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독이 하는 일을 아뢰는 장계馳。啓提督所爲狀
臣等前在坡州不叅旗牌事大槪已爲狀。啓其日周叅將禀帖於提督云陪臣等執迷不悟不知久遠之慮不叅旗牌恐前途有攔截之事乞老爺召諭提督見之大怒至欲依軍律治罪招接待使韓應寅等使問其狀臣等不勝未安將欲發行陳謝之際又有提督家丁馳來招臣等相見曰提督令議政留此元師則與我同往龍山命元答曰俺在此亦有所任豈可因口傳容易出去若有提督之命則必有文書願出示之其人曰別無文書提督分付如此强欲同去而命元終不敢去其人不得已獨向龍山日暮臣等同詣開城府提督門外請罪辭謝提督始怒不見臣等雨立半餉提督始爲出見令臣等升堂行禮問共緣由臣答云本國於倭賊有不共戴天之讎萬世必報之怨方欲倚賴。天兵前進殺賊不期牌文內有報復啓釁者斬生等不勝驚痛若叩頭承受則卽當傳令各處將官遵行約束更不以討賊爲心故事勢悶迫欲更禀老爺以聽裁處倉卒失於叅禮罪無所逃提督低聲答之曰此乃宋侍郞牌文不關我事牌文則何可拜受只旗牌則不可不拜臣答以失禮惶恐但與倭賊辭和之事痛心切骨故難於承受云云則提督出示經略文字指點其中數語甚有不樂之色以爲講和非我所爲此意陪臣知之因論擊賊之䇿更招接待使韓應寅李德馨與之同立言論臨出提督云宋侍郞不無聞此之理明日須略具曲折書禀帖而來臣等翌日又爲呈文力言與倭和親必陷術中沈遊擊久不還歸竊深危之當急時進兵云云則提督答云知道臣等仍辭退少坐外處提督出示宋侍郞牌文其中有前日倭將處遣使時朝鮮李判書暗設奸計不以船隻待候致令不及於初八日之限究問等語仍云經略所言如此陪臣見此則可知事不由我矣臣等還向東坡中道有持旗牌者馳到招臣驅迫之意甚於星火到靑郊驛前又有一人馳來令臣還去臣不知何事旣而接待使從事官黃沂來到得聞其由則以爲有千總一人言於提督云周弘謨向龍山時中路船隻故不整齊以防和事提督大怒以爲事出於臣急遣旗牌捉臣而來曰當痛杖四十棍撤兵還歸俄而聞其言非是重杖千總而令臣還去云大槪提督以下旣專主講解知本國人心痛憤於和議不敢直說互相推調而猶慮中間因臣等搪阻其事不成隨處發怒氣象施措全不如前日事之難處益甚於前如臣愚劣徒爲悶痛不知所出而遷延時日已到風和前頭之事又未知稅駕之所卽刻忠淸水使丁傑等馳報內謝相公周遊擊徐相公等率家丁二十名十五日辰時到黑石江先送小舟通諭于賊中至申時倭賊全不出迎但見騎馬之賊多數出來向內路。天使傳令諸船小紙書送云令倭奴不來迎接。天使無禮之甚可分付大小船盡將各項大小器藏置停當若倭奴無禮我等以火器攻之此事要緊要緊傳令事牒報倭賊凶逆至於此極痛憤切齒未知。天將更何以處之
신들이 앞서 파주에 있으면서 기패에 예를 올리지 않은 일은 대강 이미 장계로 아뢰었습니다.
그날 주 참장(周參將)이 제독에게 올린 품첩에 이르기를 「조선의 신하들이 고집에 빠져 깨닫지 못하고 먼 앞날의 염려를 알지 못하여 기패에 예를 올리지 않으니, 앞길에 가로막는 일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노야께서 불러 타이르시기를 바랍니다」 하였습니다. 제독이 이를 보고 크게 노하여 군율대로 죄주려고까지 하며 접대사 한응인(韓應寅) 등을 불러 그 사정을 묻게 하였습니다. 신들은 미안함을 이기지 못하여 곧 떠나가 사죄하려 하였습니다.
그때 또 제독의 호위 군사(家丁)가 달려와 신들을 불러 만나 보고 말하기를 「제독께서 의정은 여기 머물고 원수는 나와 함께 용산으로 가라 하십니다」 하였습니다. 김명원(金命元)이 답하기를 「내가 여기 있는 것도 맡은 바가 있으니 어찌 말로 전한 것만으로 가벼이 나가겠는가. 만일 제독의 명이 있다면 반드시 문서가 있을 것이니 내어 보이기를 바란다」 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따로 문서는 없고 제독의 분부가 이러합니다」 하고 억지로 함께 가려 하였으나 김명원이 끝내 감히 가지 않으니, 그 사람이 하는 수 없이 혼자 용산으로 갔습니다.
날이 저물어 신들이 함께 개성부 제독의 문 밖에 나아가 죄를 청하고 사죄하니, 제독이 처음에는 노하여 보지 않았습니다. 신들이 빗속에 반나절을 서 있으니 제독이 그제야 나와 보고 신들을 마루에 오르게 하여 예를 올리게 하고 그 까닭을 물었습니다.
