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가 함락된 뒤 본도의 형세가 위태롭고 급박함을 달려 아뢰는 장계馳。啓晉州陷沒後本道事勢危迫狀
晉州之陷雖因賊兵浩大而䇿應之失亦爲可慨臣在京時聞牧使徐體元以。天兵支待差使員來在成昌卽移文以爲晉州朝夕將被兵守城之官豈宜遠出使速還送而遷延不還及聞賊兵已迫然後僅得入城防備等事不能預先措置一也且其諸將率客兵多聚城中而無統制之人各執所見未免紛雜二也諸將當初不量事勢輕爲進陣於咸安及賊兵大至狼狽奔還致賊乘勝三也鼎津若列軍固守則賊或不敢四面俱進而率皆棄去賊兵水陸俱進晋州未陷之前宜寧三嘉丹城鎭海固城泗川之地賊皆雲合援兵路斷四也諸將崔遠宣居怡以下所率之軍甚多雖不能直至城下救援而或爲疑兵或爲夜襲力盡乃已可也而率皆逃避山谷一不出頭晋州之人日望援至祝手呼天而竟無一人來救遂至於陷城屠戮之慘不可忍聞諸將聞晋州失守率皆遺退今不知在於何處而其所經過之邑倉糓皆縱其軍士破散無遺其中崔遠所率之軍作亂尤甚極爲痛心督捕使朴晋助防將朴名賢別將朴宗男等始自左道來亦以元帥之令將向湖南臣以爲此道旣無兵使諸將無一人見在者是委一道於賊手故朴晋等三人姑令仍留高靈把截待變且聽。天將指揮使傳令卽接伴官徐渻牒報內劉總兵已率其軍來駐高靈其先鋒之在陜川者發向咸陽且言總兵之意急欲進勦云云而未知畢竟如何李都督亦率軍來高靈而道內直路各站軍糧本道不能自辦僅以湖南之糓充備而遠處轉輸其數不敷今亦將竭而大軍方更至分散於各邑往來不定東西奔馳人力殫盡數日之後軍糧將無出處而湖南糧道僅有居昌一路本道亦被衝突則何暇更念他道之事百計千思不知所爲戶曹判書李誠中病重不省人事臥在咸昌路邊調度等事亦無料理之官惟。御史尹敬立及誠中從事官李自海分投各處督人催輸而物力殫竭極爲可慮卽又見左道監司馳報東海一帶賊船見形者甚多此豈盡爲漂到之船不無彼此俱發之患元帥金命元旣遞去權慄雖代爲元帥而方在全羅道道里懸絕無路䇿應大抵右道當時保全者只晋州居昌山陰安陰四邑而今者晉州山陰又被陷没獨有居昌安陰時無賊報而人民倉庫皆已空虛號令調發無處可施臣以庸殘無似大病之餘精力頓不逮於前時束手吁歎計無所出。朝廷急施長䇿以救顚危之勢
진주가 함락된 것은 비록 적병이 워낙 많은 탓이나, 대응을 그르친 것 또한 개탄할 만합니다.
신이 서울에 있을 때 목사 서체원(徐體元)이 명나라 군사 뒷바라지 차사원으로 성창(成昌)에 와 있다는 말을 듣고 곧 공문을 보내어, 진주가 조석으로 적을 맞게 될 터인데 성을 지킬 관원이 어찌 멀리 나와 있어서 되겠는가 하여 속히 돌려보내게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미적거리며 돌아가지 않다가 적병이 이미 다가왔다는 말을 듣고서야 겨우 성에 들어갔으니, 방비하는 일을 미리 마련하지 못한 것이 그 하나입니다. 또 여러 장수가 객병을 거느리고 성 안에 많이 모였으나 통솔할 사람이 없어 저마다 제 소견을 고집하여 어지러움을 면치 못하였으니 그 둘입니다. 여러 장수가 처음에 형세를 헤아리지 않고 가벼이 함안에 나아가 진을 쳤다가 적병이 크게 이르자 낭패하여 달아나 돌아와 적이 이긴 기세를 타게 하였으니 그 셋입니다. 정진에 군사를 벌여 굳게 지켰다면 적이 사면으로 함께 나아오지는 못하였을 터인데 모두 버리고 가 적병이 물과 뭍으로 함께 나아왔고, 진주가 함락되기 전에 의령·삼가·단성·진해·고성·사천 땅에 적이 모두 구름처럼 모여 원군의 길이 끊겼으니 그 넷입니다.
