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죽·죽산을 버리고 먼저 여주 방비를 조치하며 우방어사를 속히 내려보내기를 청하는 장계請舍陰竹竹山先爲措置驪州防守且右防禦使速爲差送狀
本月初十日右副承旨成帖今聞倭賊一連出没於晋州宜寧之境一運由洛東江上來云不無直向京城之慮忠州雖駐吳總兵一枝之軍而形勢孤弱京畿防禦使抄擇精兵進駐於陰竹竹山之境遙爲忠州聲援事有。旨書狀臣在黃州道中祗受京師防守大勢只以長江爲重而軍兵寡弱防備虛疎果如有。旨辭緣臣出城之日卽巡歷江邊馳到龍津則左防禦使邊應星方抄率後營朿伍軍兵九百餘名幷龍津留陣僧軍百餘名措置防灘等事而更念上流形勢驪州一路尤重於龍津蓋以壬辰之變賊兵由忠州直到驪州從前江以渡此處不守則雖有龍津亦難保其必守故後營軍及龍津陣軍則仍留龍津使之把截其處而又令邊應星馳到婆娑城更聚左營所屬一等被選軍兵屯駐待變事約束臣則因前有。旨更向右道水原陽城之境欲以措置防遏湖南直上之路今承有。旨知賊一運由洛東江上來鳥嶺衝突之勢尤爲切迫更欲往來上流申飭防備但彼我之勢衆寡强弱有異則當擇地據險以爲支撑之計賊兵已踰鳥嶺之後則我軍當守江面竹山陰竹皆非駐軍遮截之所若盡撤江面分部之軍前赴空虛之地糧運不繼進退無據則似非得計且驪州距忠州與陰竹竹山道路頗近雖欲爲忠州聲援似不當舍呂州而移就於陰竹竹山。朝廷更加商度形勢指授便宜竹嶺之路通於原州堤川鳥嶺之路通於忠州京畿等處若令江原道之軍屯守原州而京畿之軍運勢屯駐呂州以爲忠州形援且不失江山之險則緩急稍可得力至於竹山直路則蕩然無形無一可據而賊兵或分出左右之路一路出呂州利川之路一路出陽城安城之路則陰竹竹山雖有些少軍兵而難望遮截此一道形勢大槪也大抵道內武將只有一邊應星而專防上流右道尙無防禦使凡抄軍措置䇿應等事皆不能成形臣前在備邊司見防禦使可堪者難得其人未得差出然不可以無其人而闕其任以誤事機聞前府使吳彥良時無所任云此人或可差送臣未知彥良之爲人而事勢悶迫不得已擧名陳禀亦令備邊司商量可合與否急速區處
이달 초열흘 우부승지가 성첩한 유지 서장을 신은 황주 길 가운데서 삼가 받들었습니다. 「이제 들으니 왜적이 잇따라 진주와 의령 지경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고 한 떼는 낙동강을 따라 올라온다 하니, 곧바로 서울로 향할 염려가 없지 않다. 충주에 비록 오총병의 한 갈래 군사가 머물러 있으나 형세가 외롭고 약하다. 경기방어사로 하여금 날랜 군사를 뽑아 음죽과 죽산 지경에 나아가 머물게 하여 멀리 충주를 성원하게 하라」 하신 것이었습니다.
서울을 막아 지키는 큰 형세는 다만 긴 강을 무겁게 여길 뿐인데, 군병이 적고 약하며 방비가 허술한 것이 과연 유지의 말씀과 같습니다. 신이 성을 나온 날 곧 강가를 두루 돌아 용진에 달려 이르니, 좌방어사 변응성(邊應星)이 바야흐로 후영의 속오군 구백여 명을 뽑아 거느리고 용진에 머물러 진 친 승군 백여 명과 아울러 여울을 막는 일들을 조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상류의 형세를 생각하니 여주 한 길이 용진보다 더욱 무겁습니다. 대개 임진년 변에 적병이 충주로 말미암아 곧바로 여주에 이르러 앞 강을 따라 건넜으니, 이곳을 지키지 못하면 비록 용진이 있어도 반드시 지켜 내리라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후영 군사와 용진에 진 친 군사는 그대로 용진에 머물러 그곳을 막아 끊게 하고, 또 변응성으로 하여금 파사성에 달려 이르러 좌영에 딸린 일등으로 뽑힌 군병을 다시 모아 둔쳐 변을 기다리게 할 일로 약속하였습니다.
신은 앞서 받든 유지에 따라 다시 우도의 수원과 양성 지경으로 향하여 호남에서 곧바로 올라오는 길을 막아 끊을 일을 조치하려 하였습니다. 이제 유지를 받들어 적 한 떼가 낙동강을 따라 올라오는 줄 아니 조령으로 부딪쳐 올 형세가 더욱 절박합니다. 다시 상류를 오가며 방비를 거듭 단속하려 합니다.
다만 저와 우리의 형세가 수의 많고 적음과 힘의 강하고 약함이 다르니, 마땅히 땅을 가려 험한 곳에 의지하여 버틸 계책을 삼아야 합니다. 적병이 이미 조령을 넘은 뒤면 우리 군사는 마땅히 강 쪽을 지켜야 합니다. 죽산과 음죽은 다 군사를 머물러 막아 끊을 곳이 아닙니다. 만일 강 쪽에 나누어 둔 군사를 다 거두어 텅 빈 땅으로 나아가면, 군량 운반이 이어지지 않고 나아가고 물러남에 의지할 데가 없으니 얻은 계책이 아닌 듯합니다. 또 여주는 충주와의 거리가 음죽·죽산과 견주어 길이 자못 가까우니, 비록 충주를 성원하고자 하여도 여주를 버리고 음죽·죽산으로 옮겨 나아감은 마땅하지 않은 듯합니다. 조정은 다시 형세를 헤아려 편의를 지시하소서.
죽령 길은 원주와 제천으로 통하고 조령 길은 충주와 경기 등처로 통합니다. 만일 강원도 군사로 원주를 둔쳐 지키게 하고 경기 군사는 형세를 따라 여주에 둔쳐 충주를 성원하게 하며 또 강과 산의 험함을 잃지 않으면, 급할 때 조금이나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죽산 곧은길에 이르러서는 툭 트여 형세라 할 것이 없어 하나도 의지할 데가 없습니다. 적병이 혹 좌우 길로 나뉘어 나와 한 길은 여주·이천 길로 나오고 한 길은 양성·안성 길로 나오면, 음죽과 죽산에 비록 얼마쯤 군병이 있어도 막아 끊기를 바라기 어렵습니다. 이것이 한 도 형세의 대개입니다.
대저 도 안의 무장은 다만 변응성 하나가 있어 오로지 상류를 막고 있고, 우도에는 아직 방어사가 없어 무릇 군사를 뽑고 조치하며 책응하는 일들이 다 모양을 이루지 못합니다. 신이 전에 비변사에 있을 때 보니 방어사를 감당할 만한 이는 그 사람을 얻기 어려워 차출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없다 하여 그 소임을 비워 두어 일의 기틀을 그르칠 수는 없습니다. 들으니 전 부사 오언량(吳彥良)이 지금 맡은 바가 없다 합니다. 이 사람을 혹 내려보낼 만합니다. 신은 언량의 사람됨을 알지 못하나 사세가 딱하고 급하여 마지못해 이름을 들어 여쭙니다. 또한 비변사로 하여금 합당한지 아닌지를 헤아려 급히 구처하게 하소서.
협주 1
八月十一日
팔월 열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