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장수가 우리 군사를 막아 적을 쫓지 못하게 한 일을 달려 아뢰는 장계馳。啓。天將禁戢我軍不得追賊狀
本月二十日。天兵入城事則已爲狀。啓其日初昏提督向臣等言今當發兵追躡爾國軍馬亦令同進須速備過江船隻臣等仍前分付令京畿忠淸兩水使由龍山督上船隻猶恐遲緩又令左監司成泳親去督促而使巡邊使李薲全羅巡察使權慄京畿防禦使高彥伯平安防禦使鄭希玄兼三道防禦使李時言亦依前日分付由露梁抄率精兵過江僧將惟政等軍亦由楮子島近處過江而通于前道官義之兵合力邀截二十一日早朝臣等叅候提督致謝收復京城後因言進兵之事提督即時分付大將張世爵李如栢發一萬五千兵追之臣慮渡江船隻猶未及期出漢江監督船隻水使丁傑李薲等海船因灘淺未得上來有倭新造船五十餘隻我國仍朴船四隻往來渡軍軍馬已在南岸者五六千其餘陸續皆渡而臣等出去時路逢祖總兵自漢江還入城中以爲提督命之還來臣等固已疑之及至江上問安於李如栢則如栢稱足病刺痛臥在江岸樹陰張大將則已爲還人日晚李大將亦稱病重乘轎入城天兵之已渡者亦皆還渡臣等不勝疑訝痛悶臨昏更就提督門外探候其事旣而提督使椽房出言宋經略諭帖來到禁勿追襲吾亦不得自由且聞倭賊以。天使二。王子在後而行若爾國兵馬果能蕩滅則。天使雖被害猶之可也不然則徒傷。天使與。王子於汝國實無所益經略聞之亦必咎吾節制失宜其說甚多不能盡記而大槪皆不欲進兵之意臣等答以倭奴狡詐桀驚不還。王子及被擄人民而去當以重兵躡其後彼有畏懼之心然後。王子人民可有還國之望今若掇兵不追則賊何所畏忌乎且必屯據嶺南兇謀難測此時。天兵雖欲更爲追勦得無已晚難及乎如此往復數次因夜深退來三更夜不收二人押全羅監司權慄來提督處詰問徑自渡江之意又據巡邊使李薲防禦使高彥伯等馳報唐兵羅列江邊勿令進兵李薲先鋒將邊良俊鎖項曳地重傷歐血李薲亦被拘留江邊不使發去又高彥伯馳報二十一日進軍在中路查將率二十餘人列立前路使不得前進招高彥伯發怒詰責彥伯不得已托以整齊支待之事查將全不聽從挽留不放云提督發送追兵渡江之事不過難於臣等之力請而姑示追擊之狀實無進兵之意故張世爵托故還來李如栢稱病不進將士皆無鬪心而末抄出示經略牌文顯言不得自由之由如此支吾遮說頃刻變遷此雖臣等誠意淺薄不能動人之所致而亦緣經略與提督諸將定計已久殆難以口舌爭至於我國軍兵亦被處處遮截不得進去尤爲痛悶極天臣等不能自力討賊以復。宗社之雠而事至於此徒爲痛哭流涕請先治臣等之罪斥免重任以謝軍民齊憤之心
이달 스무날 명나라 군사가 도성에 들어온 일은 이미 장계로 아뢰었습니다. 그날 초저녁에 제독이 신들에게 말하기를 「이제 군사를 내어 뒤를 밟을 터이니 너희 나라 군마도 함께 나아가게 하고, 강 건널 배를 서둘러 갖추라」 하였습니다. 신들은 앞서 분부한 대로 경기·충청 두 수사에게 용산에서 배를 독촉해 올리게 하고, 그래도 더딜까 걱정되어 다시 좌감사 성영(成泳)에게 몸소 가서 재촉하게 하였습니다. 또 순변사 이빈(李薲), 전라 순찰사 권율(權慄), 경기방어사 고언백(高彥伯), 평안방어사 정희현(鄭希玄), 겸삼도방어사 이시언(李時言)에게도 전날 분부한 대로 노량에서 정예한 군사를 뽑아 이끌고 강을 건너게 하였고, 승장 유정(惟政)의 군사도 저자도 가까운 곳에서 강을 건너 앞 도의 관군·의병과 통하여 힘을 합쳐 길을 막아 끊게 하였습니다.
스무하룻날 이른 아침에 신들이 제독을 뵙고 서울을 되찾은 것을 사례한 뒤에 이어 군사를 나아가게 하는 일을 말하니, 제독이 곧 대장 장세작(張世爵)·이여백(李如栢)에게 분부하여 군사 일만 오천을 내어 쫓게 하였습니다. 신은 강 건널 배가 때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하여 한강에 나가 배를 감독하였습니다. 수사 정걸(丁傑)과 경기수사 이빈(李蘋) 등의 바닷배는 여울이 얕아 올라오지 못하였고, 왜인이 새로 만든 배 오십여 척과 우리나라 배 네 척으로 오가며 군사를 건넸습니다. 군마로 이미 남쪽 언덕에 이른 것이 오륙천이요 그 나머지도 잇달아 다 건넜습니다.
