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13 진사록

진주성이 함락된 일을 달려 아뢰는 장계馳。啓晋州陷城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520자 · 낭독 4.4분

징비록 권13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臣在京時聞慶尙左道兵勢孤弱及出城之後聞都元帥金命元留慶州欲就議事將發向左道及到道內聞晉州事急卽馳向右道而蕩敗之餘移日行路不見一人驛路不通文報不傳星州等處則糧料掃如一行飢困不得已寸寸前進轉向高靈及到安彥驛有一驛子自下而來乃持巡察使行移往戶曹判書李誠中處者而口傳晉州已於前月二十九日爲賊所陷臣不勝驚痛之至卽馳到高靈則文報猶不來而所傳之言果似非虛皆以爲賊累犯累退不意二十九日天雨城毁數疋長賊兵乘時亂入我軍不能禦入城之將則時未知某某人被害矣督捕使朴晉都元帥軍官朴宗男率軍結陣于高靈草溪之境而賊兵昨日已入草溪云距此只數十餘里人心危懼莫保頃刻大概右道一境已爲空虛之地而此縣自全羅道輸到軍糧千餘石亦露積在外賊若衝突皆當被奪臣方令差使員興德縣監李佶暫爲移置僻處矣劉總兵之軍今日自大丘來此結陣於縣南山上而其數不多其委官率來者云明與明明總兵亦率大軍來駐此處臣作爲禀帖馳人請救亦未知肯許與否臣觀此賊兇狡叵測佯以巧計少緩。天兵而吞噬無已在我無軍無食日就靡潰區區南方之保障惟恃晉州一邑猛將精兵多就城內而今又不幸徒爲拊心本道左右道地勢懸遠文移往復動經時日慶州等處尤甚虛疎而金命元又復遞去新元帥權慄雖在湖南之境而湖南諸邑守令亦因。天兵支待盡出在外道內幾於空虛末由䇿應尤爲悶慮

신이 서울에 있을 때 경상좌도의 군세가 외롭고 약하다는 말을 들었고, 성을 나온 뒤에는 도원수 김명원(金命元)이 경주에 머물러 있다 하므로 나아가 일을 의논하려고 좌도로 떠나려 하였습니다. 도내에 이르러 진주가 위급하다는 말을 듣고 곧 우도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온통 무너진 뒤라 며칠을 길을 가도 사람 하나 보이지 않고, 역길이 통하지 않아 문서와 보고가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성주 등지는 양식이 쓸어 낸 듯 없어 일행이 굶주리고 지쳐 부득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 고령으로 향하였습니다.

안언역에 이르니 역졸 하나가 아래쪽에서 올라오는데, 순찰사의 공문을 가지고 호조판서 이성중(李誠中)에게 가는 자였습니다. 그가 말로 전하기를, 진주가 이미 지난달 스무아흐레에 적에게 함락되었다 하니 신은 놀랍고 아픈 마음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곧 달려 고령에 이르렀으나 문서 보고는 아직 오지 않았고, 전해진 말은 아무래도 헛말이 아닌 듯하였습니다. 모두 말하기를, 적이 여러 번 덤볐다가 여러 번 물러났는데 뜻밖에 스무아흐레에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 성이 몇 발 길이나 무너졌고, 적병이 그 틈을 타 어지러이 들어왔는데 우리 군사가 막지 못하였다 합니다. 성에 들어갔던 장수들은 아무개 아무개가 해를 입었는지 아직 알지 못합니다.

독포사 박진(朴晉)과 도원수 군관 박종남(朴宗男)이 군사를 이끌고 고령과 초계 지경에 진을 쳤는데, 적병이 어제 이미 초계에 들어왔다 합니다. 여기서 겨우 수십 리 거리라 인심이 위태롭고 두려워 잠깐도 보전하지 못합니다. 대개 우도 한 지경이 이미 텅 빈 땅이 되었고, 이 고을에 전라도에서 실어 온 군량 천여 섬도 밖에 드러내어 쌓여 있으니 적이 들이닥치면 모두 빼앗길 것입니다. 신이 차사원 흥덕 현감 이길(李佶)에게 잠시 후미진 곳으로 옮겨 두게 하였습니다.

유 총병의 군사가 오늘 대구에서 이곳으로 와 고을 남쪽 산 위에 진을 쳤는데 그 수가 많지 않습니다. 데려온 위관이 말하기를, 내일과 모레 총병이 또한 대군을 이끌고 이곳에 와 머무를 것이라 합니다. 신이 품첩을 지어 사람을 달려 보내 구원을 청하였으나 들어줄지 어떨지 알지 못합니다.

신이 보건대 이 적은 흉악하고 교활하여 헤아릴 수 없습니다. 교묘한 꾀로 거짓 꾸며 명나라 군사를 조금 늦추어 놓고 삼키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 쪽은 군사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 날로 무너져 갑니다. 보잘것없는 남쪽의 보루는 오직 진주 한 고을만 믿었고 날랜 장수와 정예 군사가 많이 성 안에 들어가 있었는데, 이제 또 이렇게 되었으니 그저 가슴을 칠 뿐입니다.

본도의 좌도와 우도는 땅이 아득히 멀어 공문이 오가는 데 걸핏하면 여러 날이 걸리고, 경주 등지는 더욱 비고 성깁니다. 김명원이 또 갈려 가고 새 원수 권율(權慄)은 호남 지경에 있으며, 호남 여러 고을 수령도 명나라 군사 뒷바라지 때문에 모두 밖에 나가 있어 도내가 거의 텅 비어 대응할 길이 없으니 더욱 걱정스럽습니다.

협주 1

七月五日

칠월 닷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