일을 약속하였습니다. 날이 저물 무렵 참장 주홍모(周弘謨)의 기패(旗牌)를 받든 주조원(朱朝元)이 삼백여 사람을 이끌고 북과 피리를 앞세우고 이르렀습니다. 신이 종사관 유희서(柳熙緒)·이귀(李貴) 등을 시켜 문안하고 또 가는 곳을 물으니 「서울로 가서 왕자와 사로잡힌 여러 신하를 맞아 오려 한다」 하였습니다.
이윽고 파발꾼 송후한(宋後漢)을 내보내어 말하기를 「기패가 여기에 이르렀으니 그대 나라 신하는 들어와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려야 한다」 하였습니다. 신이 답하기를 「기패에 머리를 조아리는 것은 감히 마다할 바가 아닙니다. 다만 이는 왜적의 진으로 가는 기패이니 저희가 어찌 먼저 머리를 조아리겠습니까. 게다가 왜적은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원수요 우리나라는 화친을 허락할 까닭이 만에 하나도 없으니 더욱 머리를 조아려 명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였습니다.
참장이 크게 노하여 재촉하기를 그치지 않았으나 신이 끝내 들어가지 않으니, 이어 또 경략의 패문(牌文)을 내어 보였습니다. 그 가운데 한 조목에 이르기를 「조선국이 왜적과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음은 진실로 그러하다. 그러나 이제 이미 조공을 빌고 항복을 청하였으니 아직은 본부의 회보를 기다리라. 먼저 틈을 여는 자는 베겠다」 하였습니다. 신들은 아프고 한스러움을 이기지 못하여 말하기를 「이 패문을 보니 우리 군사로 하여금 왜적을 죽이지 말라는 것인데 어찌 이런 이치가 있겠습니까. 더욱 명을 받들 수 없습니다」 하고, 거듭 다투어 따지다가 끝내 머리를 조아리지 않고 물러났습니다.
또 제독에게 글을 올렸더니 늘 「군사 기밀은 새어 나가게 하기 어려우니 애태우지 말라」는 따위 말로 달래고 또 경략에게 미루니, 그 아프고 절박함을 말로 나타낼 수 없습니다.
대개 심 유격(沈遊擊)이 적 가운데 들어가 돌아오지 않은 것이 이제 벌써 예니레입니다. 그 일이 몹시 황당한데도 온갖 거조를 우리 사람에게 전혀 알리지 않으니, 이 때문에 그 사이의 곡절을 얻어듣지 못합니다. 적의 꾀는 헤아리기 어렵고 세월만 끌어 낭패가 날로 심하니, 비록 제독이 신들에게 말한 것이 이러하나 또한 믿기 어렵습니다.
방금 경상 좌감사 한효순(韓孝純)이 사월 초사흗날 도장을 찍어 올린 첩정에 「요사이 동래와 부산의 적 형세가 앞서와 크게 다릅니다. 앞서는 오가는 배가 많아야 서른에서 마흔 척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 수를 알 수 없고 와서 대는 것이 두 차례에 이르렀으니, 적의 속내가 몹시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하였습니다.
적병이 더 온다는 말은 비록 그 허실을 알 수 없으나, 바야흐로 바람이 순한 철이라 흉한 적이 온갖 꾀를 부리니 어찌 이런 걱정이 없겠습니까. 마땅히 때맞추어 급히 쳐서 그 기운을 빼앗아야 할 것이나, 명나라 장수의 처치가 화친과 싸움 사이에서 이리저리 나와 기회를 여러 번 놓쳤으니 더욱 아픕니다.
요사이 날랜 군사를 나누어 보내어 바야흐로 용산 등지의 적을 꾀하고, 또 따로 군사를 한강 남쪽으로 보내어 자못 베어 얻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용산은 심 유격이 바야흐로 그곳에 있으므로 여러 장수가 감히 가볍게 손을 대지 못합니다. 이제 패문의 사연을 보니 더욱 깊이 아프고 한스럽습니다.
협주 5
同日
같은 날
저본은 山이나 出의 잘못으로 봄
저본은 星이나 呈의 잘못으로 봄
저본은 陪臣 — 천자 앞에서 제후국 신하가 스스로를 이르는 말
기패(旗牌) — 명나라 군중에서 군령을 전할 때 쓰던 기와 패다. 황제의 명을 대신하는 것이라 이에 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