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량을 마련하고 때를 놓치기 전에 곡식을 모으기를 청하는 장계料理糧餉且請急時募粟狀
自四月二十日大軍入城之後兩湖漕運軍糧米豆幷四萬六千餘石已盡用下龍山倉遺在倭糓其數不過二千餘石今已以此糓繼之其勢不出一二日亦當竭盡此外城中倭館遺在之糓亦不滿千石各處我國用度及。山陵之役逐日費用其數不貲若天兵久留則勢不得已當以田稅之米繼之而田稅已捧及時方到泊者亦僅萬餘石此亦能支幾日臣伏聞兩湖財力無復寸餘而。天兵之留在尙州者及近日駱參將宋遊擊等各率其軍更向湖南以兩湖之力彼此調度其勢百無可支京外糧糓一時俱竭則更無措辦之勢其爲㦖迫不可形言唐糧之來在義州者急急船運上送而督運。御史尹敬立自初專管唐糧今則遠在慶尙道唐糧之來到者亦無句管檢察之人不無踈漏之獘常時則戶曹專掌國計所任至重堂上郞廳雖備員察任而猶不免遺失之患今則京城新復事同再造而判書李誠中下去後戶曹無他堂上官郞廳則皆是假官事事判渙不成頭緒極爲可悶判書上來間參判參議中急速差送且帶郞廳數人分掌察任國家經費庶得措置大抵今日所患莫大於糧糓匱竭如慶尙道賊兵屯據海邊勢益鴟張而道內公私俱乏積屍相枕調軍防備百計無䇿臣意全羅道各官兩麥稍熟處欲爲購募若得數千餘石亦可以繼軍糧之乏且可以賑濟飢民臣前日賫來空名告身其數不多且無四品以下相當之職請令該司急速成送數百張以廣募粟之路若失此時數月之後雖欲爲之民間麥小必無應募者矣上項所陳諸條。朝廷緊急商議處置近日京城糧餉等事右議政俞泓專掌檢勅凡千曲折必爲已盡狀。啓而事係悶迫幷達大槪
사월 스무날 대군이 성에 들어온 뒤로 호남·호서에서 배로 실어 온 군량 쌀과 콩 아울러 사만 육천여 석을 이미 다 내어 썼습니다. 용산창에 남아 있는 왜적의 곡식은 그 수가 이천여 석에 지나지 않는데 이제 이 곡식으로 이어 대고 있으니, 그 형세가 하루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또한 다 없어질 것입니다. 이 밖에 성안 왜관에 남아 있는 곡식도 천 석이 차지 않습니다. 곳곳의 우리나라 씀씀이와 산릉 역사에 날마다 드는 비용도 그 수가 적지 않습니다. 만일 명나라 군사가 오래 머무르면 형세가 부득이 전세로 거둔 쌀로 이어 대야 하는데, 전세로 이미 거두어 때맞추어 닿은 것도 겨우 만여 석이니 이것으로 며칠이나 버티겠습니까.
신이 엎드려 들으니 호남·호서의 재력은 다시 한 치도 남은 것이 없다 합니다. 그런데 상주에 머물러 있는 명나라 군사와 요사이 낙 참장(駱參將)·송 유격(宋遊擊) 등이 저마다 군사를 이끌고 다시 호남으로 향하니, 두 도의 힘으로 이쪽저쪽을 대어 나가기는 그 형세가 도무지 버틸 수 없습니다. 서울과 바깥의 군량이 한꺼번에 다 마르면 다시 마련할 길이 없으니 그 답답하고 절박함을 말로 나타낼 수 없습니다.
명나라 양식으로 의주에 와 있는 것은 급히 배로 실어 올려 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독운어사 윤경립(尹敬立)이 처음부터 명나라 양식을 도맡았는데 이제는 멀리 경상도에 있고, 이르러 온 명나라 양식도 맡아 살필 사람이 없어 새고 빠지는 폐단이 없지 않습니다. 보통 때에도 호조가 나라 살림을 도맡아 소임이 지극히 무거워, 당상과 낭청이 인원을 갖추어 소임을 살펴도 오히려 잃어버리는 근심을 면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제는 서울을 새로 되찾아 일이 나라를 다시 세우는 것과 같은데, 판서 이성중(李誠中)이 내려간 뒤 호조에 다른 당상관이 없고 낭청은 다 임시로 삼은 벼슬아치라 일마다 흩어져 갈피를 이루지 못하니 몹시 답답합니다. 판서가 올라오는 사이에 참판·참의 가운데서 급히 정하여 보내시고, 또 낭청 두어 사람을 거느려 나누어 맡아 살피게 하시면 나라의 경비를 거의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저 오늘의 걱정은 군량이 다하는 것보다 큰 것이 없습니다. 경상도 같은 데는 적병이 바닷가에 웅거하여 세력이 더욱 뻗치는데, 도 안은 공사 간에 다 없고 쌓인 주검이 서로 베고 누웠습니다. 군사를 뽑아 막아 지키려 하여도 온갖 꾀에 방책이 없습니다. 신의 뜻은 전라도 여러 고을 가운데 보리가 조금 익은 곳에서 곡식을 사 모으자는 것입니다. 만일 수천여 석을 얻으면 군량의 모자람을 이을 수 있고 또 굶주린 백성을 구제할 수 있습니다. 신이 전날 가지고 온 공명고신(空名告身)은 그 수가 많지 않고 또 사품 아래에 마땅한 자리가 없습니다. 청컨대 해당 관사로 하여금 급히 수백 장을 만들어 보내게 하시어 곡식 모으는 길을 넓히소서. 만일 이때를 놓치면 두어 달 뒤에는 하고자 하여도 민간에 보리가 적어 반드시 응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위에 아뢴 여러 조목을 조정에서 긴급히 의논하여 처치하소서. 요사이 서울의 군량 따위 일은 우의정 유홍(俞泓)이 도맡아 단속하니 온갖 곡절을 반드시 이미 다 장계로 아뢰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이 답답하고 절박한 데 매인 것이라 아울러 대강을 아룁니다.
협주 2
六月二十日在京城
유월 스무날, 서울에서
공명고신(空名告身) — 이름 쓰는 자리를 비워 둔 임명장이다. 곡식을 바친 이에게 그 자리에서 이름을 적어 주어 곡식을 모으는 데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