신이 답하기를 「우리나라는 왜적에게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원수요 만대에 반드시 갚아야 할 원한이 있습니다. 바야흐로 명나라 군사에 의지하여 앞으로 나아가 적을 죽이려 하였는데, 뜻밖에 패문 안에 「아직은 본부의 회보를 기다리라. 먼저 틈을 여는 자는 벤다」는 말이 있어 저희는 놀라고 아픔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만일 머리를 조아려 받든다면 곧 여러 곳 장수에게 전령하여 그 약속을 좇아 행하게 되어 다시는 적을 칠 마음을 두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세가 답답하고 절박하여 다시 노야께 여쭈어 재처를 듣고자 하였고, 창졸간에 예에 참례하지 못하였으니 죄를 벗을 곳이 없습니다」 하였습니다.
제독이 낮은 소리로 답하기를 「이는 송 시랑(宋侍郞)의 패문이요 내 일과는 상관없다. 패문이야 어찌 절하고 받을 것인가마는 기패만은 절하지 않을 수 없다」 하였습니다. 신이 「예를 잃은 것은 황공합니다. 다만 왜적과 화친을 말하는 일은 마음이 아프고 뼈에 사무치므로 받들기 어렵습니다」 하고 이러이러하게 아뢰니, 제독이 경략의 글을 내어 보이며 그 가운데 몇 마디를 짚어 가리켰는데 몹시 언짢은 낯빛이 있었습니다. 「화친은 내가 하는 바가 아니니 이 뜻을 그대 나라 신하는 알라」 하였습니다.
이어 적을 칠 계책을 논하면서 다시 접대사 한응인과 이덕형(李德馨)을 불러 함께 서서 말하였습니다. 나올 무렵 제독이 「송 시랑이 이를 듣지 않을 리 없으니, 내일 그 곡절을 대강 갖추어 품첩에 써서 오라」 하였습니다.
신들이 이튿날 또 글을 올려 「왜와 화친하면 반드시 그 술수에 빠질 것입니다. 심 유격(沈遊擊)이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으니 가만히 몹시 위태롭게 여깁니다. 마땅히 때를 다투어 군사를 나아가게 해야 합니다」 하고 힘써 말하니 제독은 「알았다」고만 답하였습니다.
신들이 이에 하직하고 물러나 바깥자리에 잠시 앉아 있으니, 제독이 송 시랑의 패문을 내어 보였습니다. 그 가운데 「지난날 왜장에게 사신을 보낼 때 조선의 이 판서가 몰래 간사한 꾀를 내어 배를 대어 기다리게 하지 않아 초여드렛날 기한에 미치지 못하게 하였으니 따져 물으라」는 따위 말이 있었습니다. 이어 말하기를 「경략의 말이 이러하니 그대 나라 신하가 이를 보면 일이 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님을 알 만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들이 동파로 돌아가는데 도중에 기패를 가진 자가 달려와 신을 부르니 몰아 다그치는 뜻이 유성보다 급하였습니다. 청교역 앞에 이르러 또 한 사람이 달려와 신에게 돌아가라 하니 신은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윽고 접대사의 종사관 황기(黃沂)가 와서 그 까닭을 들으니 이러하였습니다. 천총 한 사람이 제독에게 말하기를 「주홍모가 용산으로 갈 때 도중의 배를 일부러 가지런히 대어 놓지 않아 화친하는 일을 막았습니다」 하였다는 것입니다. 제독이 크게 노하여 그 일이 신에게서 나왔다 하고 급히 기패를 보내어 신을 잡아 오게 하며 「마땅히 곤장 마흔 대를 호되게 치고 군사를 거두어 돌아가겠다」 하였는데, 이윽고 그 말이 옳지 않음을 듣고 천총을 무겁게 매질하고 신은 돌아가게 하였다고 합니다.
대개 제독 이하가 이미 오로지 화친을 주장하면서도 우리나라 인심이 화의를 아프고 분하게 여기는 줄 알므로 감히 바로 말하지 못하고 서로 미룹니다. 그러면서도 중간에 신들이 막아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염려하여 가는 곳마다 노여움을 내니, 기색과 조처가 지난날과 전혀 같지 않아 일의 어려움이 앞서보다 더욱 심합니다. 신처럼 어리석고 못난 자는 한갓 답답하고 아플 뿐 나올 길을 알지 못하는데, 세월을 끌어 이미 바람이 순한 철에 이르렀으니 앞일은 또 수레를 어디에 풀어 놓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방금 충청 수사 정걸(丁傑) 등이 달려 알린 것에 이르기를 「사 상공(謝相公)과 주 유격(周遊擊)과 서 상공(徐相公) 등이 호위 군사 스무 명을 이끌고 열닷샛날 진시에 흑석강에 이르러 먼저 작은 배를 보내어 적 가운데 알렸습니다. 신시에 이르도록 왜적이 전혀 나와 맞지 않고 다만 말 탄 적이 여럿 나와 안쪽 길로 가는 것만 보였습니다. 명나라 사신이 여러 배에 전령하여 작은 종이에 써 보내기를 「왜놈이 명나라 사신을 나와 맞지 않으니 무례함이 심하다. 크고 작은 배에 분부하여 온갖 크고 작은 기구를 다 감추어 알맞게 두게 하라. 만일 왜놈이 무례하면 우리가 화기로 칠 것이다. 이 일이 요긴하고 요긴하다」 하였습니다. 전령한 일을 보고합니다」 하였습니다.
왜적의 흉악하고 거스름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아프고 분하여 이를 갈 뿐입니다. 명나라 장수가 다시 어떻게 처치할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협주 2
同日
같은 날
저본은 餉이나 晌의 잘못으로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