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적의 형세가 위급함을 달려 아뢰는 장계馳啓慶尙道賊勢危急狀
臣昨昨日書狀封送卽日申時發自慶州徹夜而行昨日到大丘當日朝參拜劉總兵極陳事急請援之由則頗有掣肘不能自由之意乃卽成禀帖馳報宋經略與李提督處觀其意思不無坐待回下之計事將無及至爲痛悶卽刻到付忠淸兵使黃進十六日成貼馳報內昌原留賊與金海熊川之賊合勢將向咸安咸安城池淺薄各將所持兵糧僅支數日之用賊若屯據城外高山曠日相持則保守極難故全羅都巡察使權慄巡邊使李薲等相議令全羅兵使宣居怡助防將李繼鄭京畿助防將洪季男本道助防將鄭名世慶尙右兵使崔慶會義兵將高從厚領兵本月十四日發自咸安十五日來陣晋州俄有全羅道捍後將扶安縣監軍官金漢希馳告內昌原彌漫之賊先鋒十五日未明時直越竹嶺已入咸安事進告又十六日京畿助防將洪季男親自馳來言內同日卯時咸安來入之賊不知其數出來晋州地盤城縣屯聚距晉州四十里必是欲犯晋州之計云諸處之賊合勢衝突果如前日被擄人所言故晋州城中諸將方約束把守而全羅兵使及京畿助防將則因巡邊使關率兵向宜寧此地等賊勢緊急緣由禀告於。天將急速赴援事牒呈一時到付巡邊使李薲十六日成貼馳報內十五日咸安之賊分兵四出江越邊上下焚蕩云云故先送慶尙左兵使高彥伯使與星州牧使郭再祐合軍把截卽見郭再祐馳報賊船百餘隻自鵲院上來到尺堂津下陸去牧使結陣處五里許安國老家焚蕩故發送義兵軍及左兵使軍使之勦擊事馳報又左兵使高彥伯馳報內宜寧地五骨果賊倭先鋒五十餘名焚蕩與星州牧使合軍追擊事馳報賊勢甚盛四面充斥而諸將皆赴晉州此處則只有巡邊使左兵使星州牧使而所率軍兵不滿六百以此備禦無計左道諸將急速起送。天兵亦爲請來繼援事牒呈又一時到付督捕使朴晋防禦使李時言金應瑞鄭希立等同狀十八日成貼馳報內當日到付密陽府使朴慶新馳報靈山境內賊船無數來泊又賊百餘名自買浦府地境熊峴向去府使率軍二十餘名不意追逐多數射殺云云而靈山餘賊還向買浦不無衝突直路之患故使軍官朴守豪等抄率精銳與密陽府使合勢阻遏買浦之賊而諸將等方抄率精銳馳向靈山以爲乘機勦擊之計事牒報臣因此商度咸安避出之諸將入守晋州者其數似多足可隄防而所患軍糧乏絕若或持久勢難支吾宜寧所投之軍果爲數少加送援兵固是得計而右道及直路把截亦不可虛適值崔遠率軍來到星州故使之因率所領武士急急馳赴與右道監司約束爲援運糧官趙信道所管糧料已盡輸運更無可爲之事而生長咸安熟諳晋州等處形勢云故別爲督戰官送于崔遠處使之極力措置大槪賊勢極熾諸處衝突將有不戢之勢而兵孤糧盡環視本道已無可爲之事只恃。天將之赴救而又有掣肘相碍之端尤爲痛悶輒將告急文字連禀劉總兵庶幾動心而各處將官更爲嚴飭期於收拾先将已到之報急此馳。啓
신이 그저께 글월을 봉하여 보내고 그날 신시에 경주를 떠나 밤을 새워 가서 어제 대구에 이르렀습니다. 그날 아침 유 총병(劉總兵)을 뵙고 일이 급하여 구원을 청하는 까닭을 극진히 아뢰니, 자못 위에 매여(掣肘)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는 뜻이 있었습니다. 이에 곧 품첩을 만들어 송 경략(宋經略)과 이 제독(李提督)에게 달려 알렸으나, 그 뜻을 보니 앉아서 회답 내리기를 기다리려는 꾀가 없지 않으니 일이 장차 미치지 못할까 지극히 아프고 답답합니다.
곧 도착한 충청병사 황진(黃進)이 열엿샛날 만들어 붙여 달려 알린 것에, 창원에 머무는 적이 김해·웅천의 적과 세를 합쳐 장차 함안으로 향하려 한다 하였습니다. 함안은 성과 못이 얕고 엷으며 여러 장수가 가진 군량이 겨우 며칠 쓸 것을 지탱할 뿐이니, 적이 만일 성 밖 높은 산에 웅거하여 날을 오래 끌며 서로 버티면 지키기가 지극히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전라도 순찰사 권율(權慄)과 순변사 이빈(李薲) 등이 서로 의논하여, 전라병사 선거이(宣居怡)와 조방장 이계정(李繼鄭), 경기조방장 홍계남(洪季男), 본도 조방장 정명세(鄭名世), 경상우병사 최경회(崔慶會), 의병장 고종후(高從厚)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이달 열나흗날 함안을 떠나 열닷샛날 진주에 와 진 치게 하였습니다.
