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남의 위급한 형세를 갖추어 경략과 제독에게 구원을 청하고, 호조판서 이성중이 죽었으니 그 후임을 속히 내려보내기를 청하는 장계請具兩南危急之狀求救於經略提督且戶曹到書李誠中身死其代速爲差送狀
臣於本月初九日聞劉總兵在陜川馳往見之總兵頗從容談話臣極陳倭奴譎詐以和議緩。天兵使不救晋州而實行吞噬今本道與湖南危在朝夕懇乞馳救總兵言吾志不行無可言者似聞賊已向全羅若此道不能遮截則患不可勝言吾欲提兵往救曾招住居昌遼將使之來守高靈陜川然後吾欲行軍而號令不行然若實知湖南被兵則當隨儞等所言而赴救須討一地圖詳截道里由經之路以來且言此處無一將官軍兵亦無一人何耶臣對以諸將初聚咸安退保各處而聞晋州之陷皆潰散向湖南以去曾已。啓知國王必按律治罪但事勢危急如此望老爺亟速救濟總兵曰吾意亦然而不能自擅若體探全羅賊勢虛實則當卽進兵臣退具地圖一件又爲禀帖以呈總兵見畢猶言諸將不行其令不得自由之狀縷縷不已而卽多發擺撥兒哨探宜寧之賊不無進戰之意故臣姑留此日日苦勸進勦矣督捕使朴晋助防將朴名賢別將朴宗男只率疲兵五六百與。天將吳游擊把截草溪而崔遠李薲李時言則聞晋州城陷卽從居昌咸陽等處遁去未知在於何處自晋州之陷人心汹懼遠近之民荷擔以立而湖南聲息斷絕只見權慄移文朴晉處云倭賊已入求禮將向谷城南原以此觀之倭之犯湖南似爲的然不勝痛悶此處之賊如宜寧歧江等地設栅屯守其數甚多日日散出焚掠於陜川三嘉宜寧之境距陜川四十里望軍傳告總兵披掛令軍將發而聞賊退去乃止今日宜寧探候若來則臣當率巡察使金玏接伴官徐渻等庭立泣請計料糧餉支供本道則處處蕩致只以湖南諸邑出站轉輸艱難支度前來米饌今已垂盡近日則繼運路絕又全羅各邑之民來此者聞其道有賊變驚動逃散不能禁止今吳遊擊駐草溪陜川有劉總兵居昌又有遼將五人駐軍大丘密陽直路亦有往來。天兵或多或少出站諸邑隨其所往顚倒追隨人困馬疲氛力都盡千思百計不知所出卽刻金泉察訪馳報內戶曹判書李誠中又於本月初七日以病身死雖有督運。御史尹敬立而無調度重臣事事如此尤爲痛悶。朝廷急察兩南危急之勢連續致懇於經略提督衙門今雖已晚庶有萬一可救之望而調糧之人亦急時差出馳送毋乏軍興
신이 이달 초아흐레에 유 총병이 합천에 있다는 말을 듣고 달려가 만났습니다. 총병이 자못 조용히 이야기하므로, 신은 왜놈이 속임수로 화의를 내세워 명나라 군사를 늦추어 진주를 구하지 못하게 하고 실은 삼키는 짓을 행하였음을 다 말하고, 이제 본도와 호남이 조석으로 위태로우니 달려와 구해 주기를 간곡히 빌었습니다.
총병이 말하기를 「내 뜻이 행해지지 않으니 말할 것이 없다. 듣건대 적이 이미 전라로 향하였다 하니, 이 도를 막아 끊지 못하면 걱정을 이루 말할 수 없다. 내가 군사를 이끌고 가 구하려고 일찍이 거창에 머무는 요동 장수를 불러 고령과 합천을 와서 지키게 한 뒤에 군사를 내려 하였으나 호령이 행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호남이 적의 침범을 받은 것이 참으로 밝혀지면 마땅히 그대들 말대로 달려가 구하겠다. 모름지기 지도 하나를 구하여 길의 이수와 지나갈 길을 자세히 적어 오라」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이곳에는 장수와 군관 하나 없고 군병도 한 사람 없으니 어찌 된 일인가」 하였습니다.
