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13 진사록

군량 나르는 폐단을 아뢰는 장계陳運糧之獘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1,559자 · 낭독 13.3분

징비록 권13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臣竊詳軍糧散失有三獘處置有三難而繼粟之䇿乃其第一急務也當初嶺南賊勢未退之日湖南軍糧輸到嶺路方俟賊遁而星州亂民假作倭形聲言賊至不意突出負戴之人擧皆驚散亂民恣意偷取散失之數幾至三百石此則臣未到前事也卽今各官徵還見偷之數矣頃日晉州旣陷賊向溯南聲息甚急湖南軍糧輸至雲峯南原任實之間者其數亦多而將其糓物或委棄道路或徑還其家若其旣入嶺界未至站所者則到處拘留接餉。天兵而事出倉皇文簿錯亂不可准信今方文移兩南監司推覈散失俵給之數矣大抵湖南各官軍糧輸運之時計其田結人馬之數准給軍糧付之監官色吏之手盤桓中路耗費萬端而及聞虛警潰散遺失如前所陳此乃軍糧在路散失之一獘也臣意後運軍糧輸運時則或以剛明守令或以秩高軍官分路定差使員各官受出時一一計給約日到境上點閱領納于站所則可無在路散失之獘矣湖南軍糧到站後即欲畢捧積峙一處而嶺南無倉厫人力可以藏守且一應刷馬事資軍糧載持馬一捧之後則必皆逃還不得已分授納者各自守直以到站先後逐日散料隨其畢散始聽選歸已成各站規例而日月旣久糧食自絕偷竊不已防奸無路或有恣行買賣者隨現痛治一二石耗欠則典賣牛馬卽加徵納而至於十石之外則各令本官分徵一族其畢徵輸納邈不可期矣至於劉吳諸將所駐處則軍兵自有元數散料時可無濫授之獘而各站無將留兵及道路往來哨卒自書帖字任意加數或有一人一馬而至於十者又持大斗自爲斗量散料官欲辨正濫帖猥量之事則橫加鞭箠莫敢誰何任其自取以有限軍糧何能塞其無窮之欲乎此乃軍糧到站散失之一獘也臣意典守偷竊之糓則遲速間本國地方官句當徵欠而天兵濫費之獘非臣等所能糾正且經理提督三將標下則劉吳號令亦不能禁抑自。朝廷下書于接伴使使得出提督禁標榜示嶺路則庶有畏戢之望矣大軍一帶分設站所儲峙紅料而頃日右道賊勢緊急遼將四五員自尙州移駐居昌咸陽劉吳兩將自海平大丘移駐陜川草溪自各站移送之糧不下千石或至軍前或在中路參錯於百里間而今又遽還本站分布之糧一朝還運其勢末由數少軍糧耗散於移來移去之日者不知其幾而糧料易絕專由於此此乃軍糧移來移去散失之一獘也臣意此則臣與地方官參究去處終當推還其數而備達移來移出散失之獘者欲其。朝廷洞知糧料遷移自就耗損之意也軍糧大米則不久將絕豆子則各站遺在通計萬餘石露積空地今已四月不蔽雨水腐朽太半誠爲可惜欲令嶺南守令看護則湖南納者必不受其檢勅而溯南守令則四五站只有一二員分守爲難此乃軍糧處置之一攤也臣意近觀賊勢進退。天兵去留納置一處以本官守令看護而湖南納者皆令還送其中尤其腐朽不合軍糧者則依前狀。啓各站飢民斟酌分賑宜當矣轉餉軍食會計爲重自有該曹掌之臣則自初隨其糧料有無督運繼餉而已一自戶曹判書病逝所率算員等散歸京城該曹文簿亦不分明臣只以各站用下遺在之數略加打算而前後扺捂取實爲難此乃軍糧處置之一難也臣意戶曹堂上郞廳中率筭員急速下送將兩南該曹元定及用下遺在之數一一會計俾無國糓耗散之獘宜當矣千里轉運自至欠縮旣有欠縮則不得不生徵當此公私俱竭之日刻期生徵則人不堪命若或少緩則徵欠無期生徵伸縮而民生休戚繫之伸縮得中公私兩便最是難處此乃軍糧處置之一難也臣意。朝廷令兩南監司各別留意使隨生徵便民生不至失業國糓不至欠縮宜當矣臣請以繼粟之策繼之今日賊勢不可以日月期賊勢未退則。天兵不還當初所備數月之糧今已罄矣繼粟之䇿一刻爲急而。朝廷未有指敎方伯未有處分督運一小臣徒自煎悶束手何爲爲今之計秋日尙晚早糓已登嶺南左右道付種處或以貢物作米或以田稅引納而又從以空名帖多般募粟則隨所得多少而可以添補軍食此事必須身自巡歷留連措置可得就緒而臣則急於劉吳轉餉不得暫離大路左右監司方因賊勢計不暇及臣誠痛悶焉前春督運宣傳官二員來在左右道而受。命有限界號令不遍且武官不能彈壓亦不爲有無於調度矣朝廷速爲處置調皮督運一時幷擧同力措置則彼此兩便而大事可濟矣自轉運使遞還戶曹判書病逝以來臣有意陳達而惶恐不敢有所云云今則賊勢如是糧絕如是左右上下道路絕遠未及周旋又如是謹此味死以。啓

