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12 진사록

송산 정릉의 임시로 모신 자리를 살피고 아뢰는 장계奉審松山。靖陵靈幄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182자 · 낭독 1.6분

징비록 권12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臣二十日昏時自東坡入城二十一日護渡。天兵追賊事急終日在漢江二十二日始爲奉審於楊州松山里。靖陵靈幄奉安處號痛罔極呼天叩地欲死不得朝。陵使順寧君陪侍。幄殿僉正朴惟仁前萬戶金克忠率軍數十餘名仍爲侍衛矣京畿各邑蕩敗已甚又奔走於唐兵支待頓無餘力故臣移文于江原監司使之進排凡物而。靈殿野次宿衛孤單凡事待。朝廷指揮急速不分晝夜處置臣又奉審。宗廟灰燼之餘僅辨基址。三宮亦皆殘毁不可忍言幷以大槪馳。啓

신은 스무날 저물녘에 동파에서 성으로 들어왔고, 스무하룻날은 명나라 군사가 적을 쫓아 강 건너는 일을 돕기 급하여 온종일 한강에 있었으며, 스무이튿날에야 비로소 양주 송산리에 정릉(靖陵)을 임시로 모신 곳을 살폈습니다. 부르짖어 아픔이 그지없어 하늘을 부르고 땅을 두드리며 죽고자 하여도 죽지 못하였습니다.

조릉사(朝陵使) 순녕군(順寧君)이 임시로 모신 자리를 지키고 있고, 첨정 박유인(朴惟仁)과 전 만호 김극충(金克忠)이 군사 수십여 명을 이끌고 그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경기 여러 고을은 무너지고 결딴난 것이 이미 심한 데다 또 명나라 군사 대접에 분주하여 남은 힘이 전혀 없으므로, 신이 강원감사에게 공문을 보내어 온갖 물건을 대어 바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임시로 모신 자리를 지키는 이가 외롭고 적으며 모든 일이 조정의 지휘를 기다립니다. 밤낮을 가리지 말고 서둘러 처치하소서.

신이 또 종묘를 살피니 타고 남은 재 가운데 겨우 터를 가릴 만하고, 세 궁궐도 다 헐리고 부서져 차마 말할 수 없습니다. 아울러 그 대강을 달려 아룁니다.

협주 2

四月二十三日在京城

사월 스무사흘, 서울에서

저본은 영악·악전·영전으로 달리 적었으나 능에서 모셔 낸 것을 임시로 모신 한 자리를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