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12 진사록

명나라 장수를 따라 성에 들어간 뒤 성 안 형편과 여러 장수에게 적병을 막아 끊게 한 일을 아뢰는 장계隨。天將入城後馳。啓城中形止及分付諸將邀截賊兵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423자 · 낭독 3.6분

징비록 권12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昨日提督自東坡入城事則已爲馳。啓臣日暮隨入城中倭賊已盡出去而。天將隨後護行故諸軍不敢追擊高彥伯之軍自東大門先入擊斬落後之倭五級李山輝自西道而入斬六級李薲斬一級而皆畏。天將之令隱置他處矣臣等與權慄李廷馨成泳等進提督門外致謝收復之意則提督答曰議政過我今則致謝耶因云明日相見蓋臣以進兵之意累日苦口論辨而。天將不從故其言如此城中形止則日暮未及詳知今日諸處。廟社宮闕陵寢分道奉審追後馳。啓計料自慕華館白骨堆積城中則人馬顚仆而死者不計其數臭穢滿路人不可近人家亦存四五分之一不勝痛哭。天將出令云倭賊不出。王子以去我當發兵追勦須於漢江具船隻云故臣卽令京畿監司成泳及倡義秋義等使達夜措置賊兵所渡浮橋則皆焚燬無一船隻督令京畿忠淸水使所騎戰船幷由龍山上送漢江而潮水甚淺恐不得曳上用是憂慮權慄高彥伯李時言鄭希玄則使之抄發精兵先渡追勦矣臣前日所遣司評李忠申俔馳報內與宣居怡合軍九百餘名欲爲邀截而賊兵挾道設伏多持火砲故未得下手云云使之相機進勦毋失機會事分付而惟是。天將一路護行處置極難尤爲悶痛

어제 제독이 동파에서 성으로 들어간 일은 이미 달려 아뢰었습니다. 신은 날이 저물 무렵 뒤따라 성 안에 들어갔는데 왜적은 이미 다 나갔고 명나라 장수가 뒤따라 호위하여 가므로 여러 군사가 감히 쫓아 치지 못하였습니다. 고언백(高彥伯)의 군사가 동대문으로 먼저 들어가 뒤처진 왜 다섯 급을 쳐서 베었고, 이산휘(李山輝)가 서쪽 길로 들어가 여섯 급을 베었으며, 이빈(李薲)이 한 급을 베었습니다. 그러나 모두 명나라 장수의 명을 두려워하여 다른 곳에 숨겨 두었습니다.

신들이 권율(權慄)·이정형(李廷馨)·성영(成泳) 등과 함께 제독의 문 밖에 나아가 서울을 되찾은 데 사례하는 뜻을 전하니, 제독이 답하기를 「의정이 나를 나무라더니 이제는 사례하는가」 하고 이어 「내일 만나자」 하였습니다. 대개 신이 군사를 나아가게 하자는 뜻으로 여러 날 입이 닳도록 따져 말하였으나 명나라 장수가 따르지 않았으므로 그 말이 이러한 것입니다.

성 안의 형편은 날이 저물어 미처 자세히 알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여러 곳의 종묘와 사직, 궁궐, 능침을 길을 나누어 살펴보고 뒤미처 달려 아뢸 셈입니다. 모화관에서부터 백골이 쌓였고 성 안에는 사람과 말이 넘어져 죽은 것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썩는 냄새가 길에 가득하여 사람이 가까이 갈 수 없고, 인가도 다섯 가운데 하나쯤 남았을 뿐이니 통곡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명나라 장수가 영을 내리기를 「왜적이 왕자를 내놓지 않고 갔으니 내가 마땅히 군사를 내어 쫓아 치겠다. 모름지기 한강에 배를 갖추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신은 곧 경기 감사 성영과 창의·추의의 의병에게 밤을 새워 마련하게 하였습니다. 적병이 건너간 배다리는 모두 불타 한 척도 없으므로, 경기와 충청 수사가 타던 싸움배를 아울러 용산을 거쳐 한강으로 올려 보내게 다그쳤습니다. 그러나 밀물이 몹시 얕아 끌어 올리지 못할까 두려우니 이 때문에 걱정입니다. 권율·고언백·이시언·정희현에게는 날랜 군사를 뽑아 먼저 건너가 쫓아 치게 하였습니다.

신이 지난날 보낸 사평 이충(李忠)과 신현(申俔)이 달려 알린 것에 「선거이(宣居怡)와 군사를 합쳐 구백여 명으로 막아 끊으려 하였으나, 적병이 길을 끼고 복병을 두고 화포를 많이 가졌으므로 손을 대지 못하였습니다」 하였습니다. 형편을 보아 나아가 쳐서 기회를 잃지 말라고 분부하였습니다. 다만 명나라 장수가 한 길로 호위하여 가니 처치하기가 지극히 어려워 더욱 답답하고 아픕니다.

협주 1

四月二十一日

사월 스무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