신이 가만히 살피건대 군량이 흩어져 없어지는 데 세 가지 폐단이 있고 처치하는 데 세 가지 어려움이 있으며, 곡식을 잇대는 계책이 그 가운데 첫째로 급한 일입니다.

당초 영남의 적세가 물러가지 않았을 때 호남 군량을 고갯길까지 실어다 놓고 적이 달아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주(星州)의 난민이 왜적의 꼴을 거짓으로 꾸미고 적이 온다고 소리치며 뜻밖에 뛰쳐나오니, 지고 이고 가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 흩어졌습니다. 난민이 제 마음대로 훔쳐 가 잃은 수가 거의 삼백 석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신이 이르기 전의 일이요, 지금 각 고을에서 도둑맞은 수를 받아 내고 있습니다.

지난날 진주가 이미 함락되고 적이 소남(溯南)으로 향하여 소식이 몹시 급하였을 때, 호남 군량으로 운봉·남원·임실 사이에 실어 온 것이 그 수가 또한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곡물을 혹 길에 버리기도 하고 혹 지레 제 집으로 돌아가기도 하였습니다. 이미 영남 지경에 들어왔으나 참소(站所)에 이르지 못한 것은 이르는 곳마다 붙들어 두고 명나라 군사를 먹였는데, 일이 창황한 가운데 나와 문서가 어지러워 믿을 수 없습니다. 지금 바야흐로 두 도 감사에게 이문하여 흩어져 없어진 수와 나누어 준 수를 캐어 밝히고 있습니다.

대저 호남 각 고을이 군량을 실어 나를 때, 그 전결과 사람과 말의 수를 헤아려 군량을 내주고 감관과 색리의 손에 맡기니, 길 가운데서 머뭇거리며 온갖 모양으로 축나고, 헛된 경보를 들으면 무너져 흩어져 앞서 아뢴 것처럼 잃어버립니다. 이것이 군량이 길에서 흩어져 없어지는 한 폐단입니다.

신의 뜻으로는, 뒤에 군량을 실어 나를 때에는 혹 굳세고 밝은 수령이나 혹 품계 높은 군관으로 길을 나누어 차사원을 정하고, 각 고을에서 받아 낼 때 하나하나 헤아려 주며, 날을 정하여 지경에 이르러 점고하고 참소에 들이게 하면 길에서 흩어져 없어지는 폐단이 없을 것입니다.

호남 군량이 참소에 이른 뒤에는 곧 다 거두어 한곳에 쌓아 두고자 하나, 영남에는 감추어 지킬 만한 창고와 사람 힘이 없습니다. 또 한번 쇄마하는 일은 군량으로 밑천을 삼는데, 실어 온 말은 한번 바친 뒤에는 반드시 다 달아나 돌아갑니다. 마지못하여 바친 자에게 나누어 맡겨 각기 스스로 지키게 하고, 참소에 이른 앞뒤를 따라 날마다 먹을 몫을 나누어 주며 다 흩어진 뒤에야 비로소 가려 돌아가게 하니 이미 참마다 규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날이 오래되면 양식이 절로 끊기고 훔치기를 그치지 않으며 간사함을 막을 길이 없습니다. 혹 제멋대로 사고파는 자가 있으면 드러나는 대로 아프게 다스리고, 한두 석이 축나면 소와 말을 팔아 곧 더 받아 내며, 열 석이 넘으면 각기 본 고을로 하여금 일족에게 나누어 받아 내게 하나 다 받아 들이기는 아득히 기약할 수 없습니다.

