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되고 날랜 사람을 모아 정릉에 모신 것을 옮겨 모실 일을 아뢰는 장계馳。啓募得忠勇人移安。靖陵襚扆狀
本月初十日令臣軍官守門將李弘國率自募牙兵十名奉審。宣靖陵及獻陵矣十五日弘國還來手本內道傳令據率牙兵禮賓寺奴朴麟衛將所奴李大成司畜署奴尹孝閔奉常寺奴金檢興私奴張許弄議政府奴李千福馬山驛奴李許弄良人千守西學奴金業龍私奴李金等十名由坡州蟹踰嶺過楊州邑內十二日夕到秃任乘小船沿江流下三更到楮子島無等嚴下舟入。靖陵則隧道掘取處深布帛尺十五尺許廣七尺許弘國與李大成尹孝閔下入坎中夜暗不能詳視以手探審則。襚扆似若移在於玄宮外掘土壙中無他別物隧內瓦礫積置奉審後還出。陵近處衣服片片腐𣏓棄置觸手破碎一一收拾埋置于秃任里以憑後考又自。靖陵詣。宣陵奉審則。大王陵隧道前掘取處深七尺許廣五尺許坎中別無他物隧內築灰外設薄板幾盡火燒餘存只有數片。王后陵隧道前掘取處深六尺許廣四尺許板子亦爲火燒灰隔則仍存。兩位陵則幷不犯玄宮。獻陵則夜已將曙賊陣至近未及奉審而來云禍變至此臣子所不忍言五內崩裂罔知所措臣與都元帥金命元巡察使權慄相議或言仍爲奉安於外榟宮以土塞穴徐待事定爲便或言竊負以出從船路移安於水上楊根等地稍遠賊禍爲宜臣等以此兩條反覆詳量賊兵時方留在沙坪及奉恩寺等處而三田渡箭串之間逐日出沒或奉遷之際短夜易明中路遇賊則其爲變故尤不可言故謹令權慄營中略備精潔新衾油芚等物欲乘夜入送但賊陣距。陵所至近必得勇銳之士忠敢之人然後可以冒死入去臣等又涕泣訪問則有倡義使中衛將朴惟仁臣軍官前萬戶金克忠等應募請行幷前去李弘國及牙兵十名又加得自募之人發送計料但此事極重所當先禀。朝廷處置而玄宮暴露一二日之間父不知更有何事不得已先令朴惟仁等入去更爲奉審十分觀勢處置矣臣聞此變故心精散亂扣地號天荒亂之中恐致錯誤尤不勝悶泊之至。朝廷急速善處
이달 초열흘날 신의 군관 수문장 이홍국(李弘國)에게 스스로 모은 군사(牙兵) 열 명을 이끌고 선릉·정릉과 헌릉을 살펴보게 하였습니다. 열닷샛날 이홍국이 돌아와 손수 적어 올린 글은 이러하였습니다.
「전령을 따라 군사 열 사람, 곧 예빈시 종 박린(朴麟), 위장소 종 이대성(李大成), 사축서 종 윤효민(尹孝閔), 봉상시 종 김검흥(金檢興), 사삿집 종 장허롱(張許弄), 의정부 종 이천복(李千福), 마산역 종 이허롱(李許弄), 양인 천수(千守), 서학 종 김업룡(金業龍), 사삿집 종 이금(李金)을 이끌고 파주 해유령을 거쳐 양주 고을 안을 지나 열이튿날 저녁 독임(秃任)에 이르렀습니다. 작은 배를 타고 강을 따라 내려가 삼경에 저자도 무등바위 아래에 이르렀고, 배를 대고 정릉에 들어가 보니 무덤길을 파낸 자리가 깊이 열다섯 자 남짓, 너비 일곱 자 남짓이었습니다.
