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13 진사록

송산에 모신 옥체를 봉심하고 달려와 아뢰는 장계松山所安。靖陵玉體奉審後馳。啓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183자 · 낭독 1.7분

징비록 권13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臣於前日。宣靖陵奉審時病未進參今月十八日始隨諸宰之後奉審松山所安。玉體則頭面上毛髮盡脫皮骨粘槁自脛以下肉盡骨在大槪顯是年久之體而胷腹及背則皮厚而堅凝不見骨節胷上甚高背後左邊肩甲有穴痕一大一小相距一分許所見惟此耳其他皆不可辨伏念此乃變中之極變辨別少差則事不忍言臣後生味識罔極之中不敢輕議如何惟在更加精審參以。陵上形止幷搜索近陵處古塚破壞與否多般訪求或爲神明所佑萬一有得實之望

신은 지난날 선릉(宣陵)과 정릉(靖陵)을 봉심할 때 병으로 나아가 참예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달 열여드렛날에야 비로소 여러 재신의 뒤를 따라 송산에 모신 옥체를 봉심하였습니다.

머리와 얼굴 위의 털은 다 빠졌고 살가죽과 뼈가 붙어 말랐으며, 정강이 아래로는 살이 다하고 뼈만 남았습니다. 대개 해가 오래된 몸인 것이 뚜렷합니다. 가슴과 배와 등은 살가죽이 두껍고 단단히 엉겨 뼈마디가 보이지 않으며 가슴 위가 몹시 높았습니다. 등 뒤 왼편 어깻죽지에 구멍 자국이 있는데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으며 서로 한 푼쯤 떨어져 있었습니다. 본 것은 오직 이뿐이요 그 밖은 다 가려낼 수 없었습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이는 변고 가운데 지극한 변고입니다. 가려 나눔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일을 차마 말할 수 없습니다. 신은 뒤에 난 사람이라 아는 것이 없고 망극한 가운데 감히 가벼이 의논하지 못하겠습니다. 오직 다시 더 정밀히 살피고 능 위의 형상과 견주며, 아울러 능 가까운 곳의 옛 무덤이 헐렸는지 아닌지를 찾아 여러 가지로 물어 구하면, 혹 신명이 도우시어 만에 하나라도 실상을 얻을 바람이 있을 것입니다.

협주 1

八月

팔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