유(劉)·오(吳) 여러 장수가 머무는 곳은 군병에게 절로 정한 수가 있어 먹을 몫을 나누어 줄 때 넘겨 주는 폐단이 없습니다. 그러나 참마다 장수 없이 머무는 군사와 길에 오가는 초졸이 스스로 받을 표를 적어 제 마음대로 수를 더하여, 혹 사람 하나에 말 한 필인데도 열에 이르는 자가 있습니다. 또 큰 말을 가지고 스스로 되질하니, 몫을 나누어 주는 관원이 부풀려 적은 표와 함부로 되질한 일을 바로잡으려 하면 함부로 채찍을 더하여도 감히 누가 무어라 하지 못하고 제 마음대로 가져가는 대로 둡니다. 한정 있는 군량으로 어찌 그 끝없는 욕심을 막겠습니까. 이것이 군량이 참소에 이른 뒤에 흩어져 없어지는 한 폐단입니다.

신의 뜻으로는, 맡아 지키다가 훔친 곡식은 더디든 이르든 우리나라 지방관이 맡아 축난 것을 받아 낼 것이나, 명나라 군사가 함부로 쓰는 폐단은 신들이 바로잡을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또 경리와 제독 아래 세 장수의 표하 군사는 유·오의 호령으로도 억눌러 금하지 못합니다. 조정에서 접반사에게 글을 내려 제독에게서 금하는 표를 얻어 내어 고갯길에 내걸게 하면 자못 두려워하여 그칠 바람이 있을 것입니다.

대군이 한 띠처럼 늘어선 곳에 참소를 나누어 베풀고 양료를 쌓아 두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날 우도의 적세가 긴급하여 요동 장수 네댓 사람이 상주에서 거창과 함양으로 옮겨 머물고, 유·오 두 장수가 해평과 대구에서 합천과 초계로 옮겨 머물렀습니다. 참마다 옮겨 보낸 양식이 천 석을 밑돌지 않아, 혹 군사 앞에 이르고 혹 길 가운데 있어 백 리 사이에 뒤섞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또 갑자기 본 참으로 돌아가니, 나누어 펴 둔 양식을 하루아침에 도로 나르려 하나 그 형세가 될 길이 없습니다. 수 적은 군량이 옮겨 오고 옮겨 가는 날에 축나고 흩어진 것이 얼마인지 알지 못하니, 양료가 쉬 끊기는 것은 오로지 이 때문입니다. 이것이 군량이 옮겨 오고 옮겨 가는 사이에 흩어져 없어지는 한 폐단입니다.

신의 뜻으로는, 이는 신이 지방관과 함께 간 곳을 캐어 밝혀 끝내 마땅히 그 수를 찾아 돌리겠습니다. 옮겨 오고 옮겨 나가며 흩어져 없어지는 폐단을 갖추어 아뢰는 것은, 조정이 양료가 옮겨 다니는 것만으로도 절로 축나고 줄어드는 뜻을 환히 아시게 하려는 것입니다.

군량 가운데 흰쌀은 오래지 않아 장차 끊길 것이요, 콩은 참마다 남은 것이 통틀어 만여 석인데 빈터에 드러내어 쌓아 이제 넉 달이 되도록 빗물을 가리지 못하여 반 넘어 썩었으니 참으로 아깝습니다. 영남 수령에게 보살피게 하고자 하면 호남에서 바친 자가 반드시 그 단속을 받지 않을 것이요, 소남 수령은 네댓 참에 다만 한두 사람뿐이라 나누어 지키기 어렵습니다. 이것이 군량을 처치하는 한 어려움입니다.

신의 뜻으로는, 요사이 적세의 나아가고 물러남과 명나라 군사의 가고 머묾을 보아 한곳에 들여 두고 본 고을 수령으로 보살피게 하며, 호남에서 바친 자는 다 돌려보내게 하소서. 그 가운데 더욱 썩어 군량에 맞지 않는 것은 앞서 올린 장계대로 참마다 굶주린 백성에게 헤아려 나누어 진휼함이 마땅합니다.