여러 장수 최원(崔遠)·선거이(宣居怡) 이하가 거느린 군사가 매우 많았으니, 비록 바로 성 아래에 이르러 구원하지는 못하더라도 더러 의병(疑兵)을 놓고 더러 밤에 들이쳐 힘을 다한 뒤에 그만두어야 옳았을 것인데, 모두 산골짜기로 달아나 숨어 한 번도 머리를 내밀지 않았습니다. 진주 사람들은 날마다 구원이 오기를 바라며 손 모아 하늘을 부르짖었으나 끝내 한 사람도 와서 구하지 않아, 마침내 성이 함락되고 도륙되는 참혹함에 이르렀으니 차마 들을 수 없습니다.
여러 장수는 진주를 잃었다는 말을 듣고 모두 물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이 지나간 고을의 창고 곡식은 군사들을 놓아두어 헐고 흩어 남은 것이 없습니다. 그 가운데 최원이 거느린 군사가 난동이 더욱 심하니 몹시 마음이 아픕니다.
독포사 박진(朴晉)과 조방장 박명현(朴名賢), 별장 박종남(朴宗男) 등이 비로소 좌도에서 왔는데, 또한 원수의 명으로 호남으로 향하려 하였습니다. 신은 생각하기를, 이 도에 이미 병사가 없고 여러 장수 가운데 한 사람도 남아 있는 이가 없으니 이는 한 도를 적의 손에 맡기는 것이라 하여, 박진 등 세 사람을 우선 고령에 머물러 길을 막고 변을 기다리게 하며 명나라 장수의 지휘를 듣도록 영을 전하였습니다.
곧 접반관 서성(徐渻)의 첩정를 보니, 유 총병이 이미 군사를 이끌고 고령에 와 머무르고 합천에 있던 선봉은 함양으로 떠났으며, 또 총병의 뜻이 급히 나아가 치려 한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끝내 어떻게 될지는 알지 못합니다. 이 도독도 군사를 이끌고 고령에 왔습니다.
도내 곧은 길 각 참의 군량은 본도가 스스로 마련하지 못하여 겨우 호남 곡식으로 채워 먼 곳에서 실어 나르는데 그 수가 넉넉지 않아 이제 또한 바닥나려 합니다. 대군이 바야흐로 다시 이르러 여러 고을에 나뉘어 흩어지고 오가는 것이 일정하지 않아 동서로 내달리느라 사람의 힘이 다하였습니다. 며칠 뒤면 군량이 나올 곳이 없을 것이고, 호남의 곡식 길은 겨우 거창 한 길뿐인데 본도가 또 들이침을 당하면 어느 겨를에 다른 도 일을 다시 생각하겠습니까. 백 가지로 헤아리고 천 가지로 생각해도 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호조판서 이성중(李誠中)은 병이 위중하여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 채 함창 길가에 누워 있고, 조달하는 일도 처리할 관원이 없습니다. 오직 어사 윤경립(尹敬立)과 이성중의 종사관 이자해(李自海)가 곳곳으로 나뉘어 가 사람을 재촉해 실어 나르게 하나 물력이 다하여 몹시 걱정스럽습니다.
곧 또 좌도 감사의 급보를 보니 동해 일대에 모습을 드러낸 적선이 매우 많다 하는데, 이것이 어찌 다 떠내려온 배이겠습니까. 이쪽저쪽이 함께 일어날 걱정이 없지 않습니다. 원수 김명원(金命元)은 이미 갈려 가고 권율(權慄)이 대신 원수가 되었으나 바야흐로 전라도에 있어 길이 아득히 멀어 대응할 길이 없습니다.
대저 우도에서 그때 온전히 보전된 곳은 진주·거창·산음·안음 네 고을뿐이었는데, 이제 진주와 산음이 또 함락되었고 오직 거창과 안음만 아직 적의 기별이 없습니다. 그러나 백성과 창고가 모두 이미 비어 호령하여 사람을 뽑아 낼 데가 없습니다. 신은 용렬하고 잔약하여 보잘것없는 데다 큰 병을 앓은 뒤라 기력이 전만 훨씬 못합니다. 손을 묶은 채 탄식할 뿐 계책이 나오지 않습니다. 조정에서 급히 긴 계책을 베풀어 엎어지고 위태로운 형세를 구하소서.
협주 3
七月八日
칠월 여드레
저본은 「牧使徐體元」이나 진주목사 서예원(徐禮元)의 잘못으로 봄 — 본문은 저본대로 두었다.
저본은 「來在成昌」이나 뒤에 나오는 함창(咸昌)과 같은 곳으로 봄 — 본문은 저본대로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