그런데 신들이 나갈 때 길에서 조 총병(祖總兵)이 한강에서 도로 성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만났는데, 제독이 명하여 돌아오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신들은 진실로 이미 의심하였습니다. 강가에 이르러 이여백에게 문안하니 이여백은 발병이 쑤시고 아프다 하며 강 언덕 나무 그늘에 누워 있었고, 장 대장은 이미 돌아갔습니다. 날이 저물자 이 대장도 병이 무겁다 하며 가마를 타고 성으로 들어갔고, 이미 건넌 명나라 군사도 다 도로 건너왔습니다. 신들은 의아하고 아프고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여 저물녘에 다시 제독의 문 밖에 나아가 그 일을 살폈습니다.
이윽고 제독이 아전을 내보내어 말하기를 「송 경략(宋經略)의 유첩이 와 뒤쫓기를 금하니 나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또 들으니 왜적이 명나라 사신과 두 왕자를 뒤에 두고 간다 한다. 너희 나라 군마가 과연 쓸어 없앨 수 있다면 사신이 해를 입더라도 오히려 괜찮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한갓 사신과 왕자를 상하게 할 뿐 너희 나라에 실로 이로울 것이 없다. 경략이 들으면 또한 반드시 내가 군사를 거느림에 마땅함을 잃었다고 허물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 말이 매우 많아 다 적지 못하나, 대개 모두 군사를 나아가게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습니다.
신들이 답하기를 「왜놈은 교활하고 사나워 왕자와 사로잡힌 백성을 돌려보내지 않고 갑니다. 마땅히 무거운 군사로 그 뒤를 밟아 저들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긴 뒤라야 왕자와 백성이 나라로 돌아올 바람이 있습니다. 이제 만일 군사를 거두고 쫓지 않으면 적이 무엇을 꺼리겠습니까. 또 반드시 영남에 웅거할 터이니 흉한 꾀를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그때 가서 명나라 군사가 다시 쫓아 무찌르려 한들 이미 늦어 미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하였습니다. 이같이 여러 차례 주고받다가 밤이 깊어 물러 나왔습니다.
삼경에 명나라 척후 군졸 두 사람이 전라 감사 권율을 붙들어 제독에게 데려와 제멋대로 강을 건넌 뜻을 따져 물었습니다. 또 순변사 이빈과 방어사 고언백 등이 달려와 알린 바에 따르면, 명나라 군사가 강가에 늘어서서 군사를 나아가지 못하게 하였고, 이빈의 선봉장 변양준(邊良俊)은 목에 쇠사슬이 걸린 채 땅에 끌려 크게 다치고 피를 토하였으며, 이빈도 강가에 붙들려 떠나지 못하였다 합니다. 또 고언백이 알리기를, 스무하룻날 군사를 몰아 중간 길에 이르렀는데 사 장수(査將)가 스무남은 사람을 이끌고 앞길에 늘어서서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고언백을 불러 노하여 꾸짖으므로 고언백이 마지못해 대접할 일을 정돈한다고 핑계하였으나, 사 장수가 전혀 듣지 않고 붙들어 놓아주지 않았다 합니다.
제독이 추격병을 보내어 강을 건너게 한 일은 신들이 힘써 청하는 것을 어렵게 여겨 짐짓 쫓는 모양만 보인 것이요, 실은 군사를 나아가게 할 뜻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장세작은 핑계를 대어 돌아오고 이여백은 병을 일컬어 나아가지 않았으며 장수와 군사가 모두 싸울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고는 끝에 가서야 경략의 패문을 베껴 내보이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까닭을 드러내어 말하였습니다. 이같이 얼버무려 막는 말이 잠깐 사이에 이리저리 바뀝니다.
이는 비록 신들의 정성이 얕아 남을 움직이지 못한 탓이나, 또한 경략과 제독과 여러 장수가 꾀를 정한 지 오래여서 거의 입으로 다투기 어려운 까닭입니다. 우리나라 군사까지 곳곳에서 막히어 나아가지 못하니 아프고 답답함이 하늘에 닿습니다. 신들이 스스로 힘써 적을 쳐 종사의 원수를 갚지 못하고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한갓 통곡하며 눈물을 흘릴 뿐입니다. 청컨대 먼저 신들의 죄를 다스리고 무거운 소임에서 물리쳐, 군사와 백성이 다 함께 분해하는 마음을 달래소서.
협주 6
同日
같은 날
저본은 還人이나 還入의 잘못으로 봄
저본은 桀驚이나 桀驁의 잘못으로 봄
저본은 椽房이나 掾房의 잘못으로 봄
순변사 이빈(李薲)과 경기수사 이빈(李蘋)은 다른 사람
전라 순찰사와 전라 감사는 한 사람 권율(權慄)이다. 관찰사(감사)가 순찰사를 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