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12 진사록

산성을 손보아 싸우고 지킬 계책으로 삼고 수령을 삼가 가려 인심을 거두기를 청하는 장계請修葺山城以爲戰守之計且愼擇守令以收人心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1,721자 · 낭독 14.6분

징비록 권12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近日連得慶尙左監司韓孝純及兵使權應洙水使李由義等馳報兇賊屯據於梁山機張蔚山東萊釜山金海昌原等地勢甚鴟張造設房屋廣築城堡收聚粮餉聲言將犯晉州其勢極爲可虞蓋蔚山之賊若犯慶州以及內地則左道不可保矣梁山之賊更上直路而昌原之賊西犯晋州以及湖南則彼此不能相救而三道危矣大扺今日之勢當且守且戰此正古人所謂先爲不可勝以待賊之可勝今賊兵雖在海邊而中道則密陽以上已爲我地當隨其所得設險堅守必擇地勢形便要害之處或設土壘木栅多備器械使賊不敢來犯然後蓄力乘便精擇勇軍統於猛將飽士秣馬乘其賊勢動靜左右勦擊令賊騷然不安賊進無所得退失所據其勢將不久而遁逃因其退遁之際半渡之時水陸合兵四面蹙之則可以全勝臣之區區愚意爲今日計似無出於此者臣前日妄獻一得請於郡邑之城急設炮樓又請修葺山城令民入保賊至淸野以待者此正欲先爲固守之計也我國自古長於守城而短於野戰頃日權憟幸州之戰亦先得地利故賊兵多於我軍數倍盡日苦戰而終不能陷城大敗而歸賊之棄城遁歸者未必非此一戰爲之助也臣以此知今日急務無大於設險堅守而。天將中有識如駱參將等所言皆然請令該司急速商議如以爲可行則下于諸道漸次設立而山城之可守處曉諭民間各出其力次次繕修公私糓食亦令聚在其中然要不可限以時日以傷民力在當事者善措之如何耳炮樓之制若成則誠爲萬世之利但必有火藥火炮然後可以郤敵如火藥不敷火炮不多則徒設無益此亦。朝廷急急區處或設局於京中多聚匠人晝夜打造千萬餘介分送諸處火藥亦令外方自爲燔造使用之如水火則制敵保邦此爲利器不待他求也我國人情不能先事而圖事過則輒悔數年前軍器寺所藏火藥有二萬七千斤而臣其時隨在備邊司之列欲以二萬斤留京七千斤送于兩南以備倭寇而論者以爲京中火藥不可濫費只以數十斤充數分送竟爲賊所盡有而海邊防備之處或無有一二斤之儲雖欲用之其可得乎今宜深懲往事弛火藥私造之禁廣傳習銃筩之規凡人之不能操弓者盡爲火炮之軍分運作隊操鍊有法紀律素行則賊何由來犯而國家之辱庶可小雪矣古人云器械不利以其卒予敵驅市人而戰則雖名將猶雖成功今賊退已數月事勢危迫日甚一日而中外人情未免狃於少安尙無措置之事幾於悠悠度日萬一賊兵更爲長驅國事無稅駕之地臣之無狀竊獨寒心且嶺南則凶饉癘疫人民死亡殆盡自聞慶以下直至密陽數百里間人烟斷絕已成空虛之地雖欲有爲其勢末由今宜急於兩湖多般設䇿厚爲賞格及其兩麥之猶在民間汲汲收合則多至於萬石少亦數千餘石以此爲糧旣可以繼軍食又可以招集遊手以爲炮樓築壘之役故臣別爲狀。啓亦望該司急速擧行成送告身帖文則臣當遣帶行從事馳往購募獘不至及民而事亦可濟矣愼擇守令亦爲今日急務蓋兵興以後苟且充差民生之困於割剝未有如此時之甚怨毒憤罵至有不可恐聞者凡國家興衰撥亂之機必以先得民心爲務民心旣得則天意亦自然悔禍此必至之理也臣願今日諸道守令視平日更加愼擇稱才量能其有功勞才器者則拔擢授任貪鄙庸劣者漸爲澄汰又令監司及奉使出入之人宣布德意撫摩凋瘵若痛癏之在己使四方民情仰承。國家仁恤之意如得更生則雖勞而不怨矣近日非徒守令不體如傷之意至於奉。命往來之人亦甚衆多督責厨傳鞭扑吏民所至之處人皆騷動此亦更加申勑而務爲除獘然後驛路郡邑庶有一分之利矣且臣又有所慮。祖宗朝設立巨邑皆因一道形勢大小錯綜使之捍外衛內其意至深遠也以京畿言之則楊州水原廣州利川江華皆是京城藩蔽股肱之地此等之邑當須留意別爲愼擇守宰如長安之三輔洛腸之馮翊則京城自固矣利川府使邊應星今聞爲會寧府使應星在利川能績頗著紏合民兵捍禦盜賊故賊兵終始不敢深入而利川境內耕耘不失其時北道重地固當擇人然在今日則南邊賊路所經其任尤重臣之愚意亦望姑留應星使得撫輯成緒而廣州牧使亦十分擇人任之使廣州利川驪州三邑相比合勢稍稍完集則其爲後日之益不少矣此則但爲京畿一道而言耳他道形勢莫不皆然如忠州居國上流控扼咽喉忠州失守則沿江數百里皆爲受敵之地其重比他邑百倍臣尙未知元愼居官之狀如何然當今日板蕩新造之初恐非此人所了臣時未到其處從當親見更。啓計料而所以幷爲預陳者欲令。朝廷凡此等緊重守令一一愼取於差除之日毋致遞代紛然之獘臣本以無狀從前負國孤。恩久在行間無一寸效不意數月危病纒身性命如縷乞免重任更代他人以紓國亂而待命踰月尙無指揮病若漸蘇竊欲扶曳南去目見事益艱難臣之精神才力萬無報塞之路而疾病昏𥉠之中時有一二妄見不得不仰陳於。兼聽之下不自知量罪涉僣越惶恐無地