이윽고 전라도 한후장인 부안현감의 군관 김한희(金漢希)가 달려와 알리기를, 창원에 가득한 적의 선봉이 열닷샛날 새벽에 곧장 죽령을 넘어 이미 함안에 들어왔다 하였습니다. 또 열엿샛날 경기조방장 홍계남이 몸소 달려와 말하기를, 같은 날 묘시에 함안에 들어온 적이 그 수를 알 수 없이 나와 진주 땅 반성현에 모여 진 쳤는데 진주에서 사십 리 되는 곳이니 반드시 진주를 침노하려는 꾀라 하였습니다. 곳곳의 적이 세를 합쳐 부딪쳐 오는 것이 과연 전날 사로잡혔던 사람이 말한 바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진주 성안의 여러 장수가 바야흐로 단속하여 지키고 있으며, 전라병사와 경기조방장은 순변사의 관문에 따라 군사를 거느리고 의령으로 향하였습니다. 이곳 적의 형세가 긴급한 까닭을 명나라 장수에게 아뢰어 급히 구원하러 오게 할 일로 첩정을 올렸습니다.
한때에 도착한 순변사 이빈이 열엿샛날 만들어 붙여 달려 알린 것에, 열닷샛날 함안의 적이 군사를 나누어 사방으로 나가 강 건너 위아래를 불살랐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경상좌병사 고언백(高彥伯)을 보내어 성주목사 곽재우(郭再祐)와 군사를 합쳐 막아 끊게 하였습니다. 곧 곽재우가 달려 알린 것을 보니, 적의 배 백여 척이 작원에서 올라와 척당진에 이르러 뭍에 내렸고, 목사가 진 친 곳에서 오 리쯤 되는 안국로(安國老)의 집을 불살랐으므로 의병군과 좌병사의 군사를 보내어 무찔러 치게 하였다 하였습니다. 또 좌병사 고언백이 달려 알린 것에, 의령 땅 오골과에서 왜적 선봉 오십여 명이 불을 지르므로 성주목사와 군사를 합쳐 뒤쫓아 친다 하였습니다.
적의 형세가 매우 성하여 사면에 가득한데 여러 장수는 다 진주로 갔고, 이곳에는 다만 순변사와 좌병사와 성주목사가 있을 뿐이요 거느린 군사가 육백이 차지 않으니 이것으로는 막아 지킬 계책이 없습니다. 좌도의 여러 장수를 급히 일으켜 보내고 명나라 군사도 청하여 와 이어 도울 일로 첩정을 올렸습니다.
또 한때에 도착한 독포사 박진(朴晋)과 방어사 이시언(李時言)·김응서(金應瑞)·정희립(鄭希立) 등이 함께 열여드렛날 만들어 붙여 달려 알린 것에, 그날 도착한 밀양부사 박경신(朴慶新)이 달려 알리기를 영산 경내에 적의 배가 무수히 와 닿았고, 또 적 백여 명이 매포에서 부의 지경인 웅현으로 향하여 가므로 부사가 군사 스무남은 명을 거느리고 뜻밖에 뒤쫓아 많은 수를 쏘아 죽였다 하였습니다. 영산의 남은 적이 도로 매포로 향하니 곧은 길로 부딪쳐 올 근심이 없지 않으므로, 군관 박수호(朴守豪) 등에게 정예한 군사를 뽑아 거느리고 밀양부사와 세를 합쳐 매포의 적을 막게 하고, 여러 장수는 바야흐로 정예를 뽑아 거느리고 영산으로 달려가 기회를 타 무찌를 계책을 삼는다고 알려 왔습니다.
신이 이로 미루어 헤아리건대, 함안에서 피하여 나와 진주에 들어가 지키는 여러 장수는 그 수가 많은 듯하여 넉넉히 막을 만합니다. 걱정은 군량이 다한 것이니 만일 오래 끌면 형세가 버티기 어렵습니다. 의령으로 보낸 군사가 과연 수가 적으니 구원병을 더 보내는 것이 진실로 옳은 계책이나, 우도와 곧은 길을 막아 끊는 것도 비워 둘 수 없습니다. 마침 최원(崔遠)이 군사를 거느리고 성주에 이르렀으므로, 거느린 무사를 그대로 이끌고 급급히 달려가 우도 감사와 약속하여 돕게 하였습니다. 운량관 조신도(趙信道)가 맡은 양식은 이미 다 실어 날라 다시 할 일이 없고, 함안에서 나고 자라 진주 등지의 형세를 잘 안다 하므로 따로 독전관을 삼아 최원에게 보내어 힘을 다해 조처하게 하였습니다.
대개 적의 형세가 지극히 성하여 곳곳에 부딪쳐 장차 거두지 못할 형세가 있는데, 군사는 외롭고 양식은 다하여 본도를 둘러보아도 이미 할 만한 일이 없습니다. 다만 명나라 장수가 구하러 오기를 믿을 뿐인데 또 위에 매여 서로 막히는 실마리가 있으니 더욱 아프고 답답합니다. 문득 급함을 고하는 글을 가지고 잇달아 유 총병에게 아뢰어 거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곳곳 장수에게 다시 엄히 신칙하여 수습하기를 기약합니다. 먼저 이미 이른 보고를 가지고 급히 이렇게 달려 아룁니다.
협주 1
六月二十日
유월 스무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