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14 진사록

경상도 군병 일과 유영경의 직함을 분호조로 고치는 일을 달려가 아뢰는 장계馳。啓慶尙道軍兵事及柳永慶改稱分戶曹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459자 · 낭독 3.8분

징비록 권14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卽據慶尙左兵使成允文牒呈各官束伍軍太半作米所定三千名整齊無路已曾徵米之人又令從軍則民怨極多潰散相續罔知所處云大槪賊勢縱橫出沒無常我國之兵雖云脆弱而難用亦不可盡皆罷遣使諸將空手而坐無人之地已爲失䇿至於哨探瞭望傳通邊報等事皆爲廢弛臣入慶尙道地界後已過七八日而左右邊報漠然傳聞右道等處安陰居昌陜川賊勢熾發至於搶奪。天兵積糧之處而亦無傅報其他調兵防守之事蕩無模樣事事極爲寒心大事當前而我國凡百䇿應協同之事疎濶如此臣分道行文十分申勅如有失誤未及期會則將官以下一切以軍律從事事知委而已散之軍未及數日間整齊以爲進取之計憂慮萬端。天兵糧餉竭收公私之儲僅備七八萬石但道內使命極多如總管使尹承勳備邊司堂上柳永慶分戶曹堂上成泳皆以敵體衙門各行號令不無互相抵捂之患一邑之糓或令移轉於尙州或令移轉於慶州或令移轉於大丘以此守令莫適奉行而殘民日就困竭彼此無及尤爲可慮凡事號令雜出則事無由濟當初經理旣以尹承勳總督儲道糧草其後雖分營各治而總督之名猶在似當參酌三分之勢通融相議措置而柳永慶勿稱備邊司堂上與成泳同稱分戶曹使事權歸一而論議相通似爲便當。朝廷急速處置

방금 경상좌병사 성윤문(成允文)의 첩정에 의거하니 「각 고을 속오군을 태반이나 쌀로 바꾸어 받았으므로 정해진 삼천 명을 갖출 길이 없습니다. 이미 쌀로 바친 사람에게 또 종군하게 하니 백성의 원망이 지극히 많고 흩어지는 자가 잇따라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합니다」 하였습니다.

대개 적의 형세가 이리저리 나타났다 사라져 일정하지 않으니, 우리나라 군사가 비록 무르고 약하여 쓰기 어렵다 하나 또한 다 파하여 보내고 여러 장수로 하여금 빈손으로 사람 없는 땅에 앉아 있게 함은 이미 그른 계책입니다. 초탐하고 바라보며 변방 소식을 전하는 일까지 다 무너지고 풀어졌습니다. 신이 경상도 지경에 들어온 뒤로 이미 이레 여드레가 지났는데 좌우의 변방 소식이 아득합니다. 전해 듣건대 우도의 안음·거창·합천 등처에 적의 형세가 성하게 일어나 명나라 군사가 군량을 쌓아 둔 곳을 빼앗기까지 하였다는데 또한 전하여 알리는 것이 없습니다. 그 밖에 군사를 조발하여 막아 지키는 일도 아무 모양이 없으니 일마다 지극히 한심합니다. 큰일이 앞에 닥쳤는데 우리나라의 온갖 책응하고 협동하는 일이 이같이 성기고 허술합니다.

신이 길을 나누어 글을 보내 십분 거듭 신칙하되, 만일 그르쳐 기한에 미치지 못하면 장수와 군관 이하를 일체 군율로 좇아 다스릴 일로 알렸습니다. 그러나 이미 흩어진 군사를 며칠 사이에 갖추어 나아가 칠 계책을 삼기는 어려우니 근심이 만 가지입니다.

명나라 군사의 군량은 관가와 민간의 저축을 다 거두어 겨우 칠팔만 석을 갖추었습니다. 다만 도 안에 명을 받고 내려온 관원이 지극히 많습니다. 총관사 윤승훈(尹承勳), 비변사 당상 유영경(柳永慶), 분호조 당상 성영(成泳)이 다 대등한 아문으로서 각각 호령을 내니 서로 어긋나는 걱정이 없지 않습니다. 한 고을의 곡식을 혹 상주로 옮기라 하고 혹 경주로 옮기라 하고 혹 대구로 옮기라 하니, 이 때문에 수령이 어느 것을 좇아 받들지 못하고 쇠잔한 백성은 날로 곤하고 다하여 이쪽저쪽 미치지 못하니 더욱 염려스럽습니다.

무릇 일은 호령이 뒤섞여 나오면 이루어질 길이 없습니다. 당초 경리가 이미 윤승훈으로 군량과 말꼴 대는 길을 총독하게 하였고, 그 뒤에 비록 영을 나누어 각각 다스리나 총독이라는 이름은 아직 있습니다. 세 갈래의 형세를 참작하여 서로 통하여 의논해 조치함이 마땅할 듯합니다. 유영경은 비변사 당상이라 일컫지 말고 성영과 함께 분호조라 일컫게 하여 일의 권한이 하나로 돌아가고 논의가 서로 통하게 함이 온당할 듯합니다. 조정은 급히 처치하소서.

협주 1

十二月

십이월