요사이 잇달아 경상좌감사 한효순(韓孝純)과 병사 권응수(權應洙), 수사 이유의(李由義) 등이 달려와 알린 것을 받았습니다. 흉한 적이 양산·기장·울산·동래·부산·김해·창원 등지에 웅거하여 세력이 몹시 뻗치고, 집을 짓고 성과 보를 널리 쌓으며 군량을 거두어 모으고 장차 진주를 침노한다고 소리치니 그 형세가 지극히 걱정스럽습니다. 대개 울산의 적이 만일 경주를 침노하여 안쪽 땅까지 미치면 좌도를 지킬 수 없고, 양산의 적이 다시 곧은 길로 올라오고 창원의 적이 서쪽으로 진주를 침노하여 호남에 미치면 이쪽저쪽이 서로 구하지 못하여 세 도가 다 위태롭습니다.

대저 오늘의 형세는 마땅히 지키면서 싸워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옛사람이 이른바 「먼저 적이 나를 이기지 못하게 해 놓고, 적을 이길 만한 때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이제 적병이 비록 바닷가에 있으나 중간 길은 밀양 위쪽이 이미 우리 땅입니다. 마땅히 얻은 곳을 따라 험한 데를 베풀어 굳게 지켜야 합니다. 반드시 땅 형세가 편하고 요긴한 곳을 가려 흙 보루나 나무 목책을 세우고 병기를 많이 갖추어 적이 감히 와 침노하지 못하게 한 뒤에, 힘을 쌓고 틈을 타 날쌘 군사를 정밀히 가려 사나운 장수에게 거느리게 하고, 군사를 배불리 먹이고 말을 먹여 적의 움직임을 보아 좌우로 무찔러 쳐 적이 어수선하여 편안하지 못하게 하여야 합니다. 그리하면 적이 나아가도 얻는 것이 없고 물러가도 웅거할 데를 잃어 그 형세가 오래지 않아 달아날 것이니, 그 물러 달아날 즈음 반쯤 건널 때를 타 물과 뭍의 군사를 합쳐 사면에서 몰아붙이면 온전히 이길 수 있습니다. 신의 구구한 어리석은 뜻으로는 오늘의 계책이 이보다 나을 것이 없을 듯합니다.

신이 전날 망령되이 한 가지 소견을 올려 고을 성에 포루를 급히 세우기를 청하고, 또 산성을 손보아 백성을 들여보내 지키게 하고 적이 오면 들을 비워 기다리기를 청한 것은 바로 먼저 굳게 지킬 계책을 세우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성 지키기에는 길고 들 싸움에는 짧습니다. 지난날 권율(權慄)의 행주 싸움도 먼저 땅의 이로움을 얻은 까닭에, 적병이 우리 군사보다 두어 곱절 많고 온종일 괴로이 싸웠어도 끝내 성을 함락하지 못하고 크게 패하여 돌아갔습니다. 적이 성을 버리고 달아난 것도 이 한 싸움이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신은 이로써 오늘의 급한 일이 험한 데를 베풀어 굳게 지키는 것보다 큰 것이 없음을 압니다. 명나라 장수 가운데 식견 있는 낙 참장(駱參將) 같은 이의 말도 다 그러합니다. 청컨대 해당 관사로 하여금 급히 의논하게 하시어, 행할 만하다 하면 여러 도에 내려 차츰 세우게 하시고, 산성으로 지킬 만한 곳은 민간에 타일러 저마다 힘을 내어 차례로 고치게 하며 공사의 곡식도 그 안에 모아 두게 하소서. 그러나 날짜를 한정하여 백성의 힘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되니, 일 맡은 이가 잘 조처하기에 달렸을 뿐입니다.