신이 대답하기를, 여러 장수가 처음 함안에 모였다가 여러 곳으로 물러나 지켰는데 진주가 함락되었다는 말을 듣고 모두 무너져 흩어져 호남으로 갔으며, 이미 아뢰었으니 국왕께서 반드시 법에 따라 죄를 다스릴 것이다, 다만 형세가 이같이 위급하니 노야께서 빨리 구제해 주시기 바란다 하였습니다. 총병이 말하기를 「내 뜻도 그러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전라의 적세가 허실인지 살펴 알면 마땅히 곧 군사를 내겠다」 하였습니다.
신은 물러나 지도 한 벌을 갖추고 또 품첩을 만들어 올렸습니다. 총병이 다 보고서도 여러 장수가 제 영을 따르지 않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사정을 길게 늘어놓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곧 파발을 많이 내어 의령의 적을 살피게 하니 나아가 싸울 뜻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신은 우선 여기 머물며 날마다 애써 나아가 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독포사 박진(朴晉)과 조방장 박명현(朴名賢), 별장 박종남(朴宗男)은 지친 군사 오륙백 명만 거느리고 명나라 장수 오 유격과 함께 초계를 막아 끊고 있습니다. 최원(崔遠)·이빈(李薲)·이시언(李時言)은 진주성이 함락되었다는 말을 듣고 곧 거창·함양 등지로 달아나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진주가 함락된 뒤로 인심이 흉흉하고 두려워 멀고 가까운 백성이 짐을 진 채 서 있습니다. 호남의 소식은 끊겼고, 다만 권율(權慄)이 박진에게 보낸 공문에 왜적이 이미 구례에 들어가 곡성·남원으로 향하려 한다 하였습니다. 이로 보면 왜가 호남을 침범함이 틀림없는 듯하니 아프고 답답함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곳의 적은 의령·기강 같은 데에 목책을 세우고 진 쳐 지키는데 그 수가 매우 많습니다. 날마다 흩어져 나와 합천·삼가·의령 지경에서 불사르고 노략질합니다. 합천에서 사십 리 되는 곳에서 망군이 전해 알리자 총병이 갑옷을 걸치고 군사에게 영을 내려 떠나려다가, 적이 물러갔다는 말을 듣고 그쳤습니다. 오늘 의령의 정탐이 오면 신은 순찰사 김륵(金玏), 접반관 서성(徐渻) 등을 이끌고 뜰에 서서 울며 청하려 합니다.
군량을 대는 일을 헤아리면 본도는 곳곳이 결딴났고, 다만 호남 여러 고을이 참을 내어 실어 나르는데 어렵게 지탱하고 있습니다. 앞서 온 쌀과 반찬이 이제 다 되어 가고 요사이는 이어 나르는 길이 끊겼습니다. 또 전라 각 고을에서 여기 온 백성이 제 도에 적변이 있다는 말을 듣고 놀라 달아나 흩어지는데 금할 수 없습니다. 이제 오 유격은 초계에 머물고 합천에는 유 총병이 있으며 거창에는 또 요동 장수 다섯이 있고, 대구와 밀양 곧은 길에 진을 친 군사와 오가는 명나라 군사도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합니다. 참을 내는 여러 고을이 그 가는 곳을 따라 엎어지며 뒤쫓으니 사람은 지치고 말은 고달파 기력이 다하였습니다. 천 가지로 생각하고 백 가지로 헤아려도 나올 길을 모르겠습니다.
방금 금천 찰방의 급보에, 호조판서 이성중(李誠中)이 또 이달 초이레에 병으로 죽었다 합니다. 비록 독운어사 윤경립(尹敬立)이 있으나 군량을 조달할 중신이 없습니다. 일마다 이러하니 더욱 아프고 답답합니다. 조정에서 급히 양남의 위급한 형세를 살펴 경략과 제독의 아문에 잇달아 간곡히 청하소서. 이제 비록 늦었으나 만에 하나 구할 바람이 있을 것입니다. 군량을 조달할 사람도 급히 차출해 달려 보내어 군사 일에 모자람이 없게 하소서.
협주 2
七月十一日
칠월 열하루
편 이름의 저본은 「戶曹到書」이나 본문의 호조판서(戶曹判書)의 잘못으로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