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13 진사록

적세가 바야흐로 급하여 우선 본도에 머물다가 도원수가 온 뒤에 올라가겠다고 달려 아뢰는 장계馳。啓賊勢方急姑留本道待都元帥來到後上去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367자 · 낭독 2.9분

징비록 권13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臣祗承。召命上來行到軍威得本道左監司韓孝純馳報倭賊欲犯蔚山慶州云雖其所報未知虛實而事勢可憂卽書禀貼馳送于劉總兵請移兵近駐慶州以爲聲援當日韓孝純又馳報賊勢極熾蔚山彥陽梁山等處倭賊遍滿山野處處列陣衝斥上來之患迫在朝夕事勢甚急都元師巡邊使以下諸將方皆駐兵於右道及湖南之境急速指揮使之不分晝夜馳援以救危急之勢云云臣旣承。召命當急速上去而適緣道內賊變如此都元帥以下諸將無一留在道內者只有左兵使高彥伯在慶州而率飢羸數百之卒無望於捍禦方張之賊慶州危急只在朝夕而上道諸邑守令皆因出站不還人民飢餓癘疫大熾丁壯死亡殆盡餘存者僅屬聲氣雖欲呼集軍兵以爲救援之計其路無由韓孝純欲臣少留指揮諸將誠出於悶迫臣卽時傳通於元帥使之登時處置惟是全羅道距此絕遠而賊兵已在慶州數十里之近設使來犯將不能及來而臣承。命中路遲滯且未免干預軍事極爲惶恐姑看數日待都元師來本道後卽時上去計料

신이 부르시는 명을 삼가 받들고 올라오다가 군위에 이르러 본도 좌감사 한효순(韓孝純)의 급보를 받으니, 왜적이 울산과 경주를 침범하려 한다 하였습니다. 비록 그 보고가 허실인지 알 수 없으나 형세가 걱정스러워, 곧 품첩을 써 유 총병에게 달려 보내 군사를 옮겨 경주 가까이 머물러 성원이 되어 주기를 청하였습니다.

그날 한효순이 또 급보하기를, 적세가 몹시 치성하여 울산·언양·양산 등지에 왜적이 산과 들에 가득하고 곳곳에 진을 벌였으며, 찌르고 밀치며 올라올 걱정이 조석에 닥쳐 형세가 매우 급하다, 도원수와 순변사 이하 여러 장수가 바야흐로 다 우도와 호남 지경에 군사를 머무르고 있으니 급히 지휘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와 위급한 형세를 구하게 하라 하였습니다.

신이 이미 부르시는 명을 받들었으니 마땅히 급히 올라가야 하나, 마침 도내 적변이 이러하고 도원수 이하 여러 장수 가운데 도내에 머물러 있는 이가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좌병사 고언백(高彥伯)이 경주에 있으나 굶주리고 여윈 군사 수백을 거느렸을 뿐이니 바야흐로 날뛰는 적을 막을 가망이 없고, 경주의 위급함이 조석에 달렸습니다. 상도 여러 고을 수령은 다 참을 내는 일로 나가 돌아오지 않았고, 백성은 굶주리고 돌림병이 크게 번져 장정이 거의 다 죽었으며 남은 자는 겨우 숨을 붙이고 있습니다. 비록 군병을 불러 모아 구원할 계책을 삼으려 해도 그 길이 없습니다.

한효순이 신에게 조금 머물러 여러 장수를 지휘해 주기를 바라니 참으로 답답하고 절박한 데서 나온 것입니다. 신은 곧 원수에게 알려 그 자리에서 처치하게 하였습니다. 다만 전라도가 여기서 아주 멀고 적병은 이미 경주에서 수십 리 가까이 있으니, 설사 와서 구원하더라도 미처 닿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신이 명을 받들고도 중로에서 지체하며 또 군사 일에 간여함을 면치 못하니 몹시 황공합니다. 우선 며칠 보아 도원수가 본도에 온 뒤에 곧 올라갈 셈입니다.

협주 1

七月

칠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