포루의 제도가 만일 이루어지면 참으로 만세의 이로움이 됩니다. 다만 반드시 화약과 화포가 있은 뒤라야 적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화약이 넉넉하지 못하고 화포가 많지 않으면 한갓 베풀어 놓아도 이로움이 없습니다. 이 또한 조정에서 급히 조처하시어, 서울에 관아를 두고 장인을 많이 모아 밤낮으로 천만여 개를 만들어 여러 곳에 나누어 보내시고, 화약도 외방에서 스스로 구워 만들게 하여 물과 불처럼 쓰게 하소서. 적을 누르고 나라를 지키는 데 이것이 이로운 기물이니 달리 구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인정은 일에 앞서 꾀하지 못하고 일이 지나가면 문득 뉘우칩니다. 두어 해 전에 군기시에 간직한 화약이 이만 칠천 근 있었는데, 신이 그때 비변사의 반열에 있으면서 이만 근은 서울에 두고 칠천 근은 영남·호남에 보내어 왜구에 대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의논하는 이가 서울의 화약을 함부로 쓸 수 없다 하여 다만 수십 근으로 수를 채워 나누어 보냈습니다. 마침내 적에게 다 빼앗기고 바닷가 막아 지키는 곳에는 한두 근의 저축도 없는 데가 있으니, 비록 쓰고자 한들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 마땅히 지난 일을 깊이 징계하여 화약을 사사로이 만드는 금령을 늦추고 총통 다루는 법을 널리 전하여 익히게 하며, 무릇 활을 잡지 못하는 사람은 다 화포의 군사로 삼아 떼를 나누어 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조련에 법이 있고 기율이 평소 행해지면 적이 무슨 수로 와 침노하겠으며, 나라의 욕도 거의 조금은 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병기가 날카롭지 못하면 그 군사를 적에게 주는 것이요, 저잣거리 사람을 몰아 싸우면 비록 이름난 장수라도 공을 이루기 어렵다」 하였습니다.

이제 적이 물러간 지 이미 두어 달인데 형세가 위태롭고 절박함이 날로 심합니다. 그런데 안팎의 인정은 조금 편안함에 익숙해짐을 면하지 못하여 아직 조처한 일이 없이 거의 하염없이 날을 보냅니다. 만일 적병이 다시 멀리 몰아 올라오면 나랏일은 수레를 풀 땅조차 없을 것이니, 못난 신은 남몰래 홀로 마음이 서늘합니다.

또 영남은 흉년과 돌림병으로 백성이 거의 다 죽어, 문경 아래로 밀양에 이르기까지 수백 리 사이에 밥 짓는 연기가 끊어져 이미 텅 빈 땅이 되었습니다. 비록 무엇을 하고자 한들 그 형세가 말미암을 데가 없습니다. 이제 마땅히 호남·호서에서 서둘러 여러 가지로 꾀를 베풀고 상을 두터이 하여 보리와 밀이 아직 민간에 있을 때에 급급히 거두어 모으면, 많으면 만 석에 이르고 적어도 수천여 석은 될 것입니다. 이것으로 양식을 삼으면 군사의 밥을 이을 수 있고, 또 놀고 있는 사람을 불러 모아 포루를 세우고 보루를 쌓는 역사를 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이 따로 장계를 올리니, 해당 관사가 급히 거행하여 임명장을 만들어 보내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신이 데리고 다니는 종사관을 보내어 달려가 사 모으게 할 것이니, 폐단이 백성에게 미치지 않고 일도 이룰 수 있습니다.