군량을 옮겨 군사를 먹이는 일은 회계가 중한데 절로 해당 조가 맡아 보는 바가 있고, 신은 처음부터 양료가 있고 없음을 따라 독운하여 잇대어 먹였을 뿐입니다. 호조판서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로 거느리던 산원들이 흩어져 서울로 돌아가 해당 조의 문서 또한 분명하지 않습니다. 신은 다만 참마다 쓴 것과 남은 수로 대강 셈할 뿐이라 앞뒤가 어긋나 실상을 잡기 어렵습니다. 이것이 군량을 처치하는 한 어려움입니다.

신의 뜻으로는, 호조의 당상과 낭청 가운데 산원을 거느리고 급히 내려 보내어, 두 도에서 해당 조가 본디 정한 수와 쓴 것과 남은 수를 하나하나 회계하여 나라 곡식이 축나고 흩어지는 폐단이 없게 함이 마땅합니다.

천 리를 옮겨 나르면 절로 모자람에 이르고, 이미 모자람이 있으면 생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과 사가 다 마른 이때에 날을 못 박아 생징하면 사람이 명을 견디지 못하고, 혹 조금 늦추면 축난 것을 받아 낼 기약이 없습니다. 생징을 늦추고 죄는 데 백성의 살고 죽음이 달려 있으니, 늦추고 죄는 것이 알맞으면 공과 사가 다 편합니다. 이것이 가장 어려운 자리요, 군량을 처치하는 한 어려움입니다.

신의 뜻으로는, 조정이 두 도 감사로 하여금 각별히 마음을 두어 형편을 따라 생징하되 백성을 편하게 하여, 백성의 삶이 생업을 잃는 데 이르지 않고 나라 곡식이 모자라는 데 이르지 않게 함이 마땅합니다.

신은 곡식을 잇대는 계책으로 이어 아룁니다. 오늘의 적세는 날과 달로 기약할 수 없습니다. 적세가 물러가지 않으면 명나라 군사가 돌아가지 않을 것인데, 당초 마련한 두어 달 양식은 이제 이미 다하였습니다. 곡식을 잇대는 계책이 한시가 급한데 조정에서는 지시하신 것이 없고 방백은 처분한 것이 없어, 독운하는 한 작은 신하가 한갓 스스로 애타할 뿐 손을 묶고 무엇을 하겠습니까.

이제의 계책으로는, 가을날이 아직 늦지 않았고 이른 곡식은 이미 익었으니, 영남 좌우도의 씨 뿌린 곳에서 혹 공물을 쌀로 바꾸거나 혹 전세를 끌어들여 받고, 또 이어 공명첩(空名帖)으로 여러 가지로 곡식을 모으면 얻는 바 많고 적음을 따라 군량에 보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일은 반드시 몸소 두루 다니며 머물러 조처하여야 실마리를 잡을 수 있으나, 신은 유·오에게 양식 옮기는 일이 급하여 잠시도 큰길을 떠나지 못하고, 좌우도 감사는 바야흐로 적세 때문에 거기까지 헤아릴 겨를이 없으니 신은 참으로 아프고 답답합니다.

지난봄에 독운 선전관 두 사람이 좌우도에 와 있으나 받은 명에 한계가 있어 호령이 두루 미치지 못하고, 또 무관이라 눌러 잡지 못하여 조달에 있으나 마나 합니다. 조정에서 속히 처치하시어 조달과 독운을 한때에 아울러 거행하여 힘을 같이하여 조처하게 하면 이쪽저쪽이 다 편하고 큰일을 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전운사가 갈려 돌아가고 호조판서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로 신이 아뢸 뜻이 있었으나 황공하여 감히 무어라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제는 적세가 이러하고 양식이 끊긴 것이 이러하며, 좌우와 위아래로 길이 멀어 두루 돌보지 못함이 또 이러하므로, 삼가 이에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협주 6

저본은 「儲峙紅料」이나 「紅」은 「糧」의 잘못으로 보아 양료로 읽음.

저본은 「處置之一攤」이나 「攤」은 「難」의 잘못으로 보아 어려움으로 읽음.

저본은 「調皮督運」이나 「皮」는 「度」의 잘못으로 보아 조달(調度)로 읽음.

저본은 「味死以啓」이나 「味」는 「昧」의 잘못으로 보아 죽음을 무릅쓰고로 읽음.

양료(糧料) — 군사에게 대는 양식이다.

생징(生徵) — 없어진 것을 백성에게서 다시 거두어 받아 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