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13 진사록

병으로 벼슬을 깎아 파해 주기를 청하는 장계以病請鐫罷職名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453자 · 낭독 4분

징비록 권13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臣自四月以後大病之餘氣力柴敗病未盡差而以南方事勢危急不敢自安於遠地遂扶病馳下道中又聞右道事急晝夜疾馳因奔走於高靈草溪之間雖無補絲毫而賤病則日漸沉劇尋常寒熱往來洩瀉無度引飲煩燥食氣專廢當此之時所當以死爲限不敢言病及奉。召命感激惶恐趁日起程行到江原道原州路次敬奉宣傳官賫來。聖旨又回向堤川是日風雨大作山路艱險病遂加發寸寸前進全忠州而幾不能運身留一日踰嶺抵聞慶更留一日冒死進程到路中犬灘地不省人事顚仆於草野之中數日內症勢乍寒乍熱有似痎瘧臣自量病入膏肓皮骨相粘見者皆謂面無人色而國事方急傳聞吳遊擊劉總兵皆已發還尙州殊無久住之意道內糧餉已竭湖南運糧不繼戶曹判書李誠中身死已經一月而代員不來運糧餉軍之事日益虛疎將不成貌樣臣旣晚來此道不知頭緒往來道路之間時日蹉過事機愈遠身又病憊如許不堪馳驅擲奸檢擧亦難如意伏念賊兵時方屯據兇謀難測而在我事勢一日危於一日萬一。天兵以無食迫寒捲去賊遂乘虛衝突則未知何以爲計此臣之所以俯仰寒心而中夜拊膺者也。朝廷遠於千里此間事情容有未及盡知者如臣淺病速許鐫罷更遣重臣之有識慮能辦大事者晝夜星馳以濟國事

신은 사월 뒤로 큰 병을 앓은 나머지 기력이 마른 나무처럼 무너졌고, 병이 채 낫지 않았으나 남방 형세가 위급하여 감히 먼 곳에서 편안할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병을 무릅쓰고 달려 내려가던 길에 또 우도가 위급하다는 말을 듣고 밤낮으로 빨리 달려 고령과 초계 사이를 분주히 다녔습니다. 비록 터럭만큼도 보탬이 없었으나 천한 몸의 병은 날로 점점 깊어져, 늘 춥고 열이 오가며 설사가 그지없고 물만 켜고 답답하여 먹는 기운이 아주 끊겼습니다. 이런 때에 마땅히 죽기로 한정할 뿐 감히 병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부르시는 명을 받들고는 감격하고 황공하여 날을 다투어 길을 나섰습니다. 강원도 원주 길에 이르러 선전관이 가져온 성지를 삼가 받들고 또 제천으로 돌아 향하였습니다. 이날 비바람이 크게 일고 산길이 험하여 병이 마침내 더쳤습니다. 한 걸음씩 나아가 충주에 이르러서는 거의 몸을 움직이지 못하여 하루를 머물고, 고개를 넘어 문경에 이르러 다시 하루를 머물렀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길을 나아가 도중 견탄 땅에 이르러서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풀밭 가운데 엎어졌습니다. 며칠 안에 증세가 잠깐 춥고 잠깐 열이 나 학질과 비슷합니다. 신이 스스로 헤아리건대 병이 고황에 들어 살가죽과 뼈가 서로 붙었고, 보는 이마다 낯에 사람 빛이 없다 합니다.

그런데 나랏일은 바야흐로 급합니다. 전해 듣건대 오 유격과 유 총병이 다 이미 상주로 돌아가 오래 머물 뜻이 전혀 없다 합니다. 도내 군량은 이미 바닥났고 호남에서 나르는 곡식은 잇지 못합니다. 호조판서 이성중(李誠中)이 죽은 지 이미 한 달이 지났는데 대신할 관원이 오지 않아, 곡식을 나르고 군사를 먹이는 일이 날로 더욱 허술해져 꼴이 되지 않으려 합니다.

신은 이미 늦게 이 도에 와 두서를 알지 못하고, 길에 오가는 사이에 날짜만 어긋나 지나가 일의 기회가 더욱 멀어집니다. 몸은 또 병들고 지친 것이 이러하여 달려 다니기를 견디지 못하고, 살펴 밝히고 단속하는 일도 뜻대로 하기 어렵습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적병이 바야흐로 진 치고 웅거하여 흉악한 꾀를 헤아리기 어렵고, 우리 쪽 형세는 하루가 하루보다 위태롭습니다. 만일 명나라 군사가 먹을 것이 없고 추위가 닥친다 하여 거두어 가고 적이 빈틈을 타 들이치면 무엇으로 계책을 삼을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것이 신이 굽어보고 우러러보며 마음이 서늘하고 한밤중에 가슴을 치는 까닭입니다.

조정은 천 리 밖에 멀리 있어 이곳 사정을 미처 다 알지 못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신처럼 얕고 병든 자는 속히 벼슬을 깎아 파하기를 허락하시고, 다시 식견과 사려가 있어 큰일을 해낼 만한 중신을 보내어 밤낮으로 별같이 달려 나랏일을 구하게 하소서.

협주 1

八月十六日

팔월 열엿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