수령을 삼가 가리는 것도 오늘의 급한 일입니다. 대개 군사가 일어난 뒤로 구차히 자리만 채워 정하니, 백성의 삶이 벗겨 내고 깎이는 데 괴로움이 이때처럼 심한 적이 없습니다. 원망과 독한 꾸짖음이 차마 들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무릇 나라가 일어나고 쇠하며 어지러움을 다스리는 기틀은 반드시 먼저 민심을 얻는 것을 힘씁니다. 민심을 얻으면 하늘의 뜻도 저절로 재앙 내림을 뉘우치니 이는 반드시 이르는 이치입니다. 신은 오늘 여러 도의 수령을 평소보다 더욱 삼가 가려 재주에 맞추고 능력을 헤아려, 공로와 재기가 있는 이는 뽑아 소임을 맡기고 탐욕스럽고 용렬한 이는 차츰 가려 내치시기를 바랍니다. 또 감사와 명을 받들어 드나드는 사람으로 하여금 임금의 어진 뜻을 펴 알리고 시들고 병든 백성을 어루만지되 그 아픔이 제 몸에 있는 듯이 하게 하소서. 사방의 민심이 나라가 어질게 돌보는 뜻을 우러러 받들어 다시 살아난 듯하게 되면, 비록 수고로워도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사이 수령이 백성을 다친 사람 보듯 하는 뜻을 몸받지 못할 뿐 아니라, 명을 받들고 오가는 사람도 매우 많아 대접을 독촉하고 아전과 백성을 매질하니 이르는 곳마다 사람이 다 소란합니다. 이 또한 거듭 단속하여 폐단 없애기에 힘쓴 뒤라야 역로와 고을이 거의 한 푼의 이로움이라도 있을 것입니다.

또 신에게 염려되는 바가 있습니다. 조종조에서 큰 고을을 세운 것은 다 한 도의 형세와 크고 작음을 엇섞어 밖을 막고 안을 지키게 한 것이니 그 뜻이 지극히 깊고 멉니다. 경기로 말하면 양주·수원·광주·이천·강화가 다 서울의 울타리요 팔다리 같은 땅입니다. 이런 고을은 마땅히 뜻을 두어 따로 수령을 삼가 가려야 하니, 장안의 삼보(三輔)나 낙양의 풍익(馮翊)처럼 하면 서울이 저절로 굳어집니다. 이천부사 변응성(邊應星)이 이제 회령부사가 되었다 들었습니다. 변응성이 이천에 있으면서 공적이 자못 드러나 백성과 군사를 규합하여 도적을 막았으므로, 적병이 끝내 감히 깊이 들어오지 못하고 이천 경내는 갈고 김매기를 때에 잃지 않았습니다. 북도는 중한 땅이라 진실로 사람을 가려야 하나, 오늘로서는 남쪽 가 적이 지나는 길이 그 소임이 더욱 무겁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뜻으로는 아직 변응성을 머물러 두어 어루만져 모아 실마리를 이루게 하시고, 광주목사도 십분 사람을 가려 맡기시어 광주·이천·여주 세 고을이 서로 나란히 세를 합쳐 차츰 온전히 모이게 하면 뒷날의 이로움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다만 경기 한 도를 두고 한 말이나 다른 도의 형세도 다 그러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충주 같은 데는 나라의 상류에 있어 목구멍을 당겨 막는 곳이니, 충주를 지키지 못하면 강을 낀 수백 리가 다 적을 받는 땅이 되어 그 중함이 다른 고을에 견주어 백 곱절입니다. 신은 아직 원신(元愼)이 벼슬살이하는 모양이 어떠한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늘 나라가 뒤흔들려 새로 세우는 처음에는 이 사람이 감당할 바가 아닐까 두렵습니다. 신이 아직 그곳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마땅히 몸소 본 뒤에 다시 아뢰어 헤아리겠습니다. 아울러 미리 아뢰는 까닭은, 조정이 이런 긴하고 중한 수령을 벼슬 내리는 날에 낱낱이 삼가 가려 갈아 대는 어지러운 폐단에 이르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신은 본디 못나서 이제까지 나라를 저버리고 은혜를 저버렸으며, 오래 군중에 있으면서 한 치의 보람도 없었습니다. 뜻밖에 두어 달 위태로운 병이 몸에 얽혀 목숨이 실오라기 같습니다. 무거운 소임을 벗고 다른 사람으로 갈아 나라의 어지러움을 풀기를 빌었으나, 명을 기다린 지 한 달이 넘도록 아직 지휘가 없습니다. 병이 조금 나으면 몸을 이끌고 남쪽으로 가고자 합니다. 눈으로 보기에 일이 더욱 어려운데 신의 정신과 재주로는 만에 하나도 갚아 막을 길이 없습니다. 병들어 어두운 가운데 때로 한두 가지 망령된 소견이 있어 두루 들으시는 아래에 우러러 아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스스로 분수를 알지 못하여 죄가 참람함에 걸리니 황공하여 몸 둘 곳이 없습니다.

협주 4

六月三十日

유월 그믐

저본은 雖이나 難의 잘못으로 봄

저본은 恐이나 忍의 잘못으로 봄

저본은 洛腸이나 洛陽의 잘못으로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