저는 이대성·윤효민과 함께 구덩이 안으로 내려갔는데 밤이 어두워 자세히 볼 수 없어 손으로 더듬어 살폈습니다. 안에 모셨던 것이 현궁(玄宮) 밖으로 파낸 흙구덩이 안에 옮겨져 있는 듯하였고 다른 물건은 없었으며, 무덤길 안에는 기와 조각이 쌓여 있었습니다. 살펴본 뒤에 도로 나왔습니다.
능 가까운 곳에 옷가지가 조각조각 썩은 채 버려져 있었는데 손이 닿으면 바스러졌습니다. 하나하나 거두어 독임리에 묻어 두어 뒷날의 상고에 대비하였습니다.
또 정릉에서 선릉으로 나아가 살펴보니, 대왕의 능은 무덤길 앞을 파낸 자리가 깊이 일곱 자 남짓 너비 다섯 자 남짓이요 구덩이 안에 별다른 물건이 없었으며, 무덤길 안에 회를 다진 바깥에 두었던 얇은 널은 거의 다 불타고 남은 것이 몇 조각뿐이었습니다. 왕후의 능은 무덤길 앞을 파낸 자리가 깊이 여섯 자 남짓 너비 네 자 남짓이요 널 또한 불탔으나 회로 막은 것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두 분의 능은 모두 현궁까지는 범하지 않았습니다.
헌릉은 밤이 이미 새려 하고 적진이 몹시 가까워 미처 살피지 못하고 왔습니다.」
화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신하 된 자가 차마 말할 바가 아닙니다. 오장이 무너지고 찢어져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신이 도원수 김명원(金命元), 순찰사 권율(權慄)과 의논하니, 어떤 이는 「그대로 바깥 재궁에 봉안하고 흙으로 구멍을 막아 일이 가라앉기를 천천히 기다리는 것이 편하다」 하고, 어떤 이는 「가만히 업어 내어 뱃길로 물 위쪽 양근 등지로 옮겨 모셔 적의 화에서 조금 멀리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습니다.
신들이 이 두 가지를 거듭 자세히 헤아려 보니, 적병이 바야흐로 사평과 봉은사 등지에 머물러 있으면서 삼전도와 전곶 사이에 날마다 나타났다 사라졌다 합니다. 혹 옮겨 모시는 즈음에 밤이 짧아 쉬이 밝는데 도중에 적을 만난다면 그 변고는 더욱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삼가 권율의 진중에서 정결한 새 이불과 기름 먹인 두꺼운 종이 따위를 대강 갖추어 밤을 타서 들여보내려 합니다. 다만 적진이 능이 있는 곳과 몹시 가까우니, 반드시 날래고 굳센 선비와 충성스럽고 담대한 사람을 얻은 뒤에야 죽음을 무릅쓰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신들이 또 눈물을 흘리며 널리 물으니, 창의사의 중위장 박유인(朴惟仁)과 신의 군관인 전 만호 김극충(金克忠) 등이 모집에 응하여 가기를 청하였습니다. 앞서 갔던 이홍국과 군사 열 명을 아울러 보내고, 또 스스로 모집에 응한 사람을 더 얻어 보낼 셈입니다.
다만 이 일이 지극히 무거워 마땅히 먼저 조정에 여쭈어 처치를 받아야 할 것이나, 현궁이 드러나 있어 하루 이틀 사이에 또 무슨 일이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하는 수 없이 먼저 박유인 등을 들여보내어 다시 살펴보고 형세를 십분 헤아려 처치하게 하였습니다.
신은 이 변고를 듣고 정신이 흩어져 땅을 치며 하늘에 부르짖었습니다. 어지러운 가운데 그르치는 일이 있을까 두려워 더욱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조정에서 급히 잘 처리하여 주소서.
협주 4
四月十六日
사월 열엿새
저본은 嚴이나 巖의 잘못으로 봄
저본은 父이나 又의 잘못으로 봄
저본은 腐𣏓이나 腐朽의 잘못으로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