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14 진사록

수로를 아울러 막게 하고 부사 노직을 함께 내보내기를 청하는 장계請兼防水路副使盧稷幷爲出送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675자 · 낭독 5.2분

징비록 권14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臣伏承有。旨賊兵已陷晉州今臣率兵把守京畿忠淸之界故臣今自龍津將向水原陽城之間壬辰之變賊兵分三路內犯都城二路由忠州而從驪州淸心樓前江渡涉出於京城之左一路由淸州鎭川之路而出於漢江今此賊兵亦有分路之勢雖聲言專向湖南而未知兇鋒定出於何地當初京畿分付則以左後營之軍屬於左防禦使而把守沿江數百里之地前在營之軍則分守秃城陽城二處而已近日。天兵支待之事百役叢集本道盡以各處束伍之軍充供其役奔走無暇故其勢不得盡聚一處以爲防備之計只以其中稍解操弓者抄出若干分守各處其數零瑣不敷且沿江上下之軍不能撒備而移用於右道右道之軍又不可捨其信地而合用於左道兩處形勢皆爲孤單此乃京畿防守形止難易之勢也如不能已則平安黃海道軍人依臣前日約束盡數徵召屯守於前面臣隨力䇿應則或有萬分之望。朝延急速商量處置今日之勢與壬辰有異水路陸路一時俱急如晉州等處皆是海邊也或此言之則陸路猶有。天兵駐在湖南而道里稍遠水路則蕩然無礙傅聞前日永登敗軍時忠淸道格軍奔還者乘破船五日到牙山云水路迫近據此可知萬一賊船乘虛直犯則京畿水路尤可寒心臣雖有一處而道路隔遠豈能遍及料理乎外方凡事監司爲主而臣則乃是檢勅之任故自前凡有號令皆移文於監司而監司又傳令於各處將官及守令以存體統近以京城。天兵支供及西路將官迎候事監司奔走不暇長在京城而前面軍務及調糧器械等事未能顧察臣獨出來有似無主之事文移往復動經時日百事遲緩皆無着手處此亦事勢之至悶而極難者也若令巡察使洪履祥幷出巡歷而分道䇿應則水陸之形似可相連而於事或有少補故惶恐敢禀亦令。朝廷急速商量有所區處副使盧稷初以兵曹判書李恒福呈辭而參判獨在故未能一時出來今事勢甚急盧稷亦令出來同在一處料理事務

신은 적병이 이미 진주를 함락하였다는 유지를 삼가 받들었습니다. 이제 신이 군사를 거느리고 경기와 충청 지경을 지키는 까닭에, 신은 지금 용진에서 수원과 양성 사이로 향하려 합니다.

임진년 변에 적병이 세 길로 나뉘어 도성으로 쳐들어왔는데, 두 길은 충주를 지나 여주 청심루 앞 강으로 건너 서울 왼편으로 나왔고, 한 길은 청주와 진천 길로 말미암아 한강으로 나왔습니다. 이번 적병도 길을 나눌 형세가 있습니다. 비록 오로지 호남으로 향한다고 소리치나 흉한 칼끝이 어느 땅으로 정하여 나올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당초 경기에 분부한 것은, 좌후영 군사를 좌방어사에 붙여 강가 수백 리 땅을 지키게 하고 전재영 군사는 독성과 양성 두 곳을 나누어 지키게 한 것뿐입니다. 요사이 명나라 군사를 뒷바라지하는 일로 온갖 부역이 몰려, 본도가 각처 속오군을 다 그 역에 채워 이바지하느라 분주하여 겨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세가 다 한곳에 모아 방비할 계책을 삼지 못하고, 다만 그 가운데 활을 좀 다룰 줄 아는 자를 뽑아 약간을 각처에 나누어 지키게 하니 그 수가 자질구레하여 넉넉하지 못합니다. 또 강가 위아래 군사를 거두어 우도로 옮겨 쓸 수 없고, 우도 군사도 그 믿는 자리를 버리고 좌도에 합쳐 쓸 수 없어 두 곳 형세가 다 외롭고 홑집니다. 이것이 경기를 막아 지키는 형편의 어렵고 쉬운 형세입니다.

만일 마지못할 것이면, 평안도와 황해도 군인을 신이 전날 약속한 대로 수를 다 불러 모아 앞면에 진 치고 지키게 하고 신이 힘을 따라 응변하면 혹 만에 하나라도 바랄 것이 있을 것입니다. 조정은 급히 헤아려 처치하소서.

오늘의 형세는 임진년과 다릅니다. 물길과 뭍길이 한때에 다 급하니, 진주 같은 곳은 다 바닷가입니다. 이로 말하면 뭍길은 그래도 명나라 군사가 호남에 머물러 있으나 길이 자못 멀고, 물길은 텅 비어 막을 것이 없습니다. 전해 듣건대 전날 영등에서 군사가 패하였을 때 충청도 격군으로 달아나 돌아온 자가 부서진 배를 타고 닷새 만에 아산에 이르렀다 합니다. 물길이 가까움을 이로써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적의 배가 빈틈을 타 곧바로 침범하면 경기 물길은 더욱 한심합니다. 신이 비록 한 몸이 있으나 길이 멀리 떨어졌으니 어찌 두루 미쳐 헤아리겠습니까.

바깥 고을의 모든 일은 감사가 주인이 되고 신은 곧 검칙하는 소임입니다. 그러므로 전부터 무릇 호령이 있으면 다 감사에게 공문을 보내고 감사가 또 각처 장수와 군관과 수령에게 영을 전하여 체통을 보존하였습니다. 요사이 서울의 명나라 군사 이바지와 서쪽 길로 오는 장수와 군관을 맞이하는 일로 감사가 분주하여 겨를이 없어 늘 서울에 있고, 앞면의 군무와 군량을 조달하고 병기를 갖추는 등의 일은 돌아보아 살피지 못합니다. 신이 홀로 나와 주인 없는 일 같아서, 문서를 주고받는 데 걸핏하면 며칠이 지나 온갖 일이 더디고 느려 다 손댈 곳이 없습니다. 이 또한 사세의 지극히 딱하고 몹시 어려운 것입니다.

만일 순찰사 홍이상(洪履祥)으로 하여금 아울러 나와 순행하며 길을 나누어 응변하게 하면, 물과 뭍의 형세가 서로 이어질 듯하여 일에 혹 조금 보탬이 있을 것이므로 황공히 감히 여쭙니다. 또한 조정으로 하여금 급히 헤아려 구처함이 있게 하소서. 부사 노직(盧稷)은 처음에 병조판서 이항복(李恒福)이 사직을 올리고 참판만 홀로 있는 까닭에 한때에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사세가 몹시 급하니 노직도 나오게 하시어 한곳에 함께 있으면서 일을 헤아려 다스리게 하소서.

협주 1

丁酉八月